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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Oct 06. 2022

강아지의 이름을 모으는, 백지연

학나경 인터뷰 #10

요새 백지연의 즐거움은 산책하며 만나는 강아지의 이름을 모으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나 역시도 걱정을 잊고 즐거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백지연의 인생은 그녀의 모토처럼 유원지에 놀러온 마냥 즐거움으로 가득해보였다. 걱정이 시야에서 행복을 가리지 못하도록 만든 그의 선택이 부럽기도 했다. 백지연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로운.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연. 늦게 자지 않고 늦잠 자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에 1시간은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하루에 1쪽은 책을 펼쳐 보려고 한다. 새로운 작품이 공개 되면 거의 바로 달려간다. 지금은 넷플릭스 <안나라수마나라> 봐야 한다.


로운. ‘인생은 유원지’ 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지연. 내가 좋아하는 하재연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유원지에 놀러 온 것처럼 알록달록한 풍선 들고 돌아다니며 즐겁게 살고 싶다. 시에 보면 ‘당신이 풍선을 불듯/내게는 하루 치의 맥주를 마실 권리./그리고 한 마리 양과/나 없는 내 인생에 대해서만/생각하고 싶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가끔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게 내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좀 심플해진다. 때때로 우리는 나에게 박하고 남에게 관대하다.

로운. 유원지와 알록달록만 들어도 벌써 즐거운 느낌이다.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지연. 계기는 잘 안 떠오르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예전에 한창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이 붐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 비행기 값으로 48만원을 주고 갔었다가 나중에 20만원까지 내려간 걸 알게 됐다. 배아프긴 했지만 이미 여행을 재밌게 다녀왔으니까 그걸로 만족하고 더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같은 시기에 다른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비슷한 상황에서 더 저렴하게 가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곤 했다. 그게 더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이미 다녀온 것 아닌가. 바꿀 수 없는 거라면 최대한 즐거운 면을 찾아서 보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이런 모습을 가끔은 친구들이 너무 긍정적이라고 뭐라하기도 한다. 난 미화가 너무 잘된다.


로운. 요새 가장 즐거운 일을 꼽는다면.

지연. 동네 강아지들의 이름을 수집하고 있다. 반려견과 하루에 1시간 이상 산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강아지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출석부 만들어야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 처음에는 같은 이름의 강아지가 여럿 있어서 까먹지 않으려고 적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작은 취미가 됐다. 요즘 새로운 강아지들이 많아져서 지금은 80마리 가까이 된다. 가장 많은 이름은 보리와 감자이고, 정상급 아이돌 모모와 디오, 사나도 있다. 버디와 이글, 해님과 달님, 사랑과 소망이도 있다.

로운. 동네 강아지의 이름들을 수집한다니, 너무 독특하고 귀엽다. 

지연. 오늘도 두 마리 만나고 왔다. 이름에 보리랑 감자가 진짜 많다. 견주들이 싫어할까봐 강아지 사진은 못 찍고 이름만 적고 있다. 사실 이걸 시작하기 전부터 나름 산책을 많이 나가서 강아지를 많이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팔로우하는 애견미용실 계정에 올라오는 강아지들이 훨씬 더 많더라. 그래서 하나씩 수집해보자고 시작하게 됐다. 강아지 이름이랑 모습을 보면 완전 찰떡이다.

내가 수집하다보니 깨달은 게 있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게 코로나 이후여서 그 전에는 강아지들이나 견주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근데 얼마 전에 강아지 주인들 몇 명이 강아지랑 같이 돗자리 깔고 둘러앉아 마스크를 벗은 채로 치킨을 먹고 있는데, 견주들도 자기들 강아지랑 똑같이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이건 연구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엔 반려견 순찰대라는 걸 강동구에서 운영하는데, 주 3회 산책 겸 순찰을 하는 거다. 순찰대가 되면 산책을 하면서 시설이 부서졌거나 특히 위험해보이는 골목이 보일 때 사진을 찍어서 구청에 알려주면 된다. 선발식도 얼마 전에 열렸는데 75마리가 시험을 봤다. 근데 말이 선발이지 기회를 여러 번 줘서 다 합격시켰다고 한다. 너무 귀엽다. 잘되면 전국적으로 운영해본다고 한다. 우리 동네도 했으면 좋겠다.

백지연이 말하는 유원지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의 유원지는 삶 자체고, 백지연은 삶 주변의 것들을 관찰하며 사랑한다. 그의 주변에 유독 즐겁고 재밌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그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를 목표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로운. 백지연을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가 있다면

지연. 뽀로로. 노는 게 제일 좋다. 근데 요즘은 루피가 대세인데. 루피가 이렇게 인기가 많아질 줄 몰랐다.  매일을 토요일처럼 살려고 한다. 다가올 출근이 두려운 일요일 말고 온전히 여유를 즐기는 토요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끌어당겨 걱정하지 않으려한다. 작년에 템플스테이를 다녀오고 여유를 찾는 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로운. 템플스테이를 다녀오게 된 이유는?

지연. 원래부터 가고싶었다. 사실 예전에 친구들 데리고 가고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가게 됐다. 그러다 친구랑 둘이 다녀왔는데, 별 생각 없이 지내다보니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여유롭게 지낼 수 있어서 마음이 너무 편해지더라. 거기서 만난 스님께서 ‘절에서 지내는 동안만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지말고, 일상에서도 마음이 편하게 지내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여유를 찾는 법을 알게 됐다. 해돋이도 처음 봤다. 원래 해돋이를 보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처음 봤는데 그렇게 예쁜 줄 몰랐다. 해뜨는 걸 보면서 이런저런 다짐을 해보니까 뭔가 마음이 다르더라. 나중에 또 보러갈 생각이다.


