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스 이야기_카즈베기, 조지아

나의 비단길 이야기-25

by 현진

#81 가족 상봉의 날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느긋하게 케브세르의 집을 나왔다. 체크인을 하고 공항의 버거킹에서 와퍼 세트를 하나 사 먹고 파이널 콜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올랐다. 2시간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비행기가 정상 항로에 오르자 기내식을 제공했다. '괜히 햄버거를 먹었네' 싶었지만, "치킨 오어 비프" 하는 질문에는 또 뻔뻔하게 '비프' 하고 따끈한 기내식을 건네받았다.


기내식까지 먹었더니 안 그래도 짧은 비행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도시 외곽에 있는 트빌리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려면 37번 버스를 타야 한다. 다행히 그 버스는 새벽까지 운행하는데, 정류장은 공항 정문 바로 앞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버스비는 0.5라리, 조지아 돈만 받는다. 공항의 환전소에서 지갑 속에 꼬깃꼬깃 접혀 있던 5유로짜리 지폐를 내밀어 조지아 돈을 조금 바꿨다.


누나와 엄마는 이미 하루 전에 트빌리시에 도착해 숙소를 잡아두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서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버스에서 내려 지도를 봤더니 가까워 보여서 그냥 걷기로 했다. 같은 버스에서 내린 승객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길 방향을 물었다. 그는 자기도 같은 방향이라며 같이 걷자고 했다.

페르시아계 미국인인 알리는 어릴 때 이란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이란 여행 이야기에 큰 흥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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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까지는 40분 정도가 걸렸는데, 절반은 알리의 이란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걸어서 심심하지가 않았다. 나머지 절반은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면서 걸었다.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곧이어 도착한 숙소에서 가족들을 몇 달만에 만났다. 하지만 별로 이질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어제도 본 것 같은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엄마는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살도 빠지고 새까매졌다며 걱정을 했다. 까매졌다니, 나는 몰랐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행을 잘했다는 칭찬처럼 들렸다.


#82 떠먹여 주는 투어


여행하면서 늦잠을 자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누나가 깨웠다. 아침부터 눈을 뜨려니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한인민박의 장점인 한식 아침이 나온다길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심지어 메뉴는 카레라이스. 나는 식당에서 먹는 인도 카레보다 급식 카레가 더 좋다. 신김치와 함께 먹는 오뚜기 카레. 오랜만에 먹는 한국 맛이다. 당근도 들어가 있었지만 카레 속에서는 당근 맛이 안 나기 때문에 괜찮다. 한국에서는 이런 맛을 매일 먹을 수 있었는데, 왜 매일 카레를 안 먹었을까?


누나가 투어를 예약해둬서 그대로 따라나섰다. 카즈베기는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3시간 떨어진 도시다. 투어 가이드 아저씨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가며 여러 관광 명소에 들르는 방식의 여행.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면 지하철을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서 카즈베기행 마슈룻카나 버스를 찾았겠지만 누나가 돈을 좀 썼는지 가이드가 딸린 지프가 숙소 앞으로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어 가이드 아저씨는 친절하고, 영어도 잘했다. 관광지에 정차할 때마다 역사에 관한 지식을 덧붙여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서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너무 잠이 와서 몇 군데는 안 내리고 차에 남아서 잤다.

"헤이, 잠은 호텔에 가서 자야지. 지금 안 보면 언제 볼 거야."

조수석에서 잠만 자는 나에게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가 타박을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졸음이 쏟아져 손사래를 치고 다시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카즈베기로 향할수록 공기는 서늘해졌다. 도로는 어느새 깊은 산을 달리는 듯 저 멀리 높이 솟은 봉우리들이 보였다. 카프카스라는 지명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부터 많은 문학작품 속에 등장했던 이력 때문일 것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왔던, 카프카스의 그리스 민족주의 운동가 스타브리다키를 떠올렸다.


나는 동쪽을 바라보고 먼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내 친구에게 위협이 닥친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스타브리다키! 스타브리다키! 스타브리다키!"

