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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Oct 03. 2022

내일을 기대하고 싶은, 차현지

학나경 인터뷰 #8


차현지는 자신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이지만, 그는 아픔을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똑부러지는 겉모습 뒤에 감춰온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차현지가 버텨온 아픔을 가늠해보게 됐다. 다른 아픈 이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로 위안을 안겨주는 차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로운. 학나경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고민되지는 않았는지.

현지. 정리된 답변을 주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나를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편이라 괜찮았다. 또 내가 아무리 어두운 사람이어도 그런 면을 드러내는 데 오히려 당당한 편이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이다보니까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로운. 완벽함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던데.

현지.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따로 관리를 해주는 집단에 속했었는데, 그러다보니 모범생이라거나, 뭐든 잘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 얘기를 꾸준히 듣다 보니 나는 항상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는데. 그런 모습이 대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바른 생활 어린이의 표본이었던 것 같다.

로운. 완벽함에 집착하는 게 피곤하지 않은가.

현지.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완벽함에 집착했다. 친구 관계에서든 연인 관계에 있어서든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똑 부러져 보여야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게 너무 피곤하더라. 내 모습을 항상 신경쓰다보니 나한테도 솔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는 날엔 집에 돌아오고 나면 엄청 피곤했다. 그게 심해져서 병원까지 가게 됐는데, 그 이후로 (집착을) 조금씩 내려 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 콤플렉스까지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얘기도 하고, 못하는 것은 ‘저 이거 못해요’ 라고 인정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또 남들도 나만큼 완벽함을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는데, 이게 되게 어려운 건데 그걸 원하다보니 남들에게 쉽게 정이 떨어지기도 했다. 근데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이것도 많이 낮아지고 있다.

로운. 지금 차현지가 생각하는 완벽한 모습이란.

현지. 요새는 완벽한 모습의 기준이 외적인 것보다는 내 내면의 상태가 기준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잠이 그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면 이것저것 하고 싶어서 잠들기 싫은데, 행복하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영영 잠들고 싶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눕는 순간에 걱정이 하나도 없을 때 행복하지 않나. 반대로 누웠을 때 다음 날 눈 뜨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지금 엉망진창이구나 라고 느낀다.


로운. 요새 삶이 엉망진창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현지. 1월까지는 모든 게 너무 순조로웠다.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여러모로 잘 돼서 뭐든지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근데 3개월이 지나고 보니까 나는 생각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고 생각보다 혼이 많이 나는 사람이었다. 근데 인간 관계까지도 내 뜻대로 잘 안 풀리면서 ‘보기보다 난 단단하지 않구나’, ‘이런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실망감이 좀 생겼다.

로운. 그런 상황은 대체로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기엔 억울함이 있을 것도 같은데.

현지. 다른 원인이 같이 있는 경우면 ‘나를 왜 이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는지, 왜 잘 지내고 있던 내 인생에 들어왔는지’ 라면서 남탓을 하기도 한다. 내가 나를 너무 소중하게 여기니까 하는 행동인데, 그래도 해소가 되진 않는 것 같다. 힘들어서 여기저기 징징대다가도 결국엔 내 탓을 하게된다. ‘그래 내가 뭔갈 잘못했으니 이렇게 됐겠지’ 라는 식으로 결론이 내 탓으로 끝난다.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렵지만, 남 탓도 하고 내 탓도 하는 것 같다.


로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더 바라봐줬으면 하는 면이 있다면.

현지.  내면이 단단해보인다는 말을 최근에 들었다. 세보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불안정하고 좀만 삐끗해도 안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내가 생각보다 여리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리 어른스러운 척해도 가끔은 나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완벽주의는 흠잡을 것 없는 모습을 만들지만, 동시에 긴장을 한시도 놓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본인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개인의 불완전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지치지 않고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차현지는 개인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다.

로운. 차현지의 삶을 관통하는 신념이 있다면?

