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한국문학
이 책이 역주행을 하고, 스테디셀러가 되어 차트 수문장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몇 없었을 것이다. 《구의 증명》이나 《홍학의 자리》처럼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알려지다가 어느새 자리를 잡은 이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역주행 베스트에 대해서는 이상한 잣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그정돈가?' 하는 코멘트로 대표되는 높은 기준 같은 것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사실 그런 편견에 갇힌 채로 읽기 시작했고, 매 순간 심판관이 되어 평가하기 급급했던 것 같다. 세간의 평가가 어떠하든 나는 재미있게 이 작품을 읽었고, 조금은 과한 비판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사랑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어떤 인연의 실에 대한 이야기다.
안예은의 「홍연」가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에 처음 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온다 했죠 당신이 어디 있든 내가 찾을 수 있게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왔다 했죠' 이 책의 주인공 도담과 해솔은 처음 날 때부터 이어진 존재처럼 어린 시절을, 대학 시절을, 그리고 30대의 어느 날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인연의 실이 이어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물론 그 과정이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라는 작위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럼 뭐 어떤가. 이야기인데. 우연이 필연이 되도록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당기고,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고 살아간다. 그리고 만난다.
물론 주인공의 시선에서는 아름다운 이야기겠지만, 바깥에서 보면 지독히도 이기적인 두 사람의 민폐로도 보인다. 헤어졌다가 만나기만 하면 애인 정리하고 환승을 하거나,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 병간호까지 여러 번 하던 전 여친을 차고 첫사랑 만나러 가는 서사가 썩 아름답지가 않으니 말이다. 버려지고, 속터지고, 불쌍한 방식으로 주변 인물들이 쓰인다는 점은 어쩌면 도담과 해솔의 관계를 아름답게만 포장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인연이라는 건 정말 존재하나 봐." 우리처럼.
도담은 해솔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도담과 해솔이 나사가 하나 빠진 채로 성장한 데에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한 몫했다. 각자의 부모님, 창석과 미영이 불륜을 저지르다 급류에 휩쓸리며 사망한 후에 두 아이는 상처를 안고 성장한다. 다른 누구도, 혹여 가족이라도 메울 수 없는 깊은 우물이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과오로 부모를 죽였다는 죄책감, 불명예로 죽어간 두 사람으로 인해 받았던 눈총, 헤어질 수밖엔 없던 두 아이. 여러모로 우연이 겹치며 벌어진 사건이지만 그 사건은 두 사람의 인생 궤적을 바꿔놓는다.
도담은 자유를 갈망하며, 다양한 경험을 핑계로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냉소적이고, 상처를 자랑처럼 내세우면서 타인을 공격하고 다시 자기혐오에 빠지는 고통의 루프에 빠진다. 해솔은 매 순간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살아가면서도, 죄를 씻고 싶어 위험한 곳에 온몸을 던지는 일을 벌인다. 한 점 어두움 없이 깨끗하게 자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 속 그늘이 그들의 삶을 지배한 것이다.
자신이 겪은 일과 비교하며 남의 상처를 가볍게 치부하는 냉소적인 태도는 20대 내내 도담이 극복하려 했던 것이었다. 상처를 자랑처럼 내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가난한가. 나는 한 치도 변하지 않았구나. 도담은 익숙한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그런 현장을 수두룩하게 겪다 보면 세상에는 정말 신도 없고 인과응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무도 바라지 않은 일이었다는 걸, 뜻밖의 사고였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야.
행복을 갈구하지만 행복해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행복해본 적이 없기에 행복을 찾아나서지만,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려는 관성을 이기지 못한다. '나만 행복해도 되는 걸까.'라는 감정이 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설령 사고 때문일지라도, 자신의 과오가 아닐지어도 그들은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게 두렵기 때문이다. 이상한 말 같지만, 도담과 해솔은 스스로의 존재를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혐오나 자기학대적인 위험감당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들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은 오직 두 사람. 서로밖에 없다는 걸 그들은 안다. 비단 이야기가 인연의 실을 따라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위해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은 만나야만 한다. 일상에서 주변인으로 만나면 피곤하겠지만, 설화나 신화라 생각하고 읽는다면 외려 고개를 끄덕일만한 하다. 외눈박이 물고기 둘이 한 쌍이 되듯 하자 있는 두 사람은 둘일 때 완전해질 순 없어도 행복해질 수는 있다. 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공유되기 떄문에.
지금 너는 행복이 두려운 거야.
도담아,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 있어. 슬픔이 행복보다 익숙해지고 행복이 낯설어질 수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다 겪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