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조앤 Jun 01. 2021

베트남 사람들도 먹는다는 <고동>

지난주 금요일 한인 마트에 들렸을 때 광어회를 주문해서 샀다. 제주도산 광어가 비행기로 달라스까지 온다고 했다. 살아있는 광어를 망으로 잡아 무게를 려하자 힘차게 퍼덕이는 바람에 저울에서 날아올라 러 번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간 크기 두 마리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을 둘러보다가 <고동>을 발견했다. 올갱이국이 생각났다. 시댁에서  즐기는 음식이었다. 한인 마트가 아니면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 그것도 좀 샀다. 주말에 느긋하게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 생각하니 마음도  따라 넉넉해졌다.


고동: 직접 잡아본 적은 없다. 어떻게 자라는지 알 수 있었다.

시댁은 충북 제천이다. 말씨는 강원도 사투리와 비슷하다. 강원도 사투리는 이북 사투리와 비슷하고. 시댁은 고동을 넣지 않고 올갱이를 넣는데, 올갱이는 다슬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국물을 내어 된장을 풀고 시금치를 넣고 끓이면 향토 음식 올갱이국이 된다. 나는 서울에서 자라면서 먹어본 적은 없었다. 멸치 육수를 넣은 시금치 된장국만 알고 있었다.


오래전 이기는 하지만 남편이 출장길에 시댁에 들린다고 급히 어머님께 연락을 한 번 드렸던 모양이었다.

시금치

어머님께서는 출장으로 중국과 미국을 자주 오고 가지만 경유지 한국에 잘 들리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고 싶으셨을 텐데 남편의 일정은 하룻밤이 고작이었다. 그때 어머님께서 준비하신 음식이 올갱이국었다고 남편이 전해주었다. 어머님은 제천시에서 거주하고 계신데 급하게 신선한 올갱이를 근처 시장에서 구할 시간이 없으셨다. 꼼꼼하고 빈틈이 없는 어른이셨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음식 만들기의 기본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시댁은 종갓집이다. 나는 종갓집 맏며느리. 종갓집이라 일 년에 제사만 열두 번이다. 여기에 추석과 설날 차례가 더해진다. 종갓집은 3대(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어른들을 모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 제사를 한 번도 어머님과 함께 준비한 적 없는 나이롱 종갓집 맏며느리인 것이다.


고동을 넣은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

남편이 먹고 싶어 한 음식이었기에 어머님은 근처에 살고 계시는 친구분들과 친척분들께 올갱이를 급하게 구한다고 전화를 돌리셨다. 남편을 기억하시는 친구분 중 한 명이 제천과 가까운 강원도 영월에서 올갱이를 보내주고 싶어 하셨다. 당시에는 택배가 없었기에 영월에서 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 화물 편으로 보내주셨다고 한다. 배차 시간과 시외버스 번호를 확인하여 물건을 인수인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면 하나는 돌멩이다. 고동을 닮은 게 신기했다. 그래서 고동과 함께 딸려왔나 보다.

이렇게 귀하게 얻은 올갱이로 어머님은 정성을 다하여 국을 끓이시고 남편은 오랜만에 들린 고향에서 올갱이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올갱이국은 그저 국 한 그릇이 아니다. 그 국이 남편 앞으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버스 운전사 아저씨까지 떠올리면 그 국 한 그릇에 얽혀있는 한국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올갱이국에 넣은 된장처럼 구수하게 풀어져 있는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과 번개는 울었다 했는데 무엇이 다른가.


올갱이국<환대>가 아닐까.
고향에서만 가능한. 부모님으로부터 만 가능한.
그 국에 녹아진 것은 올갱이만이 아닌 것이다.
올갱이를 자라게 한 고향의 땅과 하늘이 있다.
그 국에 넣은 된장 역시 그러하다.
콩으로 만든 장은 익히고 삭혀진 긴 시간으로
그것은 한국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인 것이다.
금치는 또 어떠한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싹을 틔워 물 주고 잡초를 뽑아주며 키워낸 수고와 땀의 결실이다.


이 소박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누구보다 애쓴 사람은 물론 어머님이시다. 나는 이 음식을 어머님께 배우지 못하고 이렇게 먹었다는 말만 들었다. 고동을 사야겠다고 내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이리 구불구불 구구절절하다. 바다 건너 한국 사람들과 그 땅, 그 하늘의 사연과 닿아있는 것이다. 내가 <고동>을 살 때 그리운 한국의 정취도 함께 산 것이었다.



한인 마트에서 베트남 직원에게 고동으로 시금치 된장국을 끓인다 했더니 웬걸, 베트남 사람들도 먹는다는 것이다. 난 놀란 얼굴로 어떻게 해서 먹냐고 물었더니, 고동을 익힌 후에 소스를 만들어서 고동의 살을 찍어 먹는 다고 했다. 좋아한다고 했다. 이럴 때 갑자기 친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빗장을 쉽게 풀어준다. 베트남 아줌마가 전한 소스는  월남쌈 피시소스와 같았다.


            고추, 마늘, 레몬, 피시소스, 꿀 적당량.


작가의 이전글 도서관 독서회에서 책은 안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