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나경 인터뷰 #1
학나경 프로젝트의 운영진이자 첫 번째 인터뷰이는 손로운이다. 마냥 이타적으로만 보일 수도 있는 손로운은 대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양보할 수 없는 본인의 주관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는 주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본인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키는 방법을 내놓았을 뿐이다. 대화를 통해, 그가 행하는 배려와 존중은 단순히 그가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폭 넓고 깊은 고민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임을 짐작하게 되기도 했다.
김지연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해요’ 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손로운 사람들이 일상처럼 쓰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 라는 말을 자주 하지 않나. 그런데 사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는 이해가 되는 경우가 충분히 많다. 단순히 말을 내뱉기에 편한 방법을 찾아서, 사람들이 표현을 골라서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의 스탠스에서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해를 한 후, 그걸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고는 그 뒤의 문제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에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김지연 이해가 아닌 선호의 문제라고 말하면 맞을 것 같다.
손로운 맞다. 그런 식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마법처럼 편하게 사용한다. 사실 그건 공격적인 말이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말이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나의 입장에서 말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한다고 말하면,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고 나의 의견도 피력할 수 있다. 똑같이 의사를 전달하는 표현이지만, 조금 더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문장이다. 내 의사를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이라서 좋다.
김지연 그런 상황이 있을 때, 실제로 그 방식으로 표현을 하는지.
손로운 맞다. 사실은, 우리 아빠 때문에 이 문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빠는 보수적인 사람이고, 어릴 때부터 당신의 사고를 주입시키는 분이었다. 교육관 자체도, 당신이 살아온 배경에 맞춰 정립이 되었는데, 현재 시대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예전에는 그게 마냥 싫었는데, 자라면서 아버지가 살아왔던 시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게 당연했던 시대를 살아왔으니까. 지금의 변화에 적응하기에는 조금 힘들 수 있으니까, 그런 행동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빠에게 무조건 싫다, 라고 했었는데, 요즘에는 왜 그런지 이해는 하겠는데, 요즘에는 맞지 않다라고 말하는 편이다.
김지연 본인이 고집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지.
손로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만큼은 주관이 확실한 편이다. 사람들이 내가 고집이 세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무던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 무던한 분야의 영역이 훨씬 넓어서 반대 면을 많이 봤을 수도 있다.
김지연 본인이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막상 조주기능사, 보드게임 등의 본인의 취미는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손로운 나는 나의 필요성을 느낄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 내가 무언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싶다. 또, 저 취미들은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재미를 느끼고, 나를 더욱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나의 능력치가 아니라, 나의 개성이나 관심사가 먼저 돋보였으면 좋겠다.
김지연 그게 우리가 이걸 하는 이유기도 하다. 일 외적으로 다른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나의 객관적인 수치는 면접이나 이력서에서 언급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할 곳은 별로 없다. 왜냐면, 나라는 사람의 능력치를 어필할 기회는 매우 많고, 또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나고 자란 이상, ‘학나경’과 같은 세속적인 고민을 떼어놓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고민은 자아와 종종 충돌하곤 한다. ‘학나경’이 내 자아를 잠식하면, 나는 학나경으로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다만, 내면의 충돌을 인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김지연 고민이 많은 성격 같은데, 꺼내기엔 주저하는 것 같다.
손로운 내가 하는 고민들이 굉장히 답이 안 나오는 고민들이다. 고민의 폭이 넓다. 항상 고민이 기저에 깔려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고민들. 그걸 내려놓기가 어렵다. 기저에 깔린 고민에서 파생된 작은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하는 주요한 고민은) 우리 집은 잘 사는 편도 아니고, 내가 나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하는데, 내가 업으로 삼은 분야는 근로소득이 높지도 않고, 직업 수명이 짧다. 그래서 최대한 근로소득을 높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한다.
김지연 의외인게, 나는 손로운이 굉장히 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현실적인 문제라면 설명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한다면 애초에 왜 이런 분야(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에 들어왔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손로운 그게, 되게 모순적이다. 나는 나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돈도 많이 벌고 싶은거다.
김지연 그렇게 다층적인 고민을 하는 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런 모순적인 고민을 하는 게, 절대 비정상이 아니고 사실 모두가 그래야 하는 거다.
손로운 결이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김지연 맞다. 우리가 이것을 하는 이유랑 엮어서 말한다면, 자기가 하는 일, 자신의 직업으로만 자신을 정체화 하는 사람은 삶 자체에 대한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일로서 정의되는 거니까.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고민은 오히려 귀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를 감지하려면 민감한 감각이 필요하다. 손로운은 현실적인 고민을 하면서도, 또 단순히 현실적인 조건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한 확고한 주관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현실적인 조건을 버릴 수가 없더라도 개인적인 가치를 1순위에 두며 삶의 밸런스를 조절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지연 당신이 생각하는 더 나은 자신이란.
손로운 나에게 끼어 있는 거품이 벽돌로 바뀌게 될 때. 더욱 단단한 자신이 되고 싶다. 그리고 걱정을 좀 덜 하고 싶다. 뭘 해도 걱정이 끼어 있으니까. 여유롭지 못하다. 퇴사하고 제주도 여행을 갔어도, 기본적으로 걱정을 하니까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걱정에서 벗어나서 몰입하고 싶다. 그게 더 나은 모습 같다.
김지연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싶은 이유는.
손로운 나는 사람에 대해 항상 궁금했다. 그런데, 이런 대화는 일상적이지 않다. 돈이나 일 같은 현실적인 문제만 고려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내면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핑계 삼아서 나와 정반대에 있는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김지연 공식 질문. ‘학나경’으로 말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자면.
손로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손로운이다.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해요 에서도 말했듯이, 표현도 구체적일수록 사람들이 받아들이기가 쉽다. 감정을 이해하려고 할 때나, 갈등의 순간에서도 해결책을 찾을 때도 구체적으로 단계를 나눠서 접근하려고 한다. 작은 단위로 쪼개서 생각하려고 한다. 귀찮아서, 편한 방법을 찾아서 뭉뚱그려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나를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서두에 언급한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해요’ 라는 말이, 그의 주관을 축약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인 말조차도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바꾸려는 손로운은 스스로 분명 단단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프로젝트가 그에게도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성자 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