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나는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일주일 방학 캠프에 참여했다.추운 겨울 도서관 열람실은 난방이 잘 되어 책을 읽기보다 잠을 쫓기 바빴다. 선생님 말씀대로 다른 것은 특별한 게 하나도 없이 책 읽기가 다였다.
지루했던 방학 캠프 마지막 날,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는 <독서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책 읽고 토론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선배들이 섞여 있었고, 도서관의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독후감 한 편을 심사하고 인터뷰를 본후에 가입할 수 있다고. 독후감은 모르겠는데 인터뷰라는 말이 나를 자극했다.
독후감은 통과되었다. 나의 어림으로 며칠 후에 있을 인터뷰 질문 중 하나가 분명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것이 예상되었다. 그렇지만 난 그때까지 딱히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 그런데, 나의 대답은 마더 테레사. 그녀의 책을 읽은 적도 없는데 그녀의 삶을 존경한다고 했다. 나는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서 이 질문에 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제일 질 떨어지는 대답을 한 것 같아 불안했다. 후회했다. 그러나 인터뷰는 통과됐다.야호!
독서회에 가보니 쟁쟁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여러 지역의 다른 학교 아이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고등부 선배들도 그렇고 나와 같은 동기들을 봐도 내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일단 공부 성적이 비교가 안되게 나보다 좋았다. 성적에 관해 크게 신경 써본 적이 없었는데 주눅이 들었다. 그러니 나는 열심히 참여해 보겠다는 생각만을 앞세웠다.
읽고 토론할 책 목록들은 일단 들어본 책들이었다. 그러나 만만히 생각했는데 내가 읽고 토론을 할 만큼은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추천 도서 <데미안>은 나에게 쉬운 책이 아니었다. 나 혼자 읽고 넘어가는 것과 그것을 여러 아이들과 함께 토론까지 해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얼른 토론이 끝나면 같이 수다 떠는 것이 더 좋았다. 당시 나는 회수권을 내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엄마는 회수권을 너무 많이 쓴다고 잔소리를 하셨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공부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나는 공부에 힘을 쏟지 않고 독서회에 매진했다.나는 독서회의 모든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 결과 고2가 되자 <회장>에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여자로는 내가 처음이었다. 영특한 독서회 아이들은 모두 대학 준비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의 바로 아래 기수였다.
K는 독서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부모님의 지방 발령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독서회에 꼭 참여하고 싶으니 모임 안내를 보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나는 아쉬워하며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 아이에게 모임 안내를 위한 편지를 보냈다.
모임 안내만 적기에는 너무 삭막하여 안부 글도 얹었다. 답장이 왔다. 학교까지 자전거로 통학한다고. 어느 날 학교에서 타고 온 자전거가 없어져 집에걸어오며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고 이번엔 먼저 편지가 왔다.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제야 그 아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받은 편지 속에 클래식 음악을 녹음한 테이프가 들어있었다. 헨델의 수상음악, 비발디의 사계...
그때쯤 마침 학교 음악 수업 과제가 클래식 음악 듣기였다. 나는 머리에서 쥐가 났다. 구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선곡한 20개의 클래식 곡들을 한두 번 듣고 제목을 알아낼 <귀>가 나에겐 없었다. 물론 열심히 듣지도 않았다. 그 선율이 그 선율이었다. 구분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클래식 음악 듣기 수업은 즐겁지 않았다. 나는 이 재미없는 음악을 시험까지 보는 음악 선생님이 그 당시 싫었다.
어느 날인가오랜만에 그 아이가 시간을 내어 모임에 나왔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나는 그만 쑥스러웠다. 얼굴을 보면서 친해지기 전에 이사를 갔고, 그 사이 주고받았던 편지로는 좁히기 어려운 거리 때문이었는지. 키가 훌쩍 커져서 달라진 모습 때문이었는지. 학교에서 운동을 꽤 잘한다고 해서 활동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모임에서는 한마디 말도 들을 수 없어서였는지. 이 모든 것 때문인지 내가 어색했다는 기억만은 확실했다.
집에 돌아가서 그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더 편지하지 않겠노라고.
대학을 진학한 후로 나의 독서회 활동은 뜸해졌다. 그 아이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연락을 받은 건 그 아이가대학을 합격한후였다. 만나자고 하니 반가웠다. 선후배 사이는 변함이 없는 것이니.
3년 만에 만났다. 그 사이 우리는 편지도 전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대학 입학을 앞둔 풋풋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학과에 입학했으며 피아노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년이 아니었다.
