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24
#77 자취왕 케브세르
에멜을 만나러 가는 길.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만나기로 한 시슬리 근처의 메시디에쿄이에 그녀의 직장이 있어 동선도 딱딱 맞았다. 시슬리는 높은 빌딩들과 은행 본사, 커다란 쇼핑몰이 있는 상업지구 느낌이다. 제바히르 쇼핑몰 앞에서 에멜을 기다렸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멀리서 에멜이 달려왔다. 작년 여름 한국에 놀러 온 그녀를 보러 휴가를 써서 만난 이후로 1년 만이다. 아직 에멜은 내 군인 모습만 기억하는 것 같았다.
"야 너 머리 많이 길었네?"
"제발 에멜, 전역한 지 4달도 넘었어..."
만나자마자 시답지 않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먹었다. 내일은 터키에서 결혼 전야제 같은 개념인 '헤나 나이트(크나 그제시)' 날이라 준비로 바쁜 것 같았다.
"크나 그제시는 결혼하는 부부가 헤나를 바르는 의식을 하는 날이야. 보통 여자를 위한 날이라 신부 쪽 가족이랑 친구들이 많이 오니까 너도 할 일 없으면 와!"
이스탄불 근교 흑해에 접한 마을인 쉴레(Şile)에서 해변 카페를 빌렸다며 바닷가에서 맛있는 거 먹고 춤추고 노는 날이니 재밌을 거라며 꼭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에멜과 내일 약속을 잡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혼자 두세 시간 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퇴근시간까지 기다려 지하철역에서 호스트 케브세르를 만났다. 바로 바이람파샤에 있는 집으로 향해 저녁을 먹었다. 요리가 자신이 있다는 그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뚝딱 밥을 짓고 토마토소스와 고기로 속을 채운 가지 요리인 카니야륵을 만들어냈다.
"나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 산 지 10년째야"
놀라워하는 내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그녀는 언젠가 한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며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했는데, 저녁상을 물리고 한국어 교재를 가져와 내 앞에 펼쳤다.
"이때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또 공부하는 게 가능해요?"
"괜찮아, 한국어 공부하는 건 재밌어. 한국인 게스트가 왔으니까 이제부터 영어 그만, 한국말만."
저녁밥을 하고, 바로 설거지와 싱크대 정리, 가스레인지 청소까지 해버리는 그녀를 보고 이 정도 부지런함이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교육이 전공이라는 나에게 그녀는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았다. 그녀의 공부를 1시간 정도 같이 봐주고, 그녀는 거실의 소파를 침대로 바꿔 내 잠자리를 만들어줬다.
"누나 나 내일 친구네 파티에 갔다가 늦게 올 거예요."
"그래? 그럼 혹시 모르니까 집 열쇠 받아가.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일하러 가. 부러우니까 너도 일찍 깨울 거야."
"네 잘 다녀올게요. 그래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나 깨우지는 마요"
#78 헤나 나이트
오후 1시, 약속 장소에서 에멜 가족이 빌린 미니 버스에 올랐다. 20인승 버스 안에는 가족, 엄마 친구 가족, 아빠 친구 가족 등 터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외국인인 나는 쏟아지는 관심을 받으며 '메르하바'라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도착한 쉴레의 해변 카페는 이미 헤나 나이트 준비를 위해서 부산스러웠다. 카페에서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신부 송별회 느낌의 행사라 그런지 손님들은 대부분 신부 쪽이었다. 나만 빼고 서로 다 아는 눈치라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앉아있었더니 곧 밥이 나왔다. 밥과 함께 토마토소스에 콩과 고기를 넣고 볶은 요리가 나와서 맛있게 먹었다. 술은 없나? 눈을 굴리며 맥주 냉장고가 있나 찾았지만 아쉽게도 술은 찾을 수가 없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행사. 행사의 70퍼센트는 춤과 노래였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춤을 춘다. 하지만 신랑을 제외한 남자 손님들은 점잔을 빼며 앉아있다. 그게 관례인가 싶었다. 나도 진중하게 앉아있다가 옆 사람과 새끼손가락을 꼬아 흔들면서 추는 '할라이'는 재밌어 보여서 나도 꼈다. 양 옆으로 잡은 손을 흔드는 건 강강술래처럼 쉽지만 스텝이 어렵다. 오른발, 왼발, 크로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옆에 앉았던 에멜의 친구 하이즈란이 도와줬다.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리듬에 맞춰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쉽게 따라 할 것 같은데,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였다.
헤나 나이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헤나를 바르는 의식이다. 신부는 얼굴을 가린 채 들어오고, 신랑의 어머니가 신부의 손에 헤나 덩어리를 푹 찍어준다. 이어 신랑도 손에 헤나를 바른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넋 놓고 뭘 하나, 보고 있기만 했다. 남은 헤나는 원하는 사람들 손에 바를 수 있다. 나도 하이즈란의 손에 이끌려 손에 헤나를 한 움큼 발랐다. 1시간 뒤 헤나가 굳으면 떼어낸다. 분명 진초록빛 염료였는데, 떼어낸 자리에는 봉숭아 물처럼 주황색 물이 들어있었다.