이렇게 하면 그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목소리는 내 앞으로 몇 미터도 못 가서 공기 중에 흩어지고 말았다. _그리스인 조르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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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5_153736.jpg 카즈베기 가는 길


카즈베기에서 제일 유명한 숙소는 룸스 호텔. 하룻밤 숙박비가 200달러가 넘는다. 누나는 더블룸을 예약해뒀지만 인원 추가가 안 돼서 나는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 했다. 나는 내 예산에 맞게 10달러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갔다. 룸스 호텔이 비싼 이유도 방의 발코니에서 보이는 산의 전망 때문인데, 내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서 보는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차이점은 침대에 누워서 전망을 못 본다 뿐.


#83 카즈베기 산책하기


카즈베기의 주요 트래킹 코스 중 하나인 주타로 가는 길. 비포장 산길을 타려면 지프가 필요하다. 마슈룻카 정류장 근처에 지프들이 모여있는데, 거기서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 여러 명의 기사 아저씨들과 협상을 하고 마침내 타협점을 찾아 지프에 올랐다. 급커브에 낭떠러지, 심지어 가드레일도 없는 산길 곳곳은 산사태와 낙석으로 반쯤 막혀있는 곳도 많았다. 그래도 기사 아저씨가 운전을 차분하게 해서 다행이었다. 백미러와 핸들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성모와 성인들의 펜던트를 보면서 이런 곳에서 매일 산길을 오르내리려면 신앙심이 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 마을인 주타는 트래킹 코스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이다. 우리나라의 ~가든 같은 느낌의 식당이 두어 군데 등산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고, 조그마한 슈퍼와 산장, 돈을 받는 화장실이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지프 기사 아저씨는 주타 타운에서 4시간 동안 우리를 기다리기로 약속을 하셨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산길을 따라가는 간단한 트래킹에 나섰다.

막 산길에 진입하려는 우리 앞으로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트래커들이 지나갔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아이팟으로 비틀즈를 들으며 걷는 산길은 평화로웠다. 멀리서 누가 키우는지 소 떼가 풀을 뜯고 있었고, 날씨도 선선했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는 여유 있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러시아로 가는 길이세요?"

뜬금없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트래커가 말을 걸어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길은 트래킹 코스가 아니라 러시아 국경 초소로 향하는 길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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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려 제대로 된 등산로로 접어드니 비로소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어쩐지 유명한 트래킹 코스 치고는 너무 한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용한 국경도로가 더 좋았다. 어차피 다 똑같은 산인데 인기 트래킹 코스와 평범한 산길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아 땅의 결이 그대로 보이는 산들은 지구의 거친 껍질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 위에 올라 엄마와 누나의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나도 어릴 때는 자의식 과잉으로 여러 포즈로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그저 그렇다. 대신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필름을 현상해보면 항상 남의 사진만 잔뜩 찍혀있다.


20180726_140943.jpg 진짜 등산로


올라올 때보다 조금 더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며 내리막을 달리는 지프를 타고 카즈베기로 돌아왔다. 딱 하루치 일정을 소화한 나는 이만 쉬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는 또 어디 산 정상의 성당에 가야 한다며, 내 등을 떠밀어 지프차 아저씨와 흥정을 붙였다. 왜 흥정은 항상 내가 하는 걸까. 누나는 블로그에서 찾아본 정보로는 30 라리라며 귀띔을 해줬다.

"게르게티 사메바, 30라리"

"노, 50라리. 라스트 프라이스"

다시 몇 대의 지프와 협상을 했지만 40라리 밑으로는 가격이 내려가지가 않았다. 그새 가격이 오른 건지, 내가 협상을 못 하는 건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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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의 성당,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역시 길이 험하다. 시간과 체력만 있다면 걸어가도 될 듯하다. 실제로 걸어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주타에서 이미 몇 시간 산길을 걷고 온 우리는 지프를 타고 비교적 편안하게 올라갔다.

