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나는 그 시절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악기. 음악책 마지막 페이지에 오케스트라 악기 배열표 속에 있던 많은 악기들 중 하나.
음악이란 무얼까? 소리로 전달되는 음악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고, 리듬에 몸을 움직이게 할까? 왜 신날 때 더 신나게 하고, 슬플 때 더 슬프게 할까? 소리의 어떤 부분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위로까지 주는 걸까?
둘째의 음악 선생님은 오보에를 전공했다.학교 밴드의 부디렉터로 일했는데 결혼 상대 여자가 한국 사람이어서 둘째와 친해졌다. 트럼펫을 추천해 주신 분이기도 했다. 단아한 키에 온화한 미소의 선생님이셨다.
미국 공립 중고등학교는 정기 연주회를 학교 이외 커뮤니티의 건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둘째가 8학년이었을 때 동네 미국 교회에서 정기 연주회를 열었다.
교회에는 고풍스러운 모자이크 창이 있었고 교회 단상 성가대 뒤편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큰 규모의 오래된 교회였다. 공립학교의 밴드나 오케스트라와 같은 특별 활동을 공동체에서 지지해 주는 차원에서 건물 사용을 허락해 준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성장에 지역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돕는 방법이 아닐까가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책임의식은 여기서 자란다고 믿는다. 내가 지원을 받았으니 내가 이후 돌려주어야 하는 것.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백화점 점심시간에 재즈 밴드가 나가서 15분 연주를 하기도 했다. 15분을 위해 학교 버스가 동원되어야 했다. 공연이라는 것은 그 뒤의 악기 연습도 중요하지만 악기를 운반해 주는 사람들의 도움과 백화점과의 선약 등 보이지 않는 무수한 협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백화점 정해진 공간에서 연주를 위한 자리를 만들고 연습한 것들을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15분의 연주는 이 모든 협력의 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연주나 전시는 같은 과정을 거치므로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입장료를 내야 하고 손뼉을 치는 것임을 나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박수를 열심히 쳐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둘째의 정기 연주는 그래서 기대가 되었다. 오래되었지만 굉장히 유서 깊은 교회당 안에는 벽 한 면이 전부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이층 구조였는데 밴드의 각 파트들이 이층의 난간에서 연주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날 정기 연주회는 특별했다. 부디렉터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기 때문이었다. 그는 삼 년 동안 둘째의 수업을 이끌었고 둘째에게는 더 없는 멋진 선생님이셨다. 아이들은 몇 주 전부터 선생님에게 선물과 편지로 감사와 이별을 아쉬워했다. 특히 악보 스탠드에 아이들이 사인을 남겼는데, 둘째는 한국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썼다고 했다.
선생님은 정기 연주회보다 본인에게 더 집중되지 않도록 연주회 내내 유의하셨다.이미 충분하게 학생들의 마음을 받았다고 했다.
밴드는 군악대와 같아서 군기 잡듯 아이들에게 엄격했다. 나는 이점이 좋았다. 음악으로 군기를 잡는다면 무얼 더 바랄까 싶었다.
정기 연주회의 마지막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은 단상으로 올라가셨다. 벌써 이별의 아쉬움이 몸에 스며든 것이 멀리 내 자리에서도 보였다. 나는 뭉클했다. 아이들의 환대 속에서 박수를 받으며 이별의 아쉬움을 맘껏 드러내며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수히 사람들이 가고 오는 인생인데 나는이리 아름다운 이별을 얼마나 누려왔는지 돌아보았다.
이별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이것은 이별일까.
나는 그의 연주에 목이 메었다. 뭉클했던 마음이 목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그의 선율은 귀로 들어와 목에서 더는 나가지 못하여 아프기 시작했다. 참지 않고 크게 울면 나아질 것 같았다. 목놓아 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목이 끓어질 듯이 이별은 아픈데, 내 앞에 이 이별은 아름다워 목놓아 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