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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Aug 31. 2022

이야기의 밑그림을 그려가는, 욱

학나경 인터뷰 #5

욱은 성찰하는 사람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내뱉은 말 중, 성찰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말이 없었다. 평소에 항상 생각을 고르고 다듬고 있던 나머지, 툭 치기만 하면 가장 단단한 생각의 알맹이가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김지연 인터뷰 전에 생각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학력, 나이, 경력은 계속 변한다. 삶의 궤적이 죽 이어져 있다고 하면, 거기서 몇몇 개의 특정 점들이 ‘학나경’이다. 그래서 그 점들을 빼고 이야기를 하려다 보면, 안 변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인터뷰 전에)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지을 수 있는 특성이 무엇일지 생각해 봤다. 나는 유익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무해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학나경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도 봤는데, 내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주제를 가진 이야기일까를 고민하게 되더라.

김지연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나의 지향점이다. 현재의 나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과 이야기하는 창구는 두 개, 음악이랑 글쓰기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 창구들로 하는 일들은 남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나의 기분이나 생각처럼, 개인적인 것을 풀어내기 위해서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고 있다.

김지연 그러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적인 이야기인가. 

 그렇다. 지금은 내가 사적인 이야기를 사적으로 풀어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길 것이고, 밖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지연 지금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면.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때까지 글도 나름 오래 쓰고, 음악도 오래 만든 편이다. 그런데, 나를 외부로 드러내는 행위는 잘 안 했고, 익숙하지도 않다. 그건 내 힘이 내 안쪽으로, 내부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내가 지금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서 이야기를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김지연 내가 느끼기에는, 너는 항상 분명히 너만의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을 완전히 완성해서 준비가 된 후에야 외부로 꺼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완전히 가공되고 정돈된 상태에 이르러야만 그것을 꺼낸다. 그래서 네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다는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완성되지 못해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맞다. 나는 자기 검열을 많이 한다. 안 좋게 말하면,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좋은 행동 양식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내가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생존 전략을 짠 결과다. 전에는 이게 잘못된 건가?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행복하려면 눈치 보는 성격도 인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성격인데, 갑자기 마이웨이를 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유익한 사람’보다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의 삶의 방향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에도 민감한 만큼, 남의 부정적인 감정에도 민감하다. 그는 자신 내부의 메커니즘를 인지하고, 주체적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가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어 나갈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김지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소하게나마 현재 실천하는 게 있다면.

일기를 꾸준히 쓴다. 나중에라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느낀 것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일상에서 본 것을 소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음식을 먹을 때도, 영양분이 소화가 돼야 하는 것처럼, 일기를 쓰는 일은 음식을 씹는 과정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면 하루는 그냥 가는 건데, 하루를 잘게 쪼갠 뒤에 이 일에 어떤 의미가 있었고, 내가 이럴 때 기분이 좋았고, 이럴 때 기분이 나빴고 등을 발견해 나가면서 뭔가를 얻어낸다면 내가 나중에 할 이야기의 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김지연 어떤 인터뷰를 읽을 때 인터뷰이의 학나경을 궁금해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는데, 왜 그런 것 같나.

욱 솔직히 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그 사람의) 학교 나이 경력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왜 나쁜가를 생각해 보면, 나는 학나경으로만 남들에게 보여지고 싶지 않은데, 나는 남들을 그렇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일기 같은 걸 쓰면서 자기 성찰을 하는게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좋은게,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나경’을 비꼬는데, 되게 무심하게 비꼬는 느낌이다. 막 공격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보통 “너희들이 이렇게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할 거야”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김지연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책방을 운영한다. 본인의 자유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실제 직업과 정반대의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이유가 있다면.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깨달은 게, 회사에서는 절대 즐거움을 추구할 수가 없다는 거다. 물론 소소한 성취감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처음부터 생각해서 실행까지 한 것들(예를 들면 책방)로부터 오는 즐거움은 차원이 다르다. 계속 책방을 지속하는 이유는 그거다.

김지연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어떻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밖에 내놓기 어려워한다. 그런데 (책방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순간들이 오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내가 생각한 것들을 반영한 것들이다. 어쩔 수 없이 글도 써야 되고, 공간 구조를 바꾸는 일조차도 내 생각을 반영한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연습이 되는 것 같다. 오랜 시간 고착화됐던 내 성격을 깨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김지연 스스로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내가 물 같다라는 생각을 한다. 물이 그냥 물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컵이라든지 그릇이라던지, 받쳐주는 뭔가가 필요하다. 남이 이렇게 뾰족하게 생겼다면, 나는 거기에 잘 맞춰서 그냥 스며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물은 특징이 없으니까, 그걸 담는 컵은 독특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와 반대되는 사람들과 오히려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

김지연 그럼 어디에나 담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이라는 게, 안정된 상황을 추구하는 성향과도 비슷한데.

여행과 정착 두 가지가 있다면, 나는 정착을 좋아한다. 변동성 없는 삶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계속 변하는 것 보다는 길게 꾸준하게 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루틴한 하루를 계속 살아가면서, 일기를 쓰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쌓이는 게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야기를 담은 앨범 하나, 책 하나를 내는 것이 목표다.


그의 하루들은 이야기를 고심 들여 고르고, 올바른 말로 다듬고 있는 과정이다. 그가 훗날 써내려갈 이야기가 어떤 주제일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이야기 그 자체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매일 하는 사소한 선택과 행위가 모이고 모여서 어느새 나라는 사람의 방향성을 드러내듯, 그는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소한 이야깃거리를 쌓아가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 역시도 나중에 그가 훗날 그릴 이야기의 작은 스케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성자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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