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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Sep 04. 2022

속세의 명상가, 김태성

학나경 인터뷰 #7

인터뷰 전, 김태성은 자신이 특별하지 않아서 인터뷰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와 나눈 대화는 유일했다. 학·나·경적으로 평범해보이는 모든 사람이, 내면에는 더없이 특별한 개인의 고유함을 지니고 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프로젝트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김지연 ‘사랑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를 본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삼는데.

김태성 외국에 있을 때, 급하게 숙소 없이 머물러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 상황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해주었다. 그 친구 집에는, 머무르는 사람들이 방명록처럼 낙서를 남기는 벽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벽에 무슨 말을 쓸까 하다가, 간디가 한 이 말을 적었다.

김지연 왜 그 구절을 골랐나. 

김태성 내가 3년째 명상을 하고 있다. 명상을 하다 보면, 그 (문구로 표현하기 딱 적합한) 상태가 있다. 누구나 명상을 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이 나에게는 ‘사랑, 친절, 평화’와 같은 느낌이다. 남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에 다다르면, 내가 진짜 ‘살아있다’라는 감정이 든다. 그래서, 사랑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 간의 사랑을 많이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랑은 ‘보편적인 사랑’을 뜻한다. 인류 전체, 모든 사물, 모든 현상, 모든 사건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사랑이 굉장히 중요하다. 

김지연 친구 집 벽에다가 남기기 굉장히 적합한 문구였다. 

김태성 그 친구가 나에게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그 친구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김지연 명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김태성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조금 더 넓은 차원의 계기라면, 내가 대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인정욕이 있었다. 인정이라는 건 결국 내가 스스로 만족시킬 수 없는 거고,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거다. 이 메커니즘에 의해서 계속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까, 그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 여러 수단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우연히 명상 어플리케이션을 깔고, 하루에 10분씩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하다 보니까 확실히 습관이 잡히고, (명상으로 인해) 내 하루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김지연 구체적으로 하루가 어떻게 달라지는 것 같았나. 

김태성 요동치는 감정과 거리를 두게 된다. 지금도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했지만, 감정으로부터 조금 초연해질 수 있다. 명상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알아차림’이다. 그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내가 생각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을 바라볼 수 있다. 생각과 내가 동일시되면, 그 생각이 대개 특정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악순환 구조가 반복되고, 생각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김지연 처음에 명상을 하면서 시행착오는 없었나. 

김태성 처음에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서 집중에 방해가 됐었다. 그러다가 10일 명상 코스에 갔다. 거기서 매일 명상을 하다 보니까 명상이 깊어졌다. 내가 (그 전에) 10분 명상을 통해서는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내가 생각과 지나치게 동일시되어 있었구나, 싶었다. (그 전에는) 생각과 내가 거의 한몸이 되어서 움직였던 거다. 그래서 (명상을 하며) 이렇게나 많은 생각들이 굉장히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구나, 를 깨달았다.


김지연 스스로가 원하는 본인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김태성 외면적인 삶과 내면적인 삶이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지만, 굳이 나눈다면 나는 그 각각의 삶의 이상향이 있다. 내면적으로 나는, 어떤 삶의 상황에 처하든 진정한 자신으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외면적으로는, 좀 거창할 수도 있는데, 나와 타인의 (내면적인)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삶을 살고 싶다. (그 방법의 하나로) 요가가 에슬레저 문화로 카테고리화되어있는 것처럼, 명상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꼭 직업적으로 실현되지는 않아도, 그 수단이 책 출판이 될 수도 있고, 문화 공간 사업이 될 수도 있고, 앱 개발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외면적인 삶을 실현하려면) 내면적인 태도를 먼저 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하라고 말을 할 수 있으니까.


김지연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위해 하루하루 실천하는 일이 있다면. 

김태성 가장 중요한 건, 진정한 자신으로서 삶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많이 한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려고 한다. 몸의 감각으로도 알아차리고, 호흡을 집중하면서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할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김태성은 자신이 ‘현재주의자’라고 했다. 부정적인 과거로부터 비롯된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현재의 행동 패턴을 바꿔야만 하고, 현재를 온전히 경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므로,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는 온전한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그만의 방식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김지연 회사 면접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장점이 있다면. 

김태성 외적으로는 잘 안 드러날 수도 있는데, 나는 내적으로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이나 일대일 관계같은 것에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어른 아이’ 같은 삶을 지향한다.

김지연 그게 내가 학나경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학나경이라는 게 사실 사회가 정한 속성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사회적인) 요소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 학나경 프로젝트를 하는 중인데, 학나경 외적인 요소가 곧 순수함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김태성 맞다. 실제로 명상을 할 때, 아이의 순수한 상태에 도달한 느낌을 받는다. 명상을 할수록 스스로의 순수한 본성을 찾게 된다. 나의 고유함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명상이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삶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바로 명상을 시작한 거다. 많은 경우에, 외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혹은 무엇인가가 두려워서,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가 많다. 그런 일이 축적되면,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 족쇄를 끼게 된다. 그런데, 내가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들을 할 때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김지연 내가 지향하는 삶이랑 굉장히 비슷하다. 선택을 할 때, 뭐 이것저것 따지고 하는 선택보다, 그냥 내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선택을 하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여러 요소를 재지 말고 그냥 ‘그때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을 하자’라는 걸 목표로 삼는다.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서 내 순수성이 혼탁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김태성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를 할 때) 삶이 나에게 더 협조적으로 변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뭔가 두려워서 하거나, 어떤 누군가를 싫어해서 하거나, 뭔가를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경우와는 달리, 용기나 사랑, 알아차림, 혹은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행위는 마치 삶이 그 뒤의 길을 닦아놓는 듯한 느낌이 든다.


김지연 마지막으로, 학·나·경을 제외하고 자신을 소개한다면. 

김태성 나는 ‘속세의 명상가’다. 진정한 명상은 삶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을 만한 효과를 가졌다. 그래서 나는 명상이 꼭 속세를 벗어나야만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속세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서, 더 속세를 잘 살아나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속세에서도 삶을 지혜롭게 살아나가면서, 나의 삶 전체가 하나의 메세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인터뷰의 제목으로, 김태성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지 특히 오래 고민했다. 그가 말한 ‘속세의 명상가’보다 더 간결하고 함축적인 수식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상은 그의 취미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삶 그 자체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명상을 하는 행위처럼, 매 순간 그는 내면의 순수함을 찾아가고 있다.


작성자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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