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소설]공포의 세기

노 데이타의 영역에 대하여

by 이요마
공포의 세기(2016)

사진출처 : 알라딘



1. 공포의 세기?

백민석 작가의 공포의 세기를 읽었다.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빡센 제목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공포가 세면 얼마나 세다고 '공포의 세기'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센츄리 오브 호러였다.)


2.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니 원치않는 분은 뒤로가기 할 것.


이 장편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꽤 된다. 그 중 어느 정도 책 안에서 페이지를 확보하는 인물은 내가 꼽기론 아홉 명이다.

모비와 모비아비 모비어미 한창림 경 심 령(망치) 효 수

많은 주인공들을 350여 페이지에 담아내고 전부 각자의 있을법한 이야기를 돌린다는 점이 대단했다. 물론 그들이 전부 얼기설기 엮이지는 않는다. 빈한 표현으로 하면 아다리가 딱딱 맞아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 자 이름을 가진 다섯명은 같은 날 서울에서 테러?같은 분신 동반자살을 시도하는데 그들에게는 일말의 연결고리가 없다. 성경구절인지 수지큐 라는 노래가사인지 공통적으로 중얼거리는 대사는 있지만 경 심 령 효 수의 교류도 전혀 없고 동반자살 타깃도 전혀 링크가 없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매일 한 번은 나오는 단어가 '조각'내지 '퍼즐'이란 단어다.(특검이 하는 일도 그렇고)나는 생각해왔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인과관계가 지배한다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고 목적없는 행동은 없다고 말이다. 때문에 세상은 점점 예측 가능해지고 나의 말 하나 몸짓하나도 분석 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묻지마 사건들'이 무서운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분석할 수 없는 노 데이타의 영역.

그 영역에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불현듯이 찾아오는 것이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3. 노 데이타의 영역

나의 공포는 엄밀히 따지면 타자화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일이 아니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는 구분짓기. 나는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아. 나는 대재앙의 피해자나 유족이 아냐. 쟤들은 그냥 쟤들임ㅇㅇ. 하고 거리를 두는 순간 나는 타자와 접점이 없는 분리된 인간이 된다. 얽히고 섥힌 인과관계로부터 한 발 자국 멀어진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면서 생기는 그림자는 내가 의식적으로 노 데이타의 영역이라고 선언하지만 실은 내가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 영역이다.

공포의 세기에는 절대 악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대개 살인자나 범인은 명백한 타자로 표현되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서는 여지가 남겨져있다. 마치 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절대 남 일이 아닌 듯한 기분을 계속해서 심어준다. 물론 살인에 공감을 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무작위성, 그 인과없음에 나도 포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노 데이타의 영역은 세상에 없다. 다만 누구도 관계를 증명하거나 설명해주지 않을 뿐.


4.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소 생뚱하지만 미술관의 그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현대미술을 전혀 모른다. 공포의 세기는 미술관에 가서도 멍하게 이게 뭘까하는 작품과 이게 왜 이것일까 싶은 작품명을 보는 기분이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말에는 나의 편견이 담겨있다. 말이 되는 것(이치에 맞는 것, 인과에 맞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노 데이타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나의 이분화된 세상은 실은 하나다. 다만 내가 보고싶은 것과 보고싶지 않은 것의 차이가 있을 뿐.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인과로 설명할 수 없을 뿐이다.


Ps. 이 책 재미있다. 사서 보길 추천. 양장본이라 표지가 까끌까끌한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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