사람들은 헤나를 바르고 다시 춤을 춘다. 신랑이 북을 치고 신부를 중심으로 다들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췄다. 나는 지쳐서 앉아서 콜라만 마셨다. 떠들썩한 파티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끝났다. 하지만 이것도 2차 개념이 있는지, 더 놀 사람은 남아서 놀고 집에 갈 사람은 가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당연히 파티에 빠질 수 없는 에멜을 뒤로하고 다른 친구의 차를 타고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길치의 특징 중 하나가 낮에 지났던 길을 밤에 다시 오면 못 찾는 거랬는데, 그런 기준에서 나도 길치인지 밤에 길 찾기가 어렵다. 분명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돌아오는 길을 생각하며 왔는데 밤이라 그런지 거리가 완전히 달라 보였다. 결국 케브세르에게 밤늦게 전화를 걸어야 했고, 잠옷 바람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케브세르가 나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빨리 집에 가자."
#79 이스탄불 삼시세끼
알람도 맞추지 않고 꿈을 꾸다 눈을 떴다. 꿈이 생생해서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케브세르네 집 거실, 숨을 깊게 내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화장실부터 가야겠다.'
내가 돌아다니는 소리에 눈을 뜬 건지, 내가 일어나길 기다렸는지 케브세르도 방에서 나와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규나이든(좋은 아침), 아침 찬거리를 사러 나갈 건데, 같이 갈래?"
빵집에 들러 커다란 덩어리의 터키식 빵을 사고, 슈퍼에 들러 밀가루와 계란, 토마토와 치즈를 샀다. 짐꾼 역할인 나는 양 손 가득 종이봉투에 식료품을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케브세르는 밀가루에 물과 소금을 넣어 반죽을 치댔다. 그리곤 수제비처럼 뚝뚝 손으로 떼서 기름에 튀겼다. 흰 반죽은 꽃처럼 부풀며 노랗게 익어갔다. 그녀는 이어 계란을 깨 오믈렛을 만들었고, 그동안 토마토와 오이를 썰어 접시에 담는 것은 내 일이었다. 요리들이 완성되고, 정오가 넘은 시간에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었다. 케브세르가 만든 튀김빵에는 살구잼을 발라 먹었다. 꽈배기와 비슷한 맛이 났다.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그냥 집에서 쉬려고. 너 영화 좋아하면 영화나 한 편 볼까?"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는 케브세르의 말에 한국 액션 영화의 클래식, '아저씨'를 틀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너무 잔인해서 보기 힘들었는데, 이젠 그때처럼 눈을 감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 원빈이 바리깡을 들고 셀프 이발을 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나지막이 케브세르의 감탄이 나왔다.
주말 오후 시간은 한국어 공부 시간인 듯했다. 터키시 커피와 과자를 쟁반에 받쳐 들고 온 케브세르는 한국어 문법책을 꺼내더니 한국인을 만난 김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 했다. 옆에 간식까지 놓이니 오랜만에 과외를 하는 기분이 났다.
자신만만했던 나는 뭐든지 물어보라며 큰소리를 쳤다. 케브세르는 외국인 학습자인 만큼 기껏해야 안/못 부정문이나 많이들 헷갈려하는 형태소의 이형태를 물어보지 않을까 예상을 했다. 하지만 케브세르는 보조사 은/는과 주격조사 이/가가 주어를 만들 때 생기는 의미 차이라던가, 인용문에서 '하고'와 '라고'의 차이 같은 애매한 것들에 대해 물어봤다.
모국어 화자인 데다가 전공자라고 허세까지 부렸는데 대답을 못했다. 예문을 만들어 곰곰이 생각해봐도 명쾌하게 설명할 만한 뾰족한 수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동기들 단톡방에 질문을 올렸더니 이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동안 토론을 했다. 그래도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한 친구들이라 그런지 그럴 듯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대답을 듣고 보니 학교 다닐 때는 한번쯤 봤던 내용인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설명을 하려니 막막했다. 내년에 학교로 돌아가면 펼쳐질 미래가 그려지는 듯했다.
저녁은 내가 자신 있는 메뉴인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대접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하는 요리라 그런지 기름 양을 조절을 제대로 못했고, 또 마늘을 너무 많이 볶는 바람에 마늘의 탄 맛이 면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음... 그래도 먹을 수는 있는 정도야."
케브세르는 거뭇한 파스타를 후하게 평가해줬다.
"내가 한국어 배우는 이유는 말했었나? 언젠가 한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그런데 가급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내 전공 분야를 살리며 일을 하고 싶은데, 그건 힘드려나 고민이기도 해."
