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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Apr 02. 2024

1시간 7분의 기록

생애 첫 마라톤 도전기


나에게 달리기란 고민 없이 ‘특기’ 칸을 채울 수 있는 자랑거리였다. 나름 육상꿈나무였고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올 때도 친구들이 입을 모아 훌륭한 육상선수가 되라고 말해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단거리에 비해 지구력이 턱없이 부족해 오래 달리기를 하면 꼴찌로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고 한강을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 반 두려움 반으로 쳐다보기만 했고 뛰어보겠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제주에 와서 시작한 바다수영으로 장거리 운동의 재미를 맛본 뒤, 점점 체력에 대한 자신감도 쌓이게 되었다. 2km를 수영으로, 그것도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주변에서는 다들 놀랐고 내가 헤엄쳐 건넌 곽지-한담을 보면 나 조차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면 된다!’라는 막무가내 정신이 장착된 후로 마라톤 출전이라는 작은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초보자이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페이스를 찾는 연습이 필요했고 3km, 4km, 5km를 뛰며 몸을 적응시켰다. 첫날 앉았다 일어섰다를 못 할 정도로 허벅지와 종아리가 뭉쳤지만 그다음 날 또 뛰었다. 뛰면 뛸수록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트레드밀을 달렸다. 체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에는 시간도 의지도 부족했지만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출발 전에는 신났지

대회장의 분위기는 모두 이봉주, 황영조로 빙의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출발시간 한 시간도 훨씬 전부터 트랙을 돌며 몸을 푸는 사람들은 눈빛부터 달라 보였다.

종목은 10km와 하프(21.0975km) 두 가지로 개인전과 단체전이 있었다. 10km에만 3,000여 명이 참가해 출발하는데만 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첫 마라톤대회라 준비운동도 묵념을 하는 시간도 페이스메이커가 풍선을 달고 뛰는 모습까지도 모든 게 새로웠다. 등번호를 달고 기록칩을 운동화 끈에 단단히 걸고 상위그룹이 출발한 후 우리도 뒤를 따랐다.

코스 안내도

출발점을 밟고 한림종합운동장을 나가니 풍물패가 흥겹게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함께 뛰는 사람들과 앞을 다투며 자리를 잡고 뛰기 시작했다. 이제 한 시간 남짓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 제1음수대가 나올 때까지 열심히 달렸다. TV중계에서 보던 것처럼 사람들이 물컵을 채가며 달리면서 마셨다. 잠깐이라도 멈춰서 마실 수 있을 거란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빠르게 앞서 나간 친구를 보내며 ‘내 페이스에 집중하자!’ 속으로 외치며 속도를 유지했다.


드디어 출발

한림항을 보면서 여유 있게 달릴 것을 상상한 나의 러닝은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옆에서 함께 달려준 친구의 조언을 들으며 반환점까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갔고 5km에 33분이라는 좋은 기록을 남기며 코스를 따라 되돌아갔다.


[러닝 초보자가 명심할 것]

하나!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내 페이스에 집중할 것

둘! 오르막에서는 땅만 보고 뛸 것

셋! 내리막에서는 힘을 내서 치고 나갈 것

넷! 앞서 가는 사람 한 명을 정해서 그 사람만 보고 속도 유지 할 것

다섯! 마지막 1-2km 남았을 때는 쉬지 않고 달릴 것


반환점을 돈 후부터는 심박수가 170대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다리도 무겁고 언제 도착하나 죽기 살기로 뛰었다. 10km도 쉽지 않은데 하프와 풀코스를 뛰는 사람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멘털을 유지하는지 정말 대단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의 시간 끝에 드디어 꽹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운동장입구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다 왔다!!

결승점을 밟으며 간절히 듣고 싶었던 ‘삐이-‘ 전자음이 내 귀를 뚫었다.


1시간 7분 22초


완주기록증!!


완주를 해냈다!

힘이 들었지만 예상보다 좋은 기록에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역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구나, 연습을 안 하고 수월할 거라 기대한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완주메달과 기념품을 받고 기록증을 받으니 내가 마치 풀코스를 완주한 마라토너가 된 것 같았다.

도전해 보려는 용기를 냈기 때문에 생애 첫 10km 기록이 남게 되었다. 1시간 7분 동안 흘린 땀으로 완주메달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아침부터 함께와 응원해 준 우리 가족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다음 대회 때는 다 같이 달려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승연아 승민아! 엄마랑 같이 달려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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