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러닝
오늘은 조련사가 러닝을 알려준다고 했다.
뛰는 방법은 걸음마 다음쯤 배웠다.
사실 이미 아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배운다고 하니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뛰는 법을 다시 배운다.
팔동작은 앞뒤로 조금만.
보폭은 넓게. 다리는 위로. 위로.
가슴은 펴고. 속도를 올리고.
처음엔 그냥 뛰기만 했다.
아니, 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조련사가 말했다.
가슴 펴고. 다리를 좀 더 높게.
그 말이 채찍처럼 꽂혔다.
뛰자.
헉헉.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너무 다급하게 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냥 이 러닝머신 타고 벽을 뚫고 집에 가고 싶다는
아주 만화 같은 생각을 했다.
“숨이 안 쉬어져요.” 했더니
조련사가 드라마 대사 같다고 웃었다.
곧이어 평소에 호흡근을 잘 쓰지 않으신 것 같다고 했다.
아-내가 숨을 쉬고는 살고 있었을까?
그 와중에 전혀 다른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세상 살면서 이렇게까지 가슴 벅찬 일이 또 있을까.
정말 가슴이 벅찼다.
감상적인 의미로도 맞고
신체적인 의미로도 맞았다.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루는 조용히 지나간다.
그런데 뛰고 나면
몸이 분명히 안다.
오늘 내가
대충 산 건 아니라는 것을.
러닝은 조금 이상하다.
하는 동안에는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들고
끝나고 나면 그래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숨이 차오르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도 잠깐은 밀려난다.
살아남는 것 말고는 중요한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한번 뛰어보라는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마음은
생각으로 정리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몸이 먼저 정리해 주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
물론
통찰은 통찰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30분씩 러닝 하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나는 요새 이 말이 제일 무섭다.
유산소 타고 가세요.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말도 있다.
같이 러닝 할까요?
가슴 벅찬 일이 꼭 낭만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유산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