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광장_카흐라만마라쉬, 터키

나의 비단길 이야기-23

by 현진

#73 터키 정치 집회에 참석하기


"메흐메드, 어디야! 나 도착했으니까 빨리 나와"

야간 버스에서 내려 메흐메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오는 중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대합실의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메흐메드는 2달 전 카자흐스탄의 알마 시네마 호스텔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당당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걸어왔다. 역시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는 거겠지.

"헤이 브로, 어떻게 지냈어?"

포옹을 하고 양 볼에 번갈아 '쪽' 소리를 내는 터키식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운전을 해준 그의 형과도 인사를 하고 곧장 차에 타 집으로 향했다. 마음이 편했다. 이제 나는 걱정이 없다. 호스텔 체크인도 안 하고, 식당도 안 찾고, 매일의 가장 큰 고민인 '뭐 할지' 생각을 안 해도 된다. 며칠간 여행으로부터 휴가를 온 기분이다.


집에는 메흐메드의 부모님과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내가 지낼 방을 보여주시고, 바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터키 아침 식사인 카흐발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메뉴다. 반에서 배가 아파서 유명한 아침식사 골목을 못 갔지만 메흐메드네 카흐발트도 최고였다. 바게뜨와 비슷한 터키식 밀빵, 참깨가 뿌려진 시미트, 버터에 포슬하게 볶은 감자와 삶은 달걀, 새하얀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와 벌집이 꾸덕하게 들어있는 꿀. 그리고 오이와 토마토, 그린 올리브가 들어간 샐러드와 수박, 자두, 각설탕을 넣은 차까지. 세 끼 내내 아침만 먹어도 좋을 것 같다.


아침을 거하게 먹고 야간 버스를 타고 와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며 침대에 누웠다. 밤에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머리를 댔더니 바로 잠이 들었다. 내가 방을 뺐어서 그 친구는 거실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며칠간 잠을 잔다고 했다.



분명 점심을 먹고 얼마 안 지났는데, 메흐메드네 가족이 분주해졌다. 근처 저수지로 피크닉을 간다며 짐을 챙기는 거였다. 주말마다 근교로 나가는지, 나 때문에 특별히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크닉을 가면서 짐을 피난민처럼 바리바리 싸서 갔다. 거의 부엌을 통째로 옮겨 가는 모양이다. 여기는 일회용품은 거의 안 쓰고 부득불 집에서 쓰던 식기를 다 챙겨서 간다.

아버지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도착한 저수지에는 이미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다들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케밥을 해 먹는지 저마다 화로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좋은 자리를 찾아 자리를 깔고 불을 피웠다. 고기를 굽는 건 다 아버지의 일인지 모든 돗자리에서 아빠들이 불 앞에 앉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말은 즉 소풍을 온 모든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 한강 공원 같은 곳에서 다들 삼겹살만 구워 먹는 상황이라고 보면 되려나, 다른 메뉴를 먹는 집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어머니를 도와 꼬치에 닭고기, 양고기, 토마토, 양파, 고추 같은 재료를 끼워 건네면 아버지가 불판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구워주셨다. 나와 메흐메드, 동생인 엘라누르까지 세 명이 붙어서 꼬치를 만들었는데 만들어도 수북하게 쌓인 재료가 줄지가 않았다. 어머니께서 자꾸 먹으라고 내 앞에 꼬치를 놔주셔서 마지막에는 거의 뱃속에 탑을 쌓는 기분이었다.

"촉 도이둠...(너무 배불러요)"

맛있다는 말보다 배부르다는 말을 먼저 배워서 죄송했다. 배가 작아서 불편할 때가 이런 때다.



저녁에는 시내로 나갔다. 시내에는 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2년 전인 2016년 7월 15일 오늘은 터키 군부의 쿠데타를 시민들이 저지한 날이다. 그 당시 군대에 있던 나는 텔레비전 뉴스로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메흐메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군인들의 앞길을 막았다고 설명해줬다. 메흐메드의 아버지는 이곳 대학의 정치학 교수셔서 그쪽으로 전문가이신 듯했고, 나한테도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에 집회는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가 만들어둔 정교분리의 세속주의 원칙에 살짝살짝 어긋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법원과 행정기구,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까지 반대파를 숙청한 그는 1달 전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며 터키의 술탄이 되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당장 샤리아 법률을 들고 나와 터키를 이란처럼 만들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면서 인기몰이를 하는 그는 오늘의 기념 집회에서도 그런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와 다른 정치인의 연설이 방송되고, 그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인 광장에는 붉은 터키의 깃발이 가득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근위대였던 예니체리의 행진곡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며 사람들을 묘하게 고조시켰다.



카흐라만마라쉬의 분위기는 약간 보수의 성지 같은 느낌이었다. 터키도 유럽과 가까운 서부와 중동과 가까운 동부 사이의 정치적 온도 차가 심하다고 한다. 이즈미르 같은 서부 도시에서는 훨씬 7월 15일에 대한 의미부여가 적고 여기와 같은 동부에서는 시민들이 국기를 어깨에 두르고 다니며 북을 치고 행진을 했다. 길거리를 걷는데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려댔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가니 손님이 와 있었다. 무스타파는 메흐메드 아버지와 같이 대학에서 근무하는 조교수. 터키식 디저트인 바클라바와 차이를 마시면서 무스타파와 얘기를 나눴다. 무스타파 또한 에르도안을 좋아했다.

