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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Sep 04. 2022

대화를 기다리는, 송치우

학나경 인터뷰 #6

송치우는 오해를 받는다. 자유로워보이는 외형에 가려진 생각들은 송치우의 시간 속에서 꾸준히, 그리고 잠잠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쏟아져나온 이야기들은, 송치우가 기다려온 시간들을 짐작케했다.



로운. 대화의 핑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송치우에겐 어떤 개념인가.

치우. 대화의 형식이 잘못돼서 갈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자라면서 많이 봤다. 감정적인 채로 대화하는 게 대표적인 예시 같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의사를 전달한다면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마음이 편안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형식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에 갈등을 중재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인지 대화 형식이 잘못되면 갈등 상황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로운. 마음이 편안한 대화의 방식이 좀 더 궁금하다.

치우. 우선 대화 중엔 감정적으로 변하면 안된다. 감정에 솔직할 수는 있으나, 감정적으로 변하면 안된다.  그래야 이성적으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상대방의 노력과 감정을 이해했다는 말을 의도적으로라도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했다해도,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가게 하는 장치를 두는 거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등의 표현들이다. 내가 말을 하게 되면서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게 되더라도, 그러한 사소한 표현들이 감정을 존중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로운.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내 의견만큼 상대방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걸 다들 기억했으면 좋겠다. 백날 말하는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해요’ 도 유사한 맥락이다.

치우. 사실 내 입장에선 그 문장도 조금은 우려스럽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끝 문장이 핵심으로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동의는 하기 어렵지만, 너 입장도 이해는 된다.’ 라는 표현이 나는 마음이 좀 더 편안하다.


로운. 성급한 일반화를 극도로 경계한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인가.

치우. ‘다른 사람들은 다 동의하는데 왜 너만 그래’ 라는 식의 일반화가 너무 싫다. 상대방과 나 사이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의 존재가 언급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나와 대화하는 사람 주변에 있는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 주변 사람들은 또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지 않나. 그런 류의 일반화를 보면 반박하고 싶어진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아닐 수도 있지’ 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내 주장에 힘이 빠진다. 어떻게 해야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 주장에 힘을 싣는 방법은 아직 못찾았다.

로운. 그런 건 진짜 우리 둘 다 각자가 이 방면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인 것 같다.

치우. 그렇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은 일반화를 할 것이다라고 가정을 해버리는 오만한 태도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당연히 일반화해서 받아들일 거라는 전제를 하니까 그런 표현을 하는 건데, 그것마저 내가 일반화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로운. 송치우와 가장 잘 맞는 형태의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사람들일까.

치우.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내가 잘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다. 이런 나를 싫어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 적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대화의 리액션 없이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이나, 두서없이 길게 하거나 대화의 맥락을 못 잡는 사람들이 있으면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 때대화의 핑퐁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대화의 역할을 깊게 고민할수록 상대방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나의 의견이 아무리 중요한들 상대방의 존재만큼 중요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의견은 틀릴 수 있어도 존재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송치우에게 대화란, 나만큼이나 중요한 누군가와 생각을 온전하게 주고받는 행위였다. 생각을 온전하게 주고받는 방법을 송치우는 오래도록 고민해왔다.


로운. 요새 요리에 꽂혔다던데.

치우. 한 3년 전부터 계속 해오고 있는데, 여기저기 보여지기 위한 것들은 아니다. 내 상황에 여유가 생기면, 지인들한테 요리를 대접해주고 싶다. 지인들한테 대접해주고 싶은 이유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내 상황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못 만나고 있지만, 요리를 매개로 만나게 되면 일을 매개로 이어지는 관계보다 부드럽고 특별해질 것 같다. 좋아하는 일로 묶이는 관계도 맺어봤는데, 하고싶은 일도 결국엔 스트레스를 가질 수 있는 관계더라. 단순히 나의 헌신으로만 이어나갈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도 하고, 또 실력이 있어야 지속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요리는 실력을 기대한다기 보다는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존재기 때문에,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골랐다.


