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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Jul 08. 2024

할머니의 호박전

나의 10대를 추억하며


내 요리실력의 8할은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셨다. 아빠의 허리 디스크 수술로 할머니가 우리 집에 석 달 정도 계셨을 때 내 나이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 병원에 있던 엄마, 아빠는 안중에도 없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호박전, 칼국수, 육개장, 소고기뭇국을 맛있게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주름이 깊게 파인 할머니 손은 뚝딱뚝딱 도깨비방망이처럼 우리 집 부엌에서 요술을 부렸고 작은 어깨는 거인의 어깨보다 더 커 보였다.

특히 나는 할머니의 호박전을 가장 좋아했는데 노랗고 동그란 애호박은 타지도 않고 촉촉한 계란옷과 함께 고소한 맛을 뿜어냈다. 이때 먹었던 호박전은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고 지금 나의 딸들도 이 음식을 좋아한다.


중학생이지만 김치볶음밥 정도는 곧 잘했던 나는 할머니 옆에서 맑은 국과 얼큰한 국 끓이는 법, 나물 무치는 법 등을 배웠다. 새우젓과 간장, 다진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은 어느 메뉴든 기본으로 간을 맞추는 재료였고 정성을 담아 만든 따뜻한 밥상은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덧 믿음직스러운 보조요리사가 된 내가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의 오징어국을 전수받은 날, 기름에 다진 마늘을 볶다가 썰어놓은 무를 넣고 빨갛게 고춧가루 물이 들도록 볶아주었고 고추기름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껍질을 살린 오징어를 큼직큼직 썰어 넣었다. 그날 아빠는 국을 남김없이 드시며 ‘바로 이 맛이지!’ 하셨다. 내 한식의 기본기는 이때 만들어졌다.


할머니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항상 내 편이셨고 이모들과 삼촌들 어릴 적 이야기를 재밌게 해 주셨었다. 어린 동생을 챙기느라 바빴던 엄마의 자리를 수화기 너머 ‘우리 학이 착하다, 잘했다, 고맙다.’ 말씀해 주시는 할머니가 따뜻하게 채워주셨다.


종종 할머니가 고속버스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시면 동서울터미널로 일찍이 마중을 나가 묵직한 가죽 옷가방을 들어드렸다. 손 떼 묻은 그 가방에는 우리에게 주실 밑반찬과 사탕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1년에 한 번 오실 때마다 내 키는 자라 있었고 할머니는 그만큼 작아지셨다. 내가 할머니의 키를 넘었을 때 괜히 코 끝이 찡해져 작별인사를 할 때 한참 더 안아드렸다.


할머니의 은발 파마머리, 고운 피부, 깨끗한 옷매무새, 주름진 손에서 평생의 부지런함과 변하지 않는 성실함을 보고 자랐다. 같이 살지는 않아도 명절 때, 방학 때 할머니를 만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할머니의 정갈한 밥상에 온 가족 둘러앉아 제일 맛있는 것은 내 숟가락에 올려 주시던 할머니… 돌아가실 때 조용히 누워 계시던 그 작은 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다.


‘할머니, 내가 만든 밥 한 끼 잡수시러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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