"그는 터키를 터키인에게 돌려줬어. 그동안 터키는 서구식 교육을 받은 친서방 엘리트들의 지배를 받았는데, 일반 대중들은 그저 그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갔지. 그들과는 성격이 다른 에르도안의 집권은 이제야 터키 국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거야. 터키인은 원래 동방에서 왔고, 한 때는 유럽을 위협하기도 했지. 오스만이 망하고 들어선 터키 공화국의 전통적인 친서방, 유럽 지향적 정책은 잘못됐어. 에르도안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뿐이야."

나는 에르도안이 포퓰리스트라고 생각했다. 민족과 국가, 과거의 영광을 내세우며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들려주는 사람. 그렇지만 오랫동안 친서방적 정부에 의해 배제되어 온 중앙 아나톨리아 출신의 무스타파의 말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그의 말에 대해 내 생각을 말했을 테지만, 외국인인 내가 그와 토론을 벌이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에... 그의 얘기만 듣고 있었음에도 차이만 5잔을 넘게 마시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메흐메드와 눈치를 보다 슬쩍 빠져나와 자러 갈 수 있었다.

#74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여행하면서 아침을 잘 안 챙겨 먹었는데, 메흐메드 집에서는 그런 거 없다. 아버지의 출근 시간에 맞춰 다 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어야 했다. 잠이 덜 깨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너무 맛있었다. 일어나서 바로 식탁 앞에 앉았는데도 입맛이 돋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배웅해드리고, 고등학생인 막내 엘라누르가 학교에 가는 것까지 봐준 뒤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엘라누르는 오빠 친구인 내가 불편할 법도 한데 별로 그런 기색이 없다. 오늘은 학교가 일찍 마치는 날이라며 학교를 마치고 다 같이 시내 구경을 가기로 했다.


카흐라만마라쉬는 터키 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의 원산지로 유명하다. 빨간 모자를 쓴 아저씨들이 콘으로 줬다 뺐었다 하며 장난을 치는 그 쫀득쫀득한 아이스크림.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그런 시시한 장난을 안 친다. 본고장의 자부심이 살아있는 이곳의 돈두르마 아저씨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아이스크림만 한 스쿱 푹 퍼준다.

사실 이곳의 유일한 컨텐츠는 돈두르마인 듯싶다. 다른 터키 친구들에게 카흐라만마라쉬를 간다고 하면 다들 자기도 가본 적 없다며, 왜 가냐고 묻는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한적한 지방 도시에 간다고 하면 다들 왜 가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비슷하겠지.



메흐메드와 엘라누르를 따라 시내의 바자르와 모스크 같이 웬만한 도시에는 하나씩 다 있는 건물들을 둘러보고, 카페에서 무할레비와 바클라바 같은 단 것을 좀 먹으며 시간을 보낸 뒤 설렁설렁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오고부터 메흐메드에게서 터키어를 배우고 있다. 터키에는 두 달 정도 있을 계획인데 기초적인 표현 몇 마디는 터키어로 말하고 싶었다. 대신 나는 한글을 읽는 법을 가르쳐줬다. 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는데, 메흐메드는 왜 같은 모음인데 종류에 따라 자음 오른쪽에 쓰는 부류와 아래에 쓰는 부류로 나뉘는지 궁금해했다. 관련 전공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그냥 생겨먹은 게 그렇다고만 말해줬다.



무지개 ATM


저녁에는 메흐메드 어머니가 퇴근하시며 라흐마준을 사 오셨다. 라흐마준은 대표적인 터키 음식 중 하나로, 싸 먹는 피자 같이 생겼다. 얇은 빵 위에 소스와 토핑을 살짝 얹고 돌돌 말아서 한 손에 들고 먹는다. 어머니께서 유리잔에 아이란을 가득 따라주셨다. 흰 거품이 부글부글 이는 아이란에는 살얼음이 살짝 얹어져 있었다. 아이란은 내가 터키에 올 때마다 나오는 숙제 같은 친구다. 시큼하면서 짭짤한 이 요거트 음료의 맛은 나에게는 익숙해지기 힘든 맛이었다. 하지만 오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아이란은 내가 먹은 것 중 최고였다. 비린 맛도 안 나고, 단 맛을 뺀 요거트 스무디 같은 맛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메흐메드와 엘라누르에게 한국 영화를 보여준다고 '범죄와의 전쟁'을 틀었다. 사극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느와르 영화를 좋아한다길래 고른 영화. 하지만 영화를 백 퍼센트 이해했나 모르겠다. '마! 느그 스장 남천동 살제?'에 담긴 우리 정서를 이해했을까.


#75 이모님과 추억여행



똑같은 하루가 또 흘러간다. 가득 차려진 맛있는 아침을 먹고, 부모님을 배웅하고, 다시 침대로 들어가 엘라누르가 학교를 마치고 올 때까지 잠을 자며 기다린다.

