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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Aug 05. 2021

살기와 쓰기

쓰는 사람으로 내가 즐거웠다면 쓴 글의 내용이 즐거웠던 때문일까. 쓰기와 내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쓰기가 말하기와 같다고 한다면 슬프건 기쁘건 아프건 절망적이건 나는 말을 하니, 말을 하는 동안은 역시 쓸 수 있음을 돌아본다.


   행과 불행은 그 자체로 행과 불행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에게 사탕은 행복일 테지만 어른의 눈에는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기도 하지 않던가. 내가 원하는 행복이 아이가 사탕만을 원하는 것과 실상 무엇이 다른가, 다를 수 있을까. 나는 작은 아이에서 신체가 자란 만큼 삶의 태도와 삶의 의미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쩜 끝내 자라지 않을 수도.


  쓰는 일은 사는 일이다. 나에게는 잘 살기 위한. 오늘 내가 살았으니 써야 할 것들이 생겼다. 쓰는 동안 하루를 잠시 돌아볼 시간을 그나마 확보하는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리는 것. 그다음 숨을 쉬기 위하여. 사는 일을 내가 멈추지 않듯이 쓰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나는 이것 말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세상의 한 부분이니 오늘의 나를 쓰는 것은 세상의 한 부분을 쓰는 것이요 말하는 것. 대단한 성찰, 반성, 용서, 발견, 사랑이 없어도.


   세상  작은 한 곳에서 피고 지는 풀과 꽃처럼. 한 생이 꽃씨가 바람에 날려 땅에 심기듯 이 땅에 와서 머물렀던 내 자리, 내 주변에 있던 것들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것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쓰는 것이다. 무언가를 그려도, 노래로 불러도, 수를 놓아도, 춤을 추어도, 기타를 쳐도 되리라.


   쓰는 것은 글로 말하는 것. 말은 곧 나. 글은 나. 서툰 대로 부족한 대로 아쉬운 대로 슬픈 대로 기쁜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아가는 모양대로 나를 쓰자.


  나는 세상이고, 나는 너이고, 나는 지음 받은 자이고, 나는 먼 별에서 비롯된 한 사람이다.


   쓰기를 통하여 나를 들여다보는 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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