#2020s한국문학
소설을 쓸 때면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이 글이 독자에게 닿았을 때 어떤 느낌을 줄까 하는. 하물며 청소년 소설은 더 그랬다. 나의 청소년기는 20년 전에 머물러 있고, 아이들은 지금을 살고 있는데 그 감각이란 것이 같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건 우리 얘기가 아닌데, 이건 공감도 안 되는데' 싶은 이야기가 될까 노심초사 하며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근데 사실 그 나이대의 감정과 감각은 그 나이대의 청소년만 알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청소년 문학이 체계화되고, 잘 되는 작품 위주로 규격화되면서 내가 느낀 감각은 (정말 잘 쓰인 걸 제외하고) 거세되거나 거칠거나라고 할까. 아주 아름다운 세상만 보여주거나, 아주 그늘진 세계만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아이들이 이입해서 읽을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했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이 쓴 청소년 소설 《시한부》는 재밌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고민하는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서 날것의 모습으로 보여주면서도, 평범한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세계, 약간의 판타지와 로맨스까지 골고루 들어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쓴 청소년 소설이기에 가장 욕망에 충실하고, 리얼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의 첫 장면은 크리스마스날 주인공 수아가 학교 옥상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 앞에는 단짝 친구 윤서가 기다렸다는 듯이 투신을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가뜩에 안 좋은 소문에 휘말려 고통받고, 자해도 하던 수아에게 윤서의 죽음은 충격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윤서가 크리스마스를 디데이로 선정하고 죽었듯, 자기 자신도 내년도 크리스마스를 디데이로 1년짜리 시한부가 되어 친구를 따라갈 결심을 한다.
시한부라는 워딩이 파격적이다. 병에 연관된 주제가 아닌 이상 보기 어려운 단어를 청소년 소설에서 주인공 입에서 '자살할거야'라는 다짐으로 나타난 게 좋았다. 청소년기의 취약성 때문에 출판사와 작가들은 주저하게 된다. 행여 모방하거나 위험한 일이 벌어질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 안에서는 자유로웠으면 한다. 문학은 실화가 아닌 가정의 세계이고, 허구지만 진실의 세계이기에 할 말은 하는 작가의 용기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내가 1년짜리 시한부가 되기로 결심한 건, 죽음에 절망하며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남은 1년이라도 가치 있게 살아보자고 정한 나만의 위로 방식이었다.
윤서가 죽은 후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간 수아는 또 한 번 안 좋은 소문에 휘말린다. 정병이 있는 아이라는 낙인. 패션 정병을 하는 아이처럼 자해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싫으니까 만들어지는 소문에 휩쓸리는 것이다. 수아는 그러나 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따까리(?) 하면서 대응한다. 어쩌면 시한부라는 기한이 정해졌기에 나를 위한 선택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소문에도 수아의 이야기를 온전히 믿어주고 들어주는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전학생 성민이다. 민은 첫날부터 수아에게 플러팅을 해댄다. 아역배우 출신이라 얼굴도 잘생겼는데 나이스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다른 애들에게는 관심 없고 수아의 마음 상태만 바라봐준다. 그렇지만 이 책의 서사에서 외모는 부차적인 문제다. 수아에게 필요한 존재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들어줄 존재였던 것이다. 그 역할은 부모님도, 상담 선생님도 하지 못한다. 또래 친구이면서도, 자신과는 다른 상처를 가진 아이가 내민 작은 손이 시한부 생활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우울에 빠진 사람들은 내면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은 드물다. 백은별 작가는 그 해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장편의 이야기로 속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밀어준다. 이 책은 그렇게 들어주는 존재로 하나의 의미가 된 것이다. 죽지마! 가 아니라, 살아! 하는 책, 뜨거움이 좋았다.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