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2톤의 추억
제주에 살고 주택에 살다 보니 자연이 주는 에너지가 우리 삶에 많이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마당의 사계절을 보고 있으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들과 마주하게 된다. 여린 새순이 가지를 뚫고 올라오고 있는 무화과나무, 찰랑찰랑 종소리가 날 것 같은 하얀 꽃이 달린 블루베리나무, 싱그러운 가지에서 벌써 향긋한 레몬나무, 수십 개의 심장을 가슴에 품고 있는 늠름한 소철. 열매를 맺기 위해 뿌리에서부터 줄기까지, 가지 끝까지 영양분을 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매일 보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 가지치기도 하고 잔디부분을 깨끗하게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잔디를 조금만 방치하면 무릎까지 자라나고 잡초들은 넝쿨을 만들어가며 생명력을 뽐낸다. 벌레도 생기고 집안과 차 안까지 지푸라기가 흔적을 남기지만 그 초록에 물을 주고 밟아주고 다듬어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를 선물해 준다.(골프장 같은 앞집 잔디를 보면 더욱 그렇다ㅎㅎ)
이웃 선생님께서 주택살이 초자인 우리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성으로 돌봐주신 덕에 평온한 마당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 보답으로 한달살이로 집을 비우신 시간 동안 남편이 모래 2톤과 함께 봄맞이 정원관리를 시작해 버렸다. 비와 바람이 강한 환경 때문에 마당의 움푹 들어간 곳곳을 채우고 돌담과 데크 사이의 빈 공간들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크레인이 들고 온 모래 2톤은 내려놓은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있었다. 삽으로 푼 모래가 어찌나 무겁던지 나는 몇 번하다가 손을 놓았다. 대단한 집념으로 그 많던 모래를 수 백번 반복하며 마당에 뿌렸다. 우리 집이 사막이 되었고 입안에서도 모래가 씹혔다. 하루종일 뿌려댔더니 1톤은 어떻게 없어졌다. 비가 오면 다시 또 내려간다고 해서 넉넉하게 시켰다고. 나머지 1톤을 비를 맞지 않는 곳으로 옮겨놓아야 해서 또 삽으로 퍼 날랐다. 머릿속에 큰 그림이 있는지 남편은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도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3주 넘게 주말 동안 물 뿌리고 밟아주고 비료도 뿌려주니 마당은 점점 모래의 무게만큼 정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일을 이리 벌였나 싶었지만 고생한 한 보람이 있었다.
4박 5일 동안 육지일정을 마치고 내려오니 우리가 벌여 놓은 일들을 이웃께서 수습해 놓으셨다. 모래도 더 채워주시고 잔디도 고르게 한번 깎아주시고 모래가 너무 두껍게 덮인 부분은 잔디가 죽을 수도 있어 걷어주셨다. 와..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다르다.
주택에 살면 살수록 ‘우리 집을 짓고 살고 싶다’라는 꿈이 생긴다. 오늘도 차가운 화장실을 미리 데우며 초록을 보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