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트는 외롭다

나를 마주하는 시간

by hako

운동을 하기 싫은 이유를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귀찮아서.”

“힘들어서.”

“시간이 없어서.”

나는 거기에 한 줄을 더 붙인다.


웨이트는, 외롭다.

심심한 게 아니다.

외롭다.

심심함은 시간을 못 견디는 감정이고,

외로움은 나를 못 견디는 감정에 더 가깝다.


센터에 들어가면 모든 게 바쁘다.

기구의 쇳소리, 러닝머신의 규칙적인 진동, 누군가의 숨.

세상은 분주한데, 내 자리만 조용하다.


웨이트는 대부분 혼자 한다.

기구를 맞추고, 무게를 끼우고, 벤치 각도를 조절하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이때부터 세계가 좁아진다.

정말로 좁아진다.


세상은 나와 기구만 있는 것 같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시간도 아니고,

누군가를 관찰하는 시간도 아니다.

내가 내 팔을, 내 어깨를, 내 호흡을, 내 흔들림을

정확하게 감시해야 한다.


순간, 조용해진다.


“나에 대한 생각을 언제 이렇게 했던가.”


일상은 나를 바깥으로 빼낸다.

일을 할 때는 일정과 일정 사이를 뛰고,

집에서는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일 사이를 넘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의 표정과 분위기의 온도를 조정한다.

나는 늘 바깥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그래서인지,

웨이트를 할 때 나 하나만 놓고 이렇게 오래 집중한 적이 있었나 싶다.


웨이트는 나를 마주 보게 한다.

피하고 싶었던 방식으로.


어쩌면 내가 운동을 하기 싫은 이유는,

근육통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에 찾아오는 자기 대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걸 회피하고 싶었던 거다.


바깥의 문제는 논리로 풀 수 있다.

사람의 문제는 전략으로 우회할 수 있다.

일의 문제는 계획으로 쪼개면 된다.


그런데 나의 문제는,

쪼개도 결국 '나'다.

우회해도 결국 '나'다.


남과 싸우는 건 시끄럽다.

상대가 있고, 증인이 있고, 핑계가 생기고, 변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와 싸우는 건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외롭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잠을 못 자서.”

“시간이 없어서.”

이런 말들은 상대가 있을 때는 통한다.

하지만 웨이트 앞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바벨은 내 사정을 몰라준다.

덤벨은 내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기구는 늘 같은 자리에 있고,

내가 할 말은 늘 같은 말로 돌아온다.


“들 거면 들어.”

“못 들면 내려.”


세트가 시작되면,

나는 더 이상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오직 수행만 남는다.


하나. 둘. 셋.


여기서 외로움이 선명해진다.

외로움은 사람 없을 때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 한가운데서도 생긴다.

그런데 웨이트의 외로움은 좀 다르다.

'그 외로움은, 내 안으로 밀려온다.'

간신히 무게를 치고,

마지막 한 번을 억지로 뽑아내고,

기구에 조심히 내려놓는다.


그 순간은 잠깐의 승리처럼 보인다.

어쩌면 정말 승리일지도 모른다.

어제의 나보다 한 개 더 했고,

지난주보다 무게를 좀 더 올렸으니까.

성공의 감각은 짧고 조용하다.

들린 건 내 숨뿐이고, 남는 건 기구의 온도뿐이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길어지면, 방금 전의 ‘해냈다’는 말이 슬쩍 힘을 잃는다.


숨을 몰아쉬고, 기구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면

갑자기 밀려드는 외로움이 있다.


땀이 이마를 타고 떨어지고,

숨이 턱 밑에서 부딪히고,

심장은 아직 전투 중인데

전투가 끝난 몸은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다.


그 짧은 공백.

그 휴식 시간.

그때 외로움이 들어온다.


세트가 끝난 순간,

내가 버티던 어떤 ‘바깥’이 꺼지고

내 안의 화면이 켜지는 것처럼.


“그래, 결국 너 혼자였지.”


웨이트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도,

나는 그런 말을 듣는다.


그래서 웨이트는 외롭다.

혼자여서 외롭고,

나를 보게 해서 외롭고,

나와 싸우게 해서 외롭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기구 앞에 서는 이유는,

아마 이 외로움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은 때때로

내가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감정이다.


다른 일들은 나를 흔들고,

다른 관계들은 나를 분산시키지만,

웨이트는 나를 한 점으로 모아 세운다.

세상은 나와 기구만 있는 것 같고,

그 고립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나”라는 존재를 또렷하게 확인한다.


그래서 싫지만 필요하다.


내일도 아마, 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망설일 것이다.

오늘처럼 “귀찮다”는 말을 먼저 꺼낼 것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두려워하는 건 근육통이 아니라


고개를 숙였을 때 밀려오는 그 외로움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로움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웨이트는 외롭다.

그래서, 더 진짜다.



그 시간 시간에 네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AI 시대, 프로세스를 “글”로 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