성당은 언덕 꼭대기에 있다. 성당에서 산 밑을 내려다보면 산자락에 안긴 카즈베기 시내가 한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게스트하우스 테라스에서 본 성당은 작은 골무처럼 아스라이 보였는데, 여기서는 내 게스트하우스를 못 찾겠다. 다시 내려가서 산마루의 성당을 올려다보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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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와 샤워를 하고 누나와 엄마가 있는 룸스 호텔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여행하며 처음 먹어보는 호텔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설레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메뉴판을 읽고 주문을 했다. 조지아 음식에는 고수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한다. 중국에서도 메뉴 사진을 보고 음식 위에 초록 풀이 흩뿌려져 있다면 거르곤 했다. 하지만 안전해 보이던 감자 요리 위에까지 고수가 뿌려져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감자 요리와 홀그레인 머스터드 소스, 같이 주문한 양고기의 궁합이 딱 맞아서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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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밖을 나왔을 때는 긴 여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방에서 혼자 마실 맥주와 감자칩을 사러 작은 구멍가게에 들렀다. 천천히 물건들을 구경하다 요거트와 초콜릿으로 마음을 바꿔 딸기맛 요거트를 두 개 사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나귀 가족을 만났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당나귀는 항상 슬퍼 보인다. 그래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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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너, 내 동료가 돼라!


누나가 큰 결심을 했다. 트빌리시까지 돌아가는 차편을 돈이 많이 드는 택시를 안 타고 미니 버스인 마슈룻카를 타 본다고. 마슈룻카는 1인당 10라리(약 5천 원) 정도면 트빌리시까지 가는데, 택시를 빌리면 다섯 배가 더 비싸다. 짐을 끌고 비탈길을 내려가 마슈룻카 정류장까지 걸었다. 누나의 분홍 캐리어가 돌바닥 위에서 심하게 튀어 끌고 오는데 애를 먹었다.

마슈룻카 정류장에는 버스의 정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고, 서로 눈치를 볼뿐이다.

'아마 우린 다 못 탈 거야. 하지만 누가 남겨질까?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는 눈빛으로.

이대로 가면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면 좀비처럼 배낭을 깔고 버스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레게머리를 하고 줄담배를 피던 남자가 갑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6명을 모아서 승합차를 대절하면 거의 마슈룻카와 비슷한 가격에 트빌리시까지 갈 수 있다. 술렁대던 사람들이 모두 레게머리를 쳐다봤다. 나도 중앙아시아에서 비슷한 합승 경험이 있어서 내 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가족들 포함 3명 일행인데, 너희도 우리랑 같이 차를 타고 트빌리시까지 갈래?"

그들은 흔쾌히 내 제안을 수락했다. 이제 남은 자리는 하나. 눈알을 굴렸더니 바닥에 혼자 앉아 빵을 먹던 형과 눈이 마주쳤다. '너, 내 동료가 돼라!'

몇 명이 파티를 모집하기 시작하니 정류장에 가득 모여있던 사람들이 레크리에이션 게임을 하듯이 서로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6명 인원을 모두 모았기 때문에 빌릴 승합차를 찾아 나섰다. 사람 모으기를 처음 시작한 레게머리 친구에게 가서 가격을 물었더니 1인당 15라리로 합의를 봤다고 알려줬다. 우리도 비슷한 가격대의 차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기사들도 낌새를 눈치챘는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렀다. 실망스럽게 정류장으로 돌아가는데 아까부터 우리 주변을 서성이던 한 분이 한 명을 추가해서 총 7명을 맞춰 오면 1인당 15라리에 해준다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어렵지 않게 1명을 더 구해 7명을 맞춰갈 수 있었다. 비록 6인승 차에 7명이 타 조금 좁았지만, 그래도 택시보다 싼 가격에, 마슈룻카보다 편하게 트빌리시까지 간다며 우리는 모두 만족했던 거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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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의 일식당에서 먹은 야채 볶음면은 학생 식당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맛이 났다. '볶은 당근이 간장과 궁합이 잘 맞네'하는 생각을 하며 면을 우물거렸다. 내가 여행하며 음식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여행 100일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꽤 힘들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오는 가족들에게 컵라면과 햇반, 김 같은 먹거리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으니까. 야식으로 호텔방에서 맥주와 함께 먹은 컵라면은 맵고 짰다. 한국의 편의점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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