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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y 28. 2021

남자 고2의 성장 일기

Prologue

오랜만에 막내와 테이블에서 마주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누었던 일요일 저녁.

막내 : 엄마, 또 키가 크려나 봐요. 수염이 빨리 자라요. 이틀 전에 면도를 했는데, 보세요. 벌써... 그리고 몸이 다시 더워졌어요. 아휴, 더워. 나는 이제 키 크는 거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엄마 : 너 아직 고2이잖아. 키가 더 크려는 거 맞는 것 같아. 그동안 면도를 일주일에 한 번만 해도 괜찮았다면 몸이 다 자란 건 아닌 거야. 보통 매일매일 면도해야 하는 걸 보면. 네 말이 맞아. 요 며칠 네가 달라 보였어. 더 키가 큰 것 같다고 생각했어. 작은 선풍기 네 방으로 가져가. 그리고 자주 샤워하고.

'... 너와 내가 다른 길을 가는데 증상은 같구나. 몸이 더워지는 게...'

막내에게.

막내야, 이제 네가 정말 큰 나무 같아. 푸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그 가지에 무성히 잎이 자라는 게 보여.

너에게 알파벳 글자를 가르쳐주었던 기억이 새롭구나. 한글보다 먼저 A, B, C를 가르쳐주었던. 그것을 잘 배우면 한글도 쉬워지리라 엄마는 생각했어. 알파벳과 한글은 같은 소리글자이니. 홈스쿨링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알파벳은 떼고 학교에 가야지 했었단다. 위로 두 형들 챙기느라 너는 엄마랑 놀자 했던 거지. 그런데 막상 네가 학교에 가보니 친구들이 모두 4살(Pre-Kidergarten)부터 학교에 다녔다는 걸 알고 네가 좀 놀랐던 모양이야. 왜 저는 4살 때 학교 안 갔어요 하고 네가 물었어. 사실 엄마는 좀 의아했어. 4살에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고 해서. 유치원부터 학교를 가도 빠른 거 아닌가 했거든. 또 하나 큰 이유를 들자면 형들 사이에서 너까지 학교를 보낸다는 게 엄마에게는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어. 아빠 출장이 너무 많아서 그때는 엄마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거든. 우리만 미국에서 살고 있잖아 지금도. 작은 아빠,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한국에 두고 말이야.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용기가 있다거나 자신감이 있어서 이 먼 미국까지 온 것은 아니었어. 몰랐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몰랐기 때문에 외려 아빠의 결정에 따랐던 거야. 알았다면 주저했을 것 같아. 겁먹었을 거야. 그러니 막내야, 시작할 때 몰라도 돼. 미리 많이 안다고 가는 길이 더 쉬워지는 건 아니야. 알 수도 없고. 사막이어도 바다 한가운데 이어도 또는 멋진 캘리포니아의 해변가를 걷는 순간에도 그건 같을 거야. 내 옆에 있는 한 사람 때문에 모르는 길도 선뜻 나설 수 있는 거였어.

막내야, 어제보다 오늘 더 자라고 있는 이 순간이 너에게 가장 빛나는 때라는 걸 엄마는 안단다. 그 빛남을 곁에서 가까이 볼 수 있어서 감사해. 이제 곧 긴 여름 방학(6월-8월)을 앞두고 있구나. 여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조금 전에 엄마에게 말해줘서 고마워.

가까이에 있는 대학이 좋을지 형의 말대로 좀 떨어진 곳의 대학을 가야 할지 고민해 봐. 진짜 대학생활을 경험하기 원하면 기숙사든 아파트든 엄마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는 형의 조언, 귀담아들어봐. 그동안 미흡했던 공부 계획 또한 잘 세워보고. 형의 3개월 인턴십 과정이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처럼 이번 여름은 너에게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 네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잡는 첫 단추 같을 거라 엄마는 생각해. 3개월의 긴 여름방학이 너에게 터닝포인트가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pilogue

이렇게 엄마를 떠나 독립을 코앞에 둔 고2 막내가 유치원 학교를 끝내고 돌아왔던 어느 가을날.

엄마: 막내야. 오늘 학교에서 뭐하고 놀았어? 아, 마이클이랑 요즘 친하다 구우. 놀러 오래? 마이클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크다고? 그렇구나. 침대가 네 것보다 아니 엄마 것보다도 더 커어? 진짜! 근데, 이건 뭐야? 여기 종이에 그린 거 말이야. 아하, 네가 좋아하는 거 그려보고 쓰는 거였구나. 사과, 바나나, 돈가스, BEAR S.o.u... 막내야, B가 아니라 P로 시작하는 거야. PEAR. Pear(미국 배)는 과일이잖아. pear 가 아니라 bear 라구? 그럼 그 뒤에 Soup은 대체 뭘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엄마는... 뭐라고? 우리가 먹었던 적이 있었다고! Bear를?

어우.. 야!! 네가 좋아하는, 곰국(Bear Soup)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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