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나경 인터뷰 #2
두 번째 인터뷰이는 학나경의 또다른 운영진 김지연이다. 김지연은 한 사람의 세계가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뭉뚱그려지길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김지연은 자신의 의견과 색깔이 뚜렷한만큼, 얼핏 보면 세상에 관심 없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사람에 가깝다. 인터뷰를 통해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김지연의 생각과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사람이 더 다채롭게 비춰지길 바라는 사람, 그게 김지연인 듯하다.
손로운 학나경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김지연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미디어만 봐도 특별한 직업을 가졌거나 성공을 거둬 인정을 받는 사람만 다루는데, 정말 평범한 사람들은 점점 지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다수의 사람은 대단한 성공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개인 에세이 장르 서적의 인기로도 알 수 있듯, 나랑 닮은 사람들로부터도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지금은 학나경이라는 컨텐츠로, 정말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또 이전에 면접자리에서 기자로서 다루고 싶은 이야기를 질문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까진 성공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담았으니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답했는데 결과적으론 탈락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이걸 굳이 직장에서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안되면 내 블로그에라도 올려보자는 마인드였다.
손로운 정형화된 것들을 관습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인지.
김지연 맞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사회적인 틀에서 벗어난 온전한 개인이 되려고 한다. 나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다. 어디 학교나 어디에 소속된 누군가가 아닌, 개인이 되고 싶다.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손로운 본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것 같다.
김지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게 맞는건가? 같은 생각이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냈을 때, 사실은 이게 내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감정일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알아채지 못했을까 하는 식이다. 사회가 구성한 내 안의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다. 난 자격지심과 패배의식이 강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인데 감추고 있거나 인지하지 못할 뿐이라 생각한다. (내면의 틀을) 의식해야만 결국엔 벗어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게 너무 괴롭다.
손로운 본인이 잘하는 것, 할 줄 아는 것보다는 잘 못하는 것, 할 줄 모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고 있는 느낌인데.
김지연 우선 그런 얘기를 처음 들어봤다. 나도 날 잘 모른다. 딱히 못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고 있다고는 생각 안했는데, 삶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다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김지연은 개인이 온전하게 해석되기를 바라는 사람 같았다. 특정한 키워드 몇 개만으로 자신이 재단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김지연은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손로운 자신이 핵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들이 있는지.
김지연 사소하게나마 인스타나 블로그나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것들이 남들에게 전해지고 읽혀졌으면 한다.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내 이야기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나의 자격지심이나 패배의식을 드러낸다면, 주변의 누군가도 자신의 감정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 똑같이 살아가는 인간인데, 남들도 분명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인지하지 못하거나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이다.
손로운 블로그나 브런치에 쓴 글에 사람들이 반응할 때의 기분을 설명한다면.
김지연 너무 좋다. 내 생각에 반응을 했다는 것 자체도 좋고, 내 생각에 동감해주는 것도 좋다. 나는 모든 글을 읽혀지기 위해 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적을 달성한 느낌이다. 내 의견을 피력한 글들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개인은 사회의 구성원인만큼 개인이 변화하게되면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게 될 것이고, 나는 사회에 작은 영향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기 때문에 내가 가진 능력을 이렇게나마 쓴다.
손로운 나도 끊임없이 사람들 개개인을 알아가고, 그들도 나처럼 생각하길 바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공감해줄 때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다만 그렇게 일반화를 거부하면서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 혹은 나의 방식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더 쌓이는 피로감들이 있다.
김지연 나도 매사에 피로를 느낀다. 일상에서도 내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마주하는 순간에 특히 그런 피로감을 느낀다. 나처럼 생각하는 게 내 가치관 안에서는 당연한 거였는데, 알고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소수일 때를 깨달으면 괴롭다.
편하지 않은 방법은 번거로운 길이다. 어렵지만 구체적으로 개인을 알아간다면 개인을 유형화하기보다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사회에 의해 본인이 규정되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개인의 색깔이 옅어질 수 밖에 없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나를 알아갈수록 스스로를 수식하는 키워드들이 얼마나 뭉뚱그려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손로운 괴로움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데, 평소에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이나 취미가 있나?
김지연 즐거움은 하루종일 지속된다기보다는 찰나의 순간이다. 친구들끼리 모여있어도 불편한 얘기가 나오면 괴로운 것처럼. 나는 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순간을 좋아한다. 나는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너무 즐겁다. 가족들이랑 같이 살다보니 집에 혼자 있어도 온전하게 혼자란 느낌은 따로 없다. 근데 카페 같은 공간에 가면, 그 많은 사람들이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오는 해방감이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 편하다.
손로운 평소에 여기저기 새로운 카페처럼 새로운 공간을 정말 자주, 잘 찾아다니는 이유가 그런 이유인지 몰랐다. 그런 장소를 공유하는 ‘김지연의 골목카페’ 리스트 덕분에 정말 매력적인 장소를 나도 알게 되고 종종 찾아가곤 한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은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 별로인건가.
김지연 내 공간엔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익숙한 공간 밖으로 나가야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게 내가 새로운 공간을 찾는 의미인 것 같다. 난 익숙한 방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손로운 의외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집이다보니 가장 남다른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취향이 많이 묻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지연 나도 내 집이 생기면 모르겠지만, 지금 내 방은 답답하다고 느낀다. 내 방을 예쁜 것들로 꾸미긴 하지만, 그것들이 내 취향이 묻어있는 것들은 아니다.
손로운 동의한다. 나도 집에 있으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들을 보면서 같은 생각들을 하게된다. 해결되지 않을 고민들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김지연 그러다보니 (어딘가를 갈 때) 공간 자체가 아름답고 예뻐서 찾아간다기보다는, 공간을 가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집을 떠나 오롯이 나 혼자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가 좋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속에서 익숙했던 고민들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좋아한다. 익숙한 공간에서는 익숙한 생각들만 하지 않는가. 환경을 바꾸어야 생각이 새로워진다. 대학생 때 과제할 때도 집에서 안되는 것처럼.
혼자 살아가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본인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김지연은 삶 속에서 타인의 영향을 최대한 받지 않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또 그런 생각에 매몰되지 않도록 신선한 환경을 찾아나서는 사람이었다.
손로운 어릴 때도 지금같은 사람이었는지 궁금하다. 스스로가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언제부터 생각했나.
김지연 고등학생 때부터는 항상 그래왔다. 난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너무 싫었다. 학생일 때는 유독 납득되지 않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하는 문화를 접하기 쉽지 않나.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학구열이 높은 학교였는데, 거기서 너무 큰 피로감을 느꼈다. 대학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봐도 일종의 회의감이 들었다.
손로운 우리 둘 다 현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데, 현실은 현실대로 맞춰서 살아가려는 것 같다. 아예 (현실을) 끊는 결심을 내리고 다른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도 방법 아닌가.
김지연 내가 처음부터 아예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에 갔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근데 이미 한국인의 자아가 뿌리 깊게 박혀버려서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이 환경에서나마)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 목표다.
손로운 공식 질문. ‘학나경’으로 말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자면.
김지연 “생각하는 김지연”이다. 어릴 땐 남들도 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을 여러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새롭게 받아들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가진 ‘생각하는 능력’이 비단 남들도 다 가진 능력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생각하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나의 장점이 드러나는 것 같다.
김지연은 분명 몇 가지 객관적인 키워드만으로 설명되기엔 훨씬 더 넓고 깊은 세계를 품은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세계가 온전히 조명받길 바라는 마음은 그가 꿈꾸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드러내주는 듯하다. 누구보다 더 개개인의 세계가 존중뱓길 바라는 김지연의 외침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길 바란다.
작성자 손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