로운. 본인이 생각하는 백지연은 어떤 사람인가.

지연. 나는 수다쟁이다.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을 궁금해 한다. 정제되지 않은 것들도 좋아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교집합을 발견하게 되면 말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또. 서로에게 1인분의 관심을 줄 수 있는 만남을 선호한다. 사람을 1대2 혹은 1대1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많으면 내가 말을 많이 못하기 때문에.

로운. 프레임 밖에 있는 대화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더 정제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을 끄집어 내자는 게 학나경의 핵심이다.

지연.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여기저기 자랑을 하는데, 그거는 정제되고 예쁘게 담긴 거다. 근데 실제로 만나서 어땠는지 물어보면 다른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데, 그걸 듣는 게 더 재밌다. 예전에 SNS를 안한 이유도 비슷하다. SNS로 소통하는 게 소통인가 싶어서 안 한 것도 있다. 만나서 근황을 나누는 게 진짜 근황 토크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SNS 나름대로 재미가 있더라. 이야기를 하는 창구마다 다른 색깔이 있는 것 같다.


로운. 백지연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지연. 서로에게 1인분의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 강아지를 무서워하지 않고 샘김과 권진아의 음악을 좋아하고, 아인슈페너를 같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면 하루종일 수다 떨 수 있다. 관심사가 같고 안 같고를 떠나서 낭만이 없는 사람은 잘 안 맞는 것 같다. 마음이 넉넉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 대화하다가 흥이 깨져버린다.


로운. 요새 궁금한 프레임 바깥의 이야기는?

지연. 사람들에게 낙이 뭔지 매번 물어본다.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각자 살아가는 낙이 뭔지 궁금했다. 물어보면 대답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보드게임 동아리가 낙인 사람이 있고, 기타를 치는 게 낙인 사람도 있다. 아이돌 덕질도 있고 정말 많았다. 그 중에 신선한 것들은 나도 관심을 갖고, 그걸 좋아하는 이유까지 알게 되면 내가 흡수할 수도 있으니 좋다. 요새는 아까 말했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알게 되기도 한다. 다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되는 관심들은 정형화된 느낌이라서, 학나경처럼 사람들의 낙이 뭔지 조명하는 프로젝트도 하고 싶다. 나는 강아지랑 산책하는 것과 새로운 강아지를 만나면서 이름을 알게 되는 게 낙이다.

프레임 바깥의 매력을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번거롭더라도 프레임 밖의 이야기를 기꺼이 궁금해한다. 자주 꺼내지 않아 날 것 그대로인 이야기에서는 생생한 순간들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 즐거움을 아는 백지연은 본인의 이야기마저 날 것 그대로 나누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로운.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까.

지연. 재밌고 남들이 다한다고해서 하려고 하면, 이미 유행의 정점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인기가 없거나 한 물 간 것, 다른 것을 눈치 보지 않고 해보려고 한다. 전망이 끝내주는 곳은 전망대가 아니라 ‘추락주의’ ‘절대 내려가지 마십시오’라고 쓰여 있는 곳이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 같기도 하다.


로운.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

지연. <삼시세끼>와 <대장금>을 정주행하고 있다. 거의 20년 전 드라마인데 이렇게 박진감 넘치고 떡밥 회수가 잘될 수 있다니, 매 화 감탄한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다. <삼시세끼>는 보면서 한 끼의 소중함을 느낀다. 갑자기 홍시 먹고 싶어진다. 또 얼마 전엔 제기동에 한방진흥센터라는 곳에서 족욕을 하러 갔다 왔는데, 말 그대로 만원의 행복이다. 미숫가루도 준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너무 좋다. 소리가 엄청 예쁜 풍경도 있고 화장실도 너무 귀엽다. 길 자체도 한방 길이라 냄새도 정겹고 마당에 윷놀이도 있다.


로운. 공식 질문이다. 학나경을 제외하고 자기를 소개한다면.

지연. 분위기를 타는 백지연.

그 자리가 재미있으면 계속 있고, 계획을 다 세워두지만 분위기에 휩쓸리면 계획을 파괴하고 그 분위기에 타서 간다.

로운. 앞서 한 답변도 그렇고 방금 소개도 그렇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현재를 쓰기보다 현재를 즐겁게 사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지연. 강아지를 키우면서 그렇게 됐다. 부모님을 모시는 동안 살아있을 때 잘해야한다는 마음이 있지 않나. 토요일마다 참여하던 활동이 2년만에 끝나고, 주말마다 가족들이랑 동네 산책도 하게 됐고 가까운 곳은 당일치기로 놀러가기도 했다. 이전엔 몰랐는데 거창하게 준비하지 않는 일상의 즐거움도 생각보다 행복했다. 큰 효도를 하진 못해도 매일을 이렇게 즐겁게 사는 게 좋겠더라.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나중에 못해준 게 생각날까봐 현재에 시간을 많이 쓰려다보니 지금 있는 순간을 행복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행복들을 많이 쌓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사랑을 알게 됐다.

프레임 바깥의 매력을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번거롭더라도 프레임 밖의 이야기를 기꺼이 궁금해한다. 자주 꺼내지 않아 날 것 그대로인 이야기에서는 생생한 순간들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 즐거움을 아는 백지연은 본인의 이야기마저 날 것 그대로 나누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작성자 손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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