로운. 원래는 사진 찍어주는 걸 좋아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치우. 예전엔 카메라 들고 돌아다녔다. 지인들 스냅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3,4명 해봤는데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찍으려면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이후로 좀 놓았는데, 사람들 찍어주는 건 계속 하고싶다. 사진을 매개로 관계를 쌓고 싶었다. 각자가 바라는 본인의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인지 대화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이미지 변화를 선물해준다거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주면서 사람들과 엮이고 싶었다. 요리랑 비슷하다, 사진을 매개로 관계를 맺고싶다.

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으로 중점을 두고 고민하는 것 같다.

치우. 사람이 그리운 상태인가보다. 그래서 더 엮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같다. 다양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좋다. 사람들과 엮일 수 있는 곳에서 기를 뺏기고 싶다. 집에서 충전하고 밖에서 쏟고 싶다. 가끔은 요리도 하고, 축구도 보면서 관계를 쌓고 싶다.


송치우에게 타인이라는 존재감은 꽤 거대하다. 타인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송치우는 그만큼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또 그 영향력을 좋은 쪽으로 줄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


로운. 학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장 궁금한 사람이었다.

치우. 아주 나쁘게 보는 편은 아니다. 나는 취업시장경쟁의 목전에 있으며 학나경에 의한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 없었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임을 안다. 이런 사회는 필요에 의해 나온 것이고, 편리하고 경제적이라는 나름의 장점이 있기에 계속되는 것 같다. 정확한 단어는 생각나지 않지만, 사람이 정보를 받아들일 때 분류라는 처리과정을 거쳐 받아들인다는 말을 어디서 본 것 같다. 처음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외모부터 시작해서 학교 나이 경력을 물어보고. 그에 따라 이 사람을 빠르게 기억하게 되지 않나. 이 방법은 다수의 사람들을 접할 때 꽤나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평가되는 것에도 크게 불만이 있진 않고 거기서 생기는 불이익 또한 내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평가하는 입장이든 평가 당하는 입장이든 학나경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건전한 학나경 이용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진 않는다. 이 때문에 생겨난 불쾌한 사건이나 감정들은 잘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학나경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어쩔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학나경 인터뷰와 같은 여러 움직임이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있다고 믿고 있다. 아직까지는.


로운. 공식 질문. 학교 나이 경력을 빼고 자기를 소개해준다면?

치우. 서울의 북적거림을 곁에 두고 싶은 송치우.


로운. 서울을 곁에 두고 싶은 이유가 있는걸까.

치우. 항상 문화적 선택권을 가졌다는 게 부러웠다. 재밌는 일은 서울에서 먼저 일어나더라. 일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하다못해 유명한 디저트, 핫한 음식들이 유행 다 지나고 일산으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반응해야 성공하니까 서울이 선택권을 갖고 있는 것 같았고, 그게 멋있어 보였다. 그런 문화권을 곁에 두고싶었다. 실제로 내 취향과 안맞을 수도 있지만, 그걸 경험해보고 판단하는 것과 경험해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운. 서울의 의미가 특별한 것인가.

치우. 경험의 밀도가 높은 곳이지 않나. 내가 살던 동네도 충분히 매력 있는 동네였지만, 정작 서울에서 벌어지는 더 재밌는 일들을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은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적어도 무지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또 가까운 거리에 다양한 경험들을 두다보면 사람과 엮일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다 서울에 있더라. 나도 서울에 있어야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를 해주고, 축구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송치우의 소식은 잠잠하다. 아직은 그가 되고싶은 모습이 되지 못한 오늘은 송치우에겐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잠잠한 동안 그의 세계는 더욱 깊어진다. 사람들과 엮이면서 본인만의 무언가로 타인에게 베풀고 싶어하는 송치우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단지 그 기준은 본인에게 만족스럽지 않다. 스스로의 기준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는 생각보다 더 견뎌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만큼 높은 기준에 본인이 다다르고 나면, 그 사람의 세계는 눈부실 것이다. 송치우의 세계도 결국 눈부신 세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작성자 손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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