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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Jun 02. 2021

책방에서 / 박철

밖은 추운 날이었다
말발굽처럼 굽어진 책방 안에서 한 아이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여주인은 엎드려 뭔 일을 하는지 둥그렇게 등짝만 보였다
아이가 얇은 재킷 안으로 책을 슬쩍 디밀다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책을 내려놓고 서둘러 책방을 빠져나갔다
그의 얇은 옷 탓이었다 사내는 아이를 따라 문밖을 나섰다
하얗게 얼굴색이 변한 아이는 윗동네에 산다고 몸을 떨며 말했다
산동네는 더욱 바람이 세찰 것이다
바람 탓이었을 것이다
사내는 앞으로 네가 보고 싶은 책을 사주겠노라고
무책임하게 덜컥 약속을 했다
사내는 집으로 돌아와 궁리 끝에 S전자 회장 앞으로 편지를 썼다
보름 후 담당 여직원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회사로선 배려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직원 자신이 개인적으로 책값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넉넉지 않은 여직원은 결혼을 약속한 애인에게 의논을 하였다
역시 가난한 애인은 고민 끝에 책방을 하는 첫사랑에게 사연을 풀어 놓았다
멀리 사는, 15년 만에 만난 첫사랑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책들은 매달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아이에게 전해졌다
모든 사랑이 손을 잡고 한마음이 되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아이와 책방 여주인이
몇 집 건너 산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들 있었다
아이가 훗날 시인이 될 거라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들 있었다

Image.Pinterest/Joanne

한 사람 한 사람

이 엮은 시 한 묶음이
시인이라는 꽃을 피운 아름다운 이야기.
서로 닿아있다는 것.
보이지 않는 씨줄과 날줄.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과 죽음은 나의 손실이라고.
비록 내가 매일 매 순간 생생하게 느낄 수 없다 해도.
그렇다면 누군가의 기쁨과 소망과 환희는
나의 기쁨과 소망과 환희에 얹어지는 것.

따로 또 같이,

이 엇박자가 나는 늘 생경하기만 한데
따로 또 같이 가는 길이었음을 시인 소년은 말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John Danne)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갑(岬)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며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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