정리를 다 해두고 케브세르가 와인을 내왔다. 와인 병을 앞에 놓고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내가 그쪽으로 잘 몰라서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해줄 수는 없었지만, 에멜의 경우를 생각하며 터키에 있는 한국계 회사에는 한국어를 알면 취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이스탄불에 사는 건 이제 별로야."
카파도키아 출신의 그녀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나는 이스탄불이 좋은데, 오래 살아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80 에멜의 결혼식
"야 너 셔츠에 주름이 그게 뭐야, 이리 줘 봐. 내가 다려줄게."
에멜의 청첩장에 적힌 결혼식 시간인 1시에 맞춰 분주하게 준비하는 나에게 케브세르는 타박을 줬다. 같이 결혼식에 가기로 했지만 나와는 달리 느긋한 그녀에게 이미 늦었다며 자꾸 보챘지만 터키에서는 청첩장 시간에 맞춰서 아무도 안 간다고, 최소 1시간은 늦게 가야 한다며 내 말을 잘랐다.
"샌드위치 하나 먹고 가자!"
겨우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지만 터키의 빵집 체인인 시밋 사라이(Simit Sarayi) 앞에서 또다시 그녀에게 이끌려 들어갔다.
'결혼식장에 가면 밥 줄텐데,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자코 이끄는 대로 따라가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터키 결혼식장에서는 밥을 안 준다.
결국 결혼식장에는 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하지만 케브세르의 말마따나 우리는 꽤 일찍 온 편이었다. 아직 하객석은 반도 안 채워져 있었고, 행사는 시작도 안 했다.
"내 말 들었으면 더 늦게 왔을 텐데, 니가 자꾸 닦달해서 빨리 오는 바람에 기다려야 하잖아."
케브세르는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하도 늦게 오니까 아예 시작 시간을 당겨서 적어놓나 보다.
우리는 곧 나이프와 포크가 세팅된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혹시 밥을 주는지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대신 바클라바 같은 디저트와 콜라가 나왔다. 단 것을 먹으며 앉아있었더니 식이 시작됐다. 결혼식 순서는 한국과 비슷했다. 신랑 신부 입장, 주례사, 반지 교환. 하나 다른 점은 사람들이 신랑 신부에게 다가가 목에 걸린 리본에 돈을 매달아 준다. 돈 많이 벌고 잘 살라는 의미로. 나는 준비를 못 해서 돈을 못 꽂아줬다. 하지만 에멜과 남편분께 인사를 건넸다. '행복하세요.'
돈을 꽂아주는 순서가 끝나면 결혼식장을 무대로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어울려 춤을 춘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사람도 너무 많고, 이스탄불 구경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슬쩍 식장을 빠져나왔다. 이스탄불의 중심인 탁심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의 탁심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거리는 이번 시즌 터키 쉬페르리그 우승팀인 갈라타사라이의 깃발로 장식되어 있었다. 축구 열기가 강한 이스탄불은 대표적인 3팀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나뉘어 있다. 탁심과 시쉴리를 비롯한 도시 북부의 갈라타사라이, 북동부의 베식타쉬, 해협 건너 아시아 지구의 카드쿄이를 연고지로 하는 페네르바흐체까지. 터키 사람들은 대부분 응원하는 팀이 있고, 축구 얘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터키에 와서 축구를 꼭 보고 가고 싶은데 비시즌이라 경기가 있을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탁심은 모든 게 비싸다. 골목의 카페에 들어가 물담배와 레모네이드를 시켰는데도 엄청 비싸게 받았다. 밴드가 연주하고 있는 곳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케브세르가 계산을 해서 저녁은 내가 사기로 했다. 물담배인 나르길레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 코로 입으로 연기를 푹푹 잘 내뿜는데 나는 잘 안된다. 다들 폐활량이 좋은 건지, 요령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해질녘에는 오르타쿄이로 향했다. 오르타쿄이는 이스탄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새하얀 뷔윅 메지디예 모스크 뒤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대교가 자리 잡고 있다. 모스크 앞의 조그마한 광장을 중심으로 쿰피르, 와플을 파는 노점과 예쁜 카페,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만큼 유명세를 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터키의 감자 요리인 쿰피르는 이곳의 명물이다. 커다란 감자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반으로 가른 다음 버터를 바르고 사이에 햄, 치즈, 올리브, 할라피뇨 같은 토핑을 넣어서 먹는 음식이다. 토핑 종류는 20가지쯤 되는데, 만들어주는 사람에게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처럼 원하는 재료를 불러주면 된다.
돌아오는 길에는 터키의 디저트인 로쿰 전문점 '하피즈 무스타파(Hafiz Mustafa)'에 들러 누나가 좋아하는 로쿰을 조금 샀다. 이제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의 트빌리시로 넘어가 가족들을 만난다. 몇 달만에 가족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다시 터키로 돌아와 유럽 끝까지 남은 여행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며칠 동안 신세를 진 케브세르에게도 감사인사와 함께 작별인사를 했다.
"귤레 귤레(잘있어), 케브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