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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Jun 18. 2024

오색빛깔 제주

나는 보물섬에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의 하늘을 확인하고 마당으로 나선다. 멀리 한라산이 맑게 보이는 날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매일 수영을 하고 주말에는 바다수영을 가고 마당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자연을 가까이할수록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예전보다 편안해졌다. 환경에서 오는 여유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내어주었고 그 여백은 오색빛깔로 채워졌다.


오름을 오르고 백록담을 바라보며 '초록'이 채워지고 바다를 헤엄치고 파도와 함께 놀며 '파랑'을 채웠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마다 '노랑'의 포근한 기운이 드리워졌고 건강한 재료로 준비한 식탁에는 '주황빛' 생기가 돌았다. 우리 집이 세워져 있는 '갈색' 흙 위로 네 식구와 나무와 풀들이 뿌리내리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제주여행을 매년 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을 만나는 것 같았다. 제주가 그리워 찾아올수록 '여기서 한번 살아볼까?' 하는 질문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짐작했고 석 달만에 이주를 하게 되면서는 신혼을 맞은 신랑신부처럼 매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를 알아가고 있다.


낮과 밤을 채워나가고 계절을 만끽하며 달라지는 색들을 바라본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의 색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곳, 제주에서의 찬란한 삶이 시작되었다. 3년 정도 살게 되니 여름의 선명한 색이 차분히 가라앉은 다른 계절을 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다.


좋은 것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많은 섬에서의 삶은 나를 더 부지런하게, 더 단순하게 살도록 만들어주었다. 이틀 걸리는 배송기간은 계획적인 소비를, 변화무쌍한 날씨는 맑은 날을 온전히 즐길 용기를, 높은 습도는 옷장과 냉장고에 최소한의 물건을 두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물론 마당이 주는 행복에는 지네와 뱀들 덕분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도 포함이다. 둥근 섬 안에 이렇게 다채로운 모습이 있다니. 신이 숨겨둔 종이쪽지를 찾듯 해를 거듭하며 또 다른 자연을 만나는 우리는 보물 찾기의 주인공이 되어있다. 자연 안에서 우리는 작은 존재이지만 그곳에서 위로와 경이로움을 느끼고 삶에 대한 간절함이 자란다.


아이들도 자유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땀 흘리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즐겁게 빠져있는 눈빛을 볼 때면 내 심장도 덩달아 뛴다. 살아있다는 것, 아이의 성장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살고 있으면서도 꿈이 아닐까 볼을 꼬집어 보게 되는 삶, 숨 가쁘게 살다가도 잠시 멈춰 바다를 볼 수 있는 여유가 특별하지 않은 삶. 그렇게 쉬다가 걷다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며 살 수 있는 제주가 좋다.

오늘도 내가 꿈꾸는 인생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2024. 6 우리 집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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