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나경 인터뷰 #3
머나먼 타지에 사는 S와는 전화로 대담을 진행했다. 그는 타지에 살긴 하지만, 단순히 타지에 산다는 사실만이 그를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다. 왜 타지에 살기로 결심을 했는지를 질문하고 답변을 받기보다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하는 편이 훨씬 풍부한 설명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김지연 익명으로 인터뷰가 게재되길 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S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생각이 매 순간 변한다.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예전에 내가 했던 생각도 지금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내가 나를 미화하고 있을 수 있다. 내가 혹시 나를 미화하면 알려달라.
김지연 알겠다. 그런데 요즘은 스스로를 미화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지 않나.
S 맞다. 사실 나도 남들 앞에서 백 퍼센트 솔직해지기가 힘들다. 요즘에는 면접을 많이 보는데, 특히 면접자리에서는 나를 미화해야만 한다. 그래서 면접이란 게 의문스럽다. 지원동기를 잘 지어낸다고 해서 일을 더 잘하는 게 아니다.
김지연 맞다. 그런 질문만으로는 실제로 지원자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모른다.
S 내가 항상 받는 질문의 유형은 비슷하다. 예전에는 당신의 친구, 가족, 직장동료가 당신을 나타내는 세 개의 키워드로 무엇을 꼽을 것 같나, 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걱정이 많다’ 등으로 답했다.
김지연 그건 너무 미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세 개의 키워드 모두 좋은 걸 말했을 수도 있다.
S 면접관 입장에서는 모든 지원자가 다 자기를 미화하니까, 비슷한 답을 받을 것 같다. 그래서 면접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 그냥 내 인상을 보나? 관상을 보나? 싶다.
김지연 점점 많은 게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간다. 자기를 포장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가 않다. 현타가 온다.
S 예전에 면접 유튜브를 봤는데, 면접에서 취미를 물어보는 이유에 관련해 말하더라. 알고 보니 지원자가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푸는 방법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라더라. 그래서 그런 문제에 대한 공략법도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계산적이라고? 싶었다.
김지연 취미도 점점 보여지기 위한 것, 스펙의 영역이 되어간다. 요즘에는 자신이 취미가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취미를 만드는 느낌이다.
S 취미에도 유행이 있다. 정말 좋아서 시작했다기 보다는, 유행이기 때문에 시작한 것들. 나는 내 취미가 뭔지 모르겠다.
김지연 사실 집에 누워서 아이돌 영상 보는 것도 취미일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제일 현실적인 취미긴 한데, 그걸 자기소개서에 쓰거나, 고상한 모임에 가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취미같은 취미를 만드는 거다. 칸을 채우기 위해서 만드는 취미들.
S 다 자신을 마케팅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키워드를 뽑아서, 나를 시장조사하고 상품화해야 한다. 나는 내가 어떤 회사에 가고 싶어서 면접을 봤어도, 끝나고 나서는 내가 진짜 이 회사에 가고 싶은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나 여기 다녀”라고 말하고 싶어서 이 회사에 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기를 가고 싶다는 강렬한 동기가 남에게서 오는 건가 싶다.
겹겹이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파헤쳐보기 마련이다. 자신의 감정이 자연스러운지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나를 둘러싼 요소들이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래서 S는 자신을 둘러싼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내고자 한다. 미화를 경계해 학나경의 공식 질문, “‘학나경’을 제외하고 본인을 소개한다면” 이라는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고르고, 말을 고르고, 예쁜 언어로 가공하다보면 무의식중에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포장을 덧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지연 그곳(타지)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S 나는 항상 “거기가 뭐가 그렇게 좋아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이 좋다고 말한다. 예전에 내가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함께 지내는 스페인 할머니한테 이 일을 말했더니, 할머니가 괜찮다, 잘 될거다, 라고 하면서 “이 세상에는 미라클이란 게 있잖아” 라고 말하셨다. 만약에 한국에서 이런 말을 들었으면 지금 사람 놀리나, 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 환경에서는) 그 말을 꺼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김지연 그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라는 건가.
S 그런 포인트가 많다. 사람들이 생판 남에게도 지나가다 눈 마주치면 인사하고, 모르는 사이여도 오늘 하루 어땠니, 잘 될거야, 라고 한다. 그런 말이 일상화되어 있는게 놀라웠다. 사소한건데, 이런 말이 사회 전체 분위기를 만든다. 여기에 있으니까 나도 함께 동화되는 느낌이다. 내가 실제로 기적을 믿지 않더라도, 기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내 마음이 더 좋다. 이런 환경에 있으니까, 현실에 문제가 있어도, 화가 나도, 어느 정도는 완충재가 있는 느낌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으니까.
김지연 타지에 살게 되면서 달라진 점은.
S 나랑 아예 다른 카테고리의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 우리가 살던 사회에서 대개는 사람들이 ‘학나경’으로만 묶이니까, 그 외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외국에 나오니 가면을 벗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다. 또 (한국에 살 때와 다른 점은) 외국 말로 말을 하다보니까, 겹겹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생각의 축이 많아졌다고 하면 될까. 2D로 생각하면 될 것을 3D, 4D로 생각해야 한다. 생각의 갈래가 많아졌다.
김지연 그럼 한국에 있었으면 어땠을 것 같나? 더 생각이 단순해졌을까?
S (사회적인 관념과) 타협을 했다면 더 단순해졌을 거고, 그렇지 않았다면 (고민이) 더 많았을 것 같다. 그런데, 사회적인 관념도 외국에 나와서 보니까 되게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 안에 있을 때는 절대적인 것만 같았는데, 나와보니까 그게 아니다. 이 생각이 한번 드니까, (모든 것이) 다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지연 타지살이의 단점이 있다면.
S 외롭다. 그렇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거다. 오히려 외로움에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환경이라 좋다. 크게 단점은 아니다. 외로움에 압도당할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여기 있는거니까, 내가 방법을 찾으면 된다. 장점일 수도 있다. 완전히 주체적으로 살 수 있으니까. 느린 것도 단점인데, 아직은 감수할 만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느린 것이) 참을 수 없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김지연 ‘니 멋대로 살어’ 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특별히 스스로 실천하는 일이 있다면.
S 일단 오늘을 잘 살려고 한다. 우선 나를 챙긴다. 아침마다 마늘 차를 먹는다. 왠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사주는 음식이 있다. 고생하는 나에게 스스로 먹인다. 지금 3주 연속으로 어떤 피자집에 가서 스스로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있다. 와인같은 것도 주기적으로 스스로에게 사서 먹인다. 나를 대접하는 느낌이 든다.
김지연 맞다. 그게 바로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그런 걸 미루고 사는 사람도 있다.
S 예전에는 나도 되게 미뤘었다. 3천원짜리 초콜릿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제는 그 정도는 나를 위해 투자하려고 한다. 큰 거 아니니까.
김지연 그것보다 나를 즉각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게 없다면 사먹어야지.
타지에 홀로 놓이면 스스로를 오롯이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미화를 경계하고, 오롯이 스스로가 되고자 하던 S가 타지살이를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때로는 선택의 이유가 명료한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되지 않듯이, S 역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각과 자취가 타지살이의 이유를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홀로 부딪히는 현실적인 고민들에조차 그만의 방식으로 대응하며, S는 지금도 주체적인 개인이 되어 가고 있다.
작성자 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