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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Dec 11. 2023

축구를 사랑하는 딸들

제주 초등학교 천연잔디운동장에서 매일 축구하기


우리 딸들은 축구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축구공과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 한몫한 것 같다. 승연이는 유치원에 자랑하려고 입고 갔다면 태권도 도복과 유니폼을 좋아하는 승민이에게는 완전 취향저격이었다.

7살 무렵 여행 갔을 때도 수영장에서 처음 보는 인도아저씨들과 수구를 할 정도로 공에 대한 집념이 대단한 아이였다.


둘째가 1학년이 되고 난 후 운동장에서 매일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고 축구 잘하는 오빠들 틈에 끼어 하나씩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기 중이던 fc에서 연락이 왔고 본격적으로 축구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전도 드림컵 출전!
우승컵 들고!! MVP 포토존ㅎㅎ


 육지의 초등학교는 정규수업이 끝나면 모두 집에 가고 조용했는데 제주의 초등학교는 운동장이 항상 열려 있고 천연잔디에 아이들이 오후 내내 많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뛰어놀 수 있는 가장 좋은 놀이터이자 농구, 축구, 야구, 피구 등 다양한 구기종목을 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


우리 학교만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열려 있는 운동장 덕분에 고학년이 되어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두루두루 잘 어울려서 논다.

축구하는 친구들, 피구하는 친구들, 원반 던지기 하는 친구들. 아이들을 기다리며 바라보는 가장 흐뭇한 장면들이다.


내가 학교에 가면 축구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 “어? 차승민 엄마다.”, “승민이 어디 있어요?”하고 묻는다.

내가 항상 축구공을 들고 가기도 하고 아이들의 긴급상황에 대비해 운동장 지킴이로 앉아 있기에 얼굴을 다들 안다. 대충 이런 분위기라 딸들에게 학교에서의 별명을 물어봤다.


“승민아, 학교에서 별명이 뭐야?”

“나 여자 손흥민.”

“우와 승민이 기분 좋겠다!”

“승연이는?”

“나… 차승민 누나.”하며 씩 웃는다.

“어머, 승연이가 차승민 누나로 불려?”

“응. 그래도 좋아. 승민이 덕분에 인기가 많아졌어.”


운동이라면 절대 뒤지지 않는 언니라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은근 동생을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 전교부회장에 당선될 때도 승민이 누나라 받은 표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넓은 운동장의 양 끝에 축구 골대가 있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뛴다. 달리기가 빠른 편인 승민이는 우리 골대부터 상대 골대까지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보고 있는 나도 숨이 찰 지경이다. 하지만 승민이의 눈빛은 살아있다. 나의 1학년을 생각하면 화장실도 혼자 못 가서 울었는데 이렇게 씩씩한 딸을 낳다니 자식 하나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바람이 손주에서 이루어졌나 보다.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축구라 나는 응원해주고 싶다. 8살 아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축구선수라는 꿈이 온 힘을 다해 뛰고 친구와 서로 발을 맞춰보고 경기를 하면서 값진 경험을 할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으로 또 한 번 기름이 부어진 열정은 더 불타올랐다. 선수이름과 등번호 맞추기 퀴즈를 했고 어느 팀 소속인지 팀에 관련된 정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유나이티드 홈경기를 보러 서귀포월드컵경기장을 찾았고 대한민국의 경기,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선수들의 골 소식에 아빠와 머리를 맞대며 즐거워했다.

서귀포월드컵경기장
최강 제주!!!



제주시여자어린이 축구팀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반짝거리는 새 공으로 훈련을 받고 게임을 뛰는 모습을 지켜보던 첫째가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엄마… 나도 축구하고 싶어"

"음… 시작하면 쉴 시간 없이 다녀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

"응! 너무 재밌을 것 같아. 나도 할래!"


그렇게 해서 두 딸은 주말마다 축구장을 누비는 선수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서귀포여자어린이 fc와 함께 표선중에서 친선경기를 하기도 했다.

결과는 5:2로 졌지만 팀을 위해 뛴 11명의 친구들과의 호흡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제주시여자어린이FC


제주에 살면서 내 몸으로 내 마음대로 놀아보는 유년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매일 느끼는 요즘이다.

공 하나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기쁨, 공을 차며 초록 잔디를 달리는 짜릿함,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축구를 하며 몸과 마음을 다지는 시간들을 응원하기에 세 시간의 운동장 지킴이도 기꺼이 하려고 한다.


오늘도 해 떨어질 때까지 뛰는 너희들,

땀으로 범벅된 뜨거운 얼굴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다!

해가 떨어져도 뛰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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