그 아이로부터 음악 공연 초대장을 받았다. 학교 정기연주회였다. 남산 쪽 주소가 적혀있었다. 학교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있었다. 전공은 음악이 아니었는데 그 아이의 악기는 오보에였다. 피아노를 친다는 말에도 별다른 감응이 없었던 나는 이번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보에를 연주한다는 그 아이의 초대장을 받아 들고 꽃다발을 사서 연주회 장소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날 나는 잘 입지 않던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러나 공연 끝에 꽃다발을 전해준 게 다였다. 음악회에 갔는데 음악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어둑한 객석에서 무성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왔다.
이듬해 여름 8월 땡볕, 그 아이가 학교 앞으로 오라 했다. 나는 역시 기쁜 마음으로 학교 앞에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그날 나에게 원피스는 필요치 않았다. 멀리서 그 아이가 보였다. 한 손에 꽃다발이 있었다.
엉, 이건 뭐지?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다. 선배로 나갔다.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궁금하기도 했고.
선배, 오늘 생일이죠!
응? 어! 아...
8월,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그러나 음력으로 계산하면 10월 중순 경에 해당된다. 한 번도 8월 한 여름에 내 생일을 맞은 적이 없었다. 어디서 보았는지 그 아이가 기억을 하고 있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당황했다.
그 아이는 학교 교정을 지나 강의실로 나를 안내했다.
늦은 오후, 햇살이 기울어가는 강의실은 오래된 나무 바닥이 깔려있었다. 은은한 빛이 강의실 창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오래된 학교의 명성과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에 스며있는 배움의 열기가 느껴지자 그제야 그 아이를 향한 마음이 스르르 열렸다.
여기서 네가 공부하는구나.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니어서 참 좋아.
강의실에서 배우며 가르쳤던 많은 이들의 열망과 열정과 순수가 여기저기 강의실 안에 꽃이 되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기분 좋음을 이 아이를 통해 알게 되니 흐뭇해졌다. 나는 이런 멋진 후배를 두었다며.
이른 저녁을 먹을 때 그 아이는 작은 선물 하나를 꺼냈다. 포장지를 풀자 나온 것은 향수였다. 나는 냄새가 좋다 아니다를 떠나 무슨 말로 응답해야 할지 두리번거렸다. 알 수 없는 질문 같았다. 꽃을 받았을 때 첫 번째 나의 대답은 고마워였다. 그런데 두 번째 대답은 금방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화장을 하기 전이었다.
술은 못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난 나중에 알았다. 그것을 몰라 그전까지 용기 있는 도전을 한두 번씩 내밀곤 했었다. 그러나 항상 후회로 끝났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 오빠와 여동생이 모여도 맥주 한 병을 못 비웠다. 집안 내력이었다. 그런 나에게 맥주에 관한 해석을 처음 그 아이에게서 들었다.
알코올 도수에 대한 고찰.
맥주 3% 알코올 함량 = 3방울 맥주/100방울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나 굉장히 적은 양이라는 것만 감지되었다. 그날 용기를 내었다. 그래 보아야 내가 정작 마신 양은 200cc/500cc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적은 양의 알코올도 감당이 안 되는 몸을 가진 사람이었다.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을 치고 손이 붓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졸음까지. 나는 화장실에서 얼굴을 찬물로 씻어냈다. 벌게진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나는 10분 정도만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미한 의식이 싫었다.
어둑해진 교정의 뜰. 나무 아래 벤치로 갔다. 찬 바람이 불어왔다. 서늘함이 좋았다. 금방 깨어나리라. 그 아이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는 것 같았다.그때 살며시 조용히 나지막하게 세 번째 질문이 날아들었다.
... 선배, 내가 선배를 여자로 봐도 될까요...
나는 아직 의식이 확실하게 맑아지진 않았지만, 대답을 오래 미루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번 질문은 정말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오늘을 많이 기다렸다는 것이 마침내 묵직하게 전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 말을 지금 듣는 것이 나은 것일까. 흐릿한 의식이 더 나은 것인가. 깨어있는 의식이 나은 것인가.
...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나는 마지막이 되어버린 대답을 마치자 정신이 화들짝 깨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어리둥절함으로 벤치에 멀쑥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 여기가 어디지? 너... 는 지금 나에게 무어라고 했지?
나는 어떻게 교정을 나와서 그 아이와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인사는 어찌했는지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어떻게 잡아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미 깊은 밤으로 잠겨 드는 한강 다리를 건넜다는 것. 차 창을 힘껏 열어 그 아이가 전한 열기를 강바람으로 식혔다는 것. 아, 이리 오래된 질문을 내가 너무 간단히 답한 것 아닌가 했던 것. 내가 더는 편지를 보내지 않겠다고 했던 그날처럼 나는 너무 덧붙인 설명이 없었다는 것. 이어지는 것것것들만 껍데기처럼 손에 쥐어졌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내 의식이 온전하게 돌아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