"오늘은 이모네 집에 놀러 가는 게 어때?"

점심을 먹으며 메흐메드가 물어왔다. 시내에 혼자 살고 계시다는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다 같이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에 내려 좁은 골목길을 따라갔다.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면 칠이 벗겨진 초록빛 대문이 나오고, 그 안에는 이모님이 가꾸시는 화분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창살이 하얀 창문에는 포도넝쿨이 드리워져 아늑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아래로 벌써 조그만 포도송이도 몇 송이 달고 있었다.

"메르하바!"

이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이모님께서 자리를 권해주시고, 차와 과자를 내오셨다. 이모님은 애연가이신 것 같았다. 테이블 위 담배 케이스에는 예쁘게 말린 담배 개비들이 담겨있었다. 이모님은 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우리도 과자를 먹으며 안부를 물었다.



이모님이 옛날 앨범을 가져오셔서 다 같이 사진을 봤다. 메흐메드의 할아버지부터 모든 가족사진이 다 있었다. 우리나라에 누가 아직 사촌의 결혼사진을 갖고 있을까. 아직 여기는 ‘가족’이라는 게 굉장히 끈끈한 것 같았다. 메흐메드도 사진만 보고 이 사람은 엄마의 동생과 어떤 관계라며 설명을 줄줄 했다. 할아버지 세대의 흑백사진부터 메흐메드와 엘라누르의 어릴 적 사진까지 다 봤다. 옛날 사진을 보는 건 항상 재미있다. 이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도 봤다. 청바지에 롱부츠를 신은 멋쟁이셨는데, 역시 항상 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분명 많이 잤는데, 이모님과 메흐메드가 터키어로 얘기하는 걸 듣고 있으니 잠이 왔다. 소파에 반쯤 누워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해가 기울어가는 저녁시간이었다. 이모님이 저녁상을 내오셨다. 치즈가 들어간 수프와 처음 보는 만두 같은 요리였는데, 둘 다 내 입맛엔 아니었다. 짜고 시큼하고, 이게 진짜 로컬 음식인가 싶었다. 남기기는 죄송스러워 숨을 참고 억지로 집어넣다가 결국 조금 남은 음식은 메흐메드에게 슬쩍 밀어줬다.


저녁 먹고 다시 피크닉

#76 이스탄불로 점프


비행기를 안 타는 게 여행의 대원칙 중 하나였지만 에멜의 결혼식까지 시간이 조금 촉박해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요즘 너무 지쳐서 이스탄불까지 16시간 버스 타기가 무섭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버스와 비행기의 운임 차이가 만 오천 원 정도밖에 안 났다. 메흐메드 집에서 신세를 지며 돈을 많이 아꼈으니 한 번 정도야 괜찮겠지, 합리화를 하며 비행기표를 사뒀다.



마지막 날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이시고, 공항까지 아버지께서 태워주셨다.

"여기가 너의 두 번째 가족이 사는 곳이니, 언제든지 다시 찾아와. 항상 우리는 너를 환영할 거야. 앞으로의 여행에 행운이 있기를."

내 짧은 터키어로 감사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아쉽고, 감사했다. 한국식으로 꾸벅 머리를 깊이 숙여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어제 반에서 있었던 폭탄 테러 때문에 공항 검문이 빡빡했다. 짐을 다 열어보고, 겨우 비행기 체크인을 하고 이륙 시간을 기다렸다. 비행기는 정말 오랜만에 타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륙할 때 약간 무서웠다. 긴장한 건 아닌데 손에서 땀이 계속 나 물티슈로 땀을 연신 훔쳐냈다.

이륙만 빼면, 비행기 여행은 정말 편했다. 버스를 타고 16시간을 좁은 좌석에 구겨져 온몸이 아파가며 이스탄불까지 실려가는 상상을 했다. 안도감과 함께 죄책감도 들었다. 이번 여행의 원칙을 깬 것 아닐까. 하지만 결혼식 이후 조지아에 갔다가 다시 터키로 돌아와야 하니까 육로 거리 계산은 그때 하자고 합리화를 했다.


1시간 뒤, 이스탄불 동쪽 아시아 사이드의 사비하 괵첸 공항에 비행기는 도착했다. 내 호스텔이 있는 베이올루는 유럽 사이드. 공항버스인 하바타쉬를 타고 보스포루스 대교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갔다. 여행 4달 만에 드디어 유럽에 도착했다는 의미부여를 조금 해봤다.



싼 값에 예약한 호스텔은 사진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는데, 알고 보니 반지하 방이었다. 그리고 여행자를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현지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한 느낌이었다. 출장 오신 터키 아저씨들이 많았고, 햇빛이 안 들어오는 방은 침침하고 습했다. 들어가자마자 잘못 골랐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물때가 가득 슨 화장실을 보고는 내일 당장 숙소를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조지아에 가기 전까지 터키 돈을 더 뽑기 싫어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워 리퀘스트를 여러 군데 써서 보냈고, 곧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당장 와도 좋아. 퇴근하고 시슬리 역에서 만나자.'

짤막한 답장에 행복해졌다. 인생사 새옹지마 아니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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