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나경 인터뷰 #4
박하영은 바쁘게 지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여러 차례 평가 받는 중인 박하영에게, 평가를 위한 인터뷰가 아닌 박하영이라는 세계를 보여주는 인터뷰를 요청했다. 짧은 시간동안 들여다본 그의 세계는 시간이 더 필요할만큼 진지하고 깊었다.
로운. 최근에도 그랬고, 종종 인스타를 삭제하는데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는지.
하영. 표면적인 이유로는, 나를 위해 몰두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엄한 데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서 단절을 택하는 것이 그 이유지만, 내면적인 이유는 사람들이랑 나를 비교하게 되어서다.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보게 되면 내 상황과 비교하게 되면서 내가 조급해지더라. 그게 싫었다.
로운. 블로그 소개글을 보면, 사람들 각자의 행복을 바라는 내용이다. 어떤 이유로 그 글을 소개글로 정했는지 이유를 알려준다면.
하영. 사람들 모두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정작 나도 못그러고 있지만, 남들이 정해주는 행복이 아니라 자기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사람의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지 않나. 어떤 순간에 행복한지 스스로 깨닫고 각자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행복이 크든 작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하거나 우울할 땐 사념에 사로잡혀서 행복의 시야가 가려지는데, 그렇게 가려진 시야를 각자의 행복으로 깨끗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로운. 여러 가치관 중에 행복에 대해 유독 큰 비중을 두는 것 같다. 행복이 중요해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
하영. 한창 공부하던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성공하는 것보다는 나아가는 방향,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부터 내 인생과 가치관과 행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인데, ‘살아간다는 말은 곧 죽어간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이 제대로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행복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로운. 박하영의 행복은 어떤 행복인가?
하영. 나는 작은 모먼트에서 행복을 찾는다. 작은 순간에서 행복을 느껴야 그게 여러 순간에 걸쳐 쌓여서 내가 자주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낄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은 잘 못하고 있지만 나도 하루 빨리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 나를 둘러싼 상황 때문에 종종 짜증이 나지만, 중간중간 쌓이는 행복들이 버틸 수 있게 해준다.
로운. 박하영은 사람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보인다. 박하영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영. 나는 말에 생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 말을 엄청 중요시한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 주변에 그렇게 말로 북돋아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웃기기도 하는데 말을 예쁘게 하다 보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말로 치유 받는 느낌이다. 오래 지내는 사람들은 나와 맞는 결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결이 어떤 결이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지만 결국 곁에 남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나랑 결이 맞는다. 각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는게 아닐까 싶다.
로운. 말에 대한 생각이 확실한 듯하다.
하영. 내 의사는 분명히 전달하되, 부드러운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 게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호하게 이야기하면 안되지만, 정확도와 부드러움 중에서는 부드러움을 좀 더 신경 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부드러움에서 나온다고 믿어서, 상극인 사람과 함께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틀리고 맞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내 성격이 그렇다.
로운. 말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에게 바라는 게 있나.
하영. 배려심을 가지고 말과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런 획일화된 사람들만 모이면 재미없을 것 같다. 지금 세상도 충분히 재밌다.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야 재밌는 것 같다.
사람을 아낄수록 그 사람에게 닿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개개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 개개인 모두를 존중하는 사람일수록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한다. 그런 면에서 말과 행동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을 박하영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로운. 주변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쏟는 만큼, 상처도 쉽게 받는 편이다. 사람에게 기대하는 게 있어서 상처를 받는 편인가?
하영.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돌이켜보면 속으론 기대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감추는데, 그걸 남들은 모르니까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그러다 오해가 생기거나 하면 내가 실망하는 것 같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기대를 하는 게 아닐까. 반대로 기대는 고사하고 처음부터 힘든 사람인 유형도 있다.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할 말 못할 말 다하는 걸 솔직하다고 표현하는데 난 견디기 힘들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더라도 아닌 건 아니다 싶다. 그런 사람을 마주치면 웃으면서 멀어지는 편이다.
로운. 힘들어지기 전까지의 고민을 혼자 안는 편인지, 나누는 편인지.
하영. 대체로 나누지만, 심할 때는 아예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서 혼자 있는다. 그렇게 우울해하다가 새로운 기회나 관심사를 발견하게 되면 열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헤어나온다. 그런 기회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끝이 없이 밑으로 추락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게 싫어서 빠르게 새로운 것을 찾는 것 같다.
로운. 매일 같이 안고 사는 걱정을 잊어버리는 모먼트가 있다면.
하영.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인데, 그걸 뺀다면, 등산할 때 의외로 걱정을 잊어버리게 된다. 산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 산길엔 돌이 울퉁불퉁 박혀있어서 딴 데를 보면서 걸으면 다친다. 내 앞만 보면서 걸어야 한다. 그게 힘드니까 중간에 쉬기도 하면서 정상에 도달하면 공기도 좋고 경치도 아름답다. 너무 좋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하루하루에 집중하면서 살다 보면 나도 언젠가 큰 걸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한다.
로운. 공식 질문이다. 학교, 나이, 경력 말고 자신을 소개한다면.
하영. 재치 있고, 강단 있고, 깨어있는 박하영이다.
로운. 키워드가 확실한데, 그 수식어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하영. 나에게 있어 꿈은, 직업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학교 나이 경력을 걷어내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봤다. 우선 재치있다는 키워드는,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골랐다. 진지한 순간에 웃기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힘든 순간에도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에서,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면 비극도 별 게 아닌 게 된다는 대사가 있었다. 그 말이 와닿았다. 그렇다고 재치만 있으면 가벼워보일 수 있기 때문에, 자기만의 주관은 가지고 싶다. 강단은 있되 재치로 풀 줄 아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사람. 강단 있다는 키워드는 그래서 골랐다. ‘깨어있는’ 이라는 키워드는, 사람이 고여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골랐다. 물은 흘러야 하고 사람은 바뀌어야 한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사회 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공감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데, 그에 맞춰서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알고 깨어있고 싶다. 내가 변화를 선도하면 가장 좋겠지만 쉽지 않으니,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여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진지하고 깊은 세계를 지녔어도, 가끔은 본인도 그 세계의 아름다움을 놓치곤 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박하영 스스로 본인의 세계를 들여다보길 바랐다. 본인의 세계만큼이나 소중하게 타인의 세계를 대하는 그를 통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용기와 힘을 얻는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길 바란다. 박하영의 장점을 현명한 이들이 발견하고, 그 진가를 보여주는 날을 기대한다.
작성자 손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