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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Feb 29. 2024

천천히 돌아가는 법

용눈이오름에 서서

 

 제주에서 산 지 3년이 넘어가니 육지에 가는 것이 점점 더 큰 일로 다가온다. 제주에서의 시간들이 이제 온전한 나의 일상이 되었고 아이들도 우리 집이 제일 편하고 좋은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설 연휴는 미국여행 후 여독도 풀고 지친 몸을 달래고 싶어 제주에 머물기로 했다. 평소 멀어서 잘 가지 못하는 표선 쪽에 숙소를 잡고 2박 3일 동안 제주 동쪽여행을 위해 또 짐을 쌌다.


 제주에서 좋은 곳을 꼽으라면 '김영갑갤러리'를 잊지 않는데 수년 전 여행으로 왔을 때 봤던 액자 속 용눈이오름을 잊지 못한다. 어떤 곳이길래 몸이 성치 않은 작가의 예술혼을 오름 하나에 다 쏟아부었을까? 궁금했었다. 이튿날 조금 나아진 날씨에 우리는 고민 없이 용눈이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오름을 배경으로 한 마방목지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의 모습이 제주에 살면서도 문득 '여기가 제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능선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용눈이오름은 입구에서 정상까지 탐방로를 따라 오름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게 안내되어 있다. 중간중간 말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통로가 막힌 곳이 있어 우리는 미로를 지나가듯 통과했다. 겨울이기에 초록의 잔디는 아니지만 억새들의 물결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능선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림같구나
다랑쉬와 아끈다랑쉬오름


 큰아이는 아빠손, 둘째는 엄마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경사를 낮춰 멀리 돌아가도록 짜놓은 산책로가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기 좋았다. 바람이 정면으로 부는 마지막 경사를 오르며 흐리지만 주변 오름들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름도 예쁜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은 다음 기회에 올라보기로.


 어느새 정상에 올라 경관을 보면 오름들이 하나하나 보인다. 몰랐던 이름도 알고 스탬프도 찍으며 제주의 360여 개의 오름 중 한 곳에 도달한 우리 가족을 기념했다.


정상에서


 노꼬메오름처럼 경사가 높아 정해진 시간 안에 정상에 오르는데 희열이 있는 오름도 있지만 용눈이오름은 목표를 보며 천천히 돌아가는 법과 주변을 살피는 법을 알려주는 오름 같았다.


 오름은 안 간다고 하고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기는 아이들. 언제까지라도 튕겨라. 엄마 아빠도 포기 못한다. 아이들과 하나씩 오르다 보면 어느새 우리들만큼 커 있는 날이 오겠지. 제주에 오름이 많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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