현지. 왜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한다. 그래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살아야할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느낀다. 그게 즐거운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음에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집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죽음에 대한 생각 말고는 딱히 생각 나는 게 없다.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이거 해보니까 좀 살만하네 싶은 걸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로운. 요새는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현지. 최근까지는 인간 관계였는데 그게 잘 안풀리게 돼서 일이 되었다. 진짜 웃긴 건 인간 관계가 잘 안 풀린 다음부터 일에서 인정을 받게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이 진짜 많이 났다. 회의를 할 때도 제일 고민 안한 것 같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갑자기 내 아이디어가 채택이 되고 그랬다. 살아야 할 이유가 일이 아니면 더 좋겠지만, 어떤 이유든 살아야 될 이유를 한 개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 친구랑 하고 있는 영화 뉴스레터도 비슷한 이유로 하고 있다. 친구가 내 성격을 생각해줘서 같이 하자고 제안해줘서 하고 있는데, 이것처럼 책임감이 필요한 뭔가가 있으니까 버티게 된다. 사실 얼마 전에도 안좋은 생각들을 했는데 ‘아 맞다 내일 뭐 해야되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생각을 바로 잡았다. 진짜 웃기다고 생각했다.

로운.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기가 도는 포인트를 찾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다.

현지.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았을 때 생기 있고 활력이 있다고 느낀다. 공부할 때도 일할 때도 힘들긴 하지만 내가 내 능력을 다 하고 있고, 책임감 있게 무언가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생기가 돈다. 그렇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로운. 혼자서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같은 맥락인건가.

현지. 원래도 혼자서 잘 견뎌야 한다는 생각은 해왔는데, 요새 더 강해졌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싶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감정을 쏟아내는 시간을 보내려한다. 나는 눈물로 감정을 해소하는 편인데, 영화는 나를 울게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유튜브 같은 건 혼자 힘들 때 보면 내용이 눈에 하나도 안들어오더라. 가끔은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를 봐도 집중이 안돼서 자책감도 드는 경우도 있다. ‘나 영화 좋아했는데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이 드니까,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춤이나 스도쿠도 하게 됐다. 물론 그걸 한다고 해서 뭔가를 다시할 힘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 시간을 잘 보냈다는 것 자체로 위안을 삼는다.


로운. 감정을 달래고, 생각을 회피하는 목적으로 하는 게 영화와 스도쿠와 춤인 것 같다. 혼자서도 단단해지기 위해서 하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

현지. 어느 순간부터 내가 힘든 걸 남들에게 말할 때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정말 친한 사람들한테는 있는대로 얘기하지만, 혼자서도 단단해질 방법을 아직 찾고 있다. 좀 소소한 노력을 꼽자면 힘들다고 엄마한테 전화 안 하는 것이다. 힘들 때일수록 혼자 내 상태를 되짚어보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하고, 이성적이 되려고 노력한다.

로운. 행복의 기준이 굉장히 높은 것 같다.

현지. 남들이 봤을 땐 높지 않을 수 있어도 내 상태로 봤을 땐 행복을 이루기 힘든 것 같다. 친구 만나고 수다 떨면 잠깐 행복하다 느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최근에 들은 말 증에, 행복한 사람은 없지만, 행복한 순간은 있다는 말에 엄청 크게 공감했다. 내가 그런 짧은 순간들에서 느끼는 건 즐겁다까지인 것 같다.

로운. 나도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한 기준이 좀 더 높은 편이다. 반짝 즐겁고 재밌는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그 순간을 마주하는 내 본연의 상황이 불만족스럽지 않을 때를 행복이라고 친다. 이런 건 정말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즐거움을 캐치하고, 행복한 삶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은 그 순간의 행복을 크게 만드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순간의 행복은 휘발성이 강한 것 같다.

현지. 아는 분 중에 엄청 발랄하고 밝은 사람이 있는데, 날씨가 맑아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는데 진짜 행복해보였다. 저렇게 사는 것도 진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을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타고나야 가능한건가 싶었다.


로운. 공식 질문이다. 학교 나이 경력을 빼고 자기를 소개한다면?

현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차현지다. 사실 이 인터뷰를 응할 때부터 나의 아픔에 대해서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심하게 병을 앓고 있어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남들이 내 아픔을 볼 때 안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다. 내가 힘든 원인을 알게 되고 나서는 ‘내가 힘든 게 이유가 있는 거구나, 오히려 원인이 있어서 다행이다. 고칠 수 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돼서 오히려 기쁨이 더 컸다. 그래서 힘든 경험을 앓고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내일이 걱정되는 사람과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 있다. 차현지는 내일이 기대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 걱정보다 기대가 먼저 찾아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겐 마냥 쉽지 않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 주변에 꽤나 많다. 나부터도 내일이 걱정되는 밤을 보내기 때문에, 차현지의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아픔과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점차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차현지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작성자 손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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