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밥

밥하기 그 경건함에 대하여

by 미쓰조앤

사람이 '산다'는 표현을 쓴다면 나는 '먹고사는 일'이라는 말을 가져다 쓸 것이다. 먹다가 제일 앞인 걸 보면 먹는 일이 제일이고 시작이고 끝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귀신이 눈에 보인다 한들 형태와 색이 분명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일 텐데 때깔이 좋을 거라는 찬사를 붙여 놓았다. 잘 먹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먹는 일은 나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나의 허기를 공유하게 되면 더 살가운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식구는 한 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라 했다.

나는 2년 전부터 냄비밥을 하고 있다. 전기 압력밥솥이 고장이 났는데, 한인 마트에 가서 사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생긴 일이었다.

여름에 캠핑을 갈 때도 난 작은 수동 압력솥이나 전에 쓰던 노란색 전기 압력밥솥을 들고 다녔다. 캠핑장에서 늦은 아침이나 이른 저녁에 밥을 하면 압력밥솥에서 압축된 공기가 쉬이 쉭 쉬이 쉭 빠지는 소리는 유난스러웠다. 조용한 캠핑장에 울려 퍼졌다. 보통 캠핑장에 한국 사람은 우리 식구가 유일했다.

밥 짓는 일은 쉬웠다.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동안 쉽게 밥을 해온 것이다. 쌀 씻기가 끝나면 전기 압력밥솥의 버튼을 눌러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전기 압력밥솥은 제가 알아서 밥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밥은 했는데 밥과 친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매번 밥을 맛있게 먹었다.

처음으로 냄비밥을 하기 위해 냄비와 쌀을 마침내 꺼내 든 날 사실 난 잠시 멀뚱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쌀 씻어 밥하는 사람 얼굴을 했다. 대충 쌀과 물을 같은 양으로 잡으면 된다는 것은 어림짐작할 수 있었는데 불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첫 사람, 밥을 지었던 첫 누군가가 나뭇가지 꺾어 밥을 지어야 했을 때 나와 같았을까. 가스불을 켜서 밥을 하는 나는 나무로 불 피우는 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지만 사실 좀 난감은 했다.


내 맘대로 센 불 10분, 중간 불 5분, 뜸 들이기 3분을 정한 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간으로는 맛있는 밥이 완성되기 어렵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되었다. 쌀의 양에 따라 불 조절 시간도 당연히 달라야 했다.

오늘은 밥에 물이 많았군. 밥이 질었네.
오늘은 뜸을 더 들여야 했군.
오늘은 물이 너무 적은가, 된밥이 되었네.
오늘은 누룽지가 많이 나와서 정작 밥의 분량이 줄었네.

내가 찬 밥으로 대신해야겠군.

서울 엄마와 통화할 때 내가 냄비 밥 얘기를 꺼내자,
"요즈음 누가, 그냥 하나 사거라... 냄비 밥이 맛은 있지." 그러셨다.

2주 정도가 지나자 나는 쌀의 분량이 바뀌어도 밥을 일정하게 내 입맛에 맞는 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우리 집 냄비 밥 레시피를 찾아내었다. 이 레시피는 내가 가지고 있는 냄비의 크기와 냄비 바닥의 두께를 고려한 것으로 나름 황금비율을 찾아낸 것이다. 나는 양 조절을 눈대중으로 못하는 사람이라 계량컵이 없으면 밥을 못하는 사람이다. 컵이 없으면 작은 그릇으로라도 대체를 해야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갔을 때 내가 살짝 의아했던 것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엘리베이터는 친절하게 몇 층이라고 말을 했다. 엄마 집에 있는 자주색 전기 압력 밥솥도 말을 했다. 밥의 진행 상황을 말해주었다. 현관문 자동 키도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말을 했다. 일방통행 말하기 같아서 낯설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물은 셈 치고 대답을 해주어 처음엔 뭔가 싶었다.

그렇게 낯설어했던 내가 2주 동안 밥하기를 하면서 묻지도 않는데 냄비와 쌀에게 말을 했다.

"오늘은 이렇게 해보자, 아니라고? 오늘은 이렇게 해볼게. 이게 맞는 거라고? 잘했다고?"

쌀에게 말을 걸었다.

깨끗이 여러 번 씻고 헹궈내었다.

쌀은 물을 먹고 밥이 되었다.

냄비에게 말을 걸었다.

냄비는 불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고

그사이 쌀은 열을 먹고 밥이 되었다.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이른 아침 부엌에서 맑고 깨끗한 첫 물 한 그릇을 떠 오는 것으로 아침을 여셨다. 오랜 세월 부엌에서 밥 짓는 일은 할머니에게 고행과 다르지 않았을 터. 그 고단함을 함께 해준 불과 그릇들과 나무들이 있는 부엌은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들어가시기 전 다짜고짜 쌀을 푹 퍼내는 일에 앞서 마음을 갖추는 일이 먼저였지 않았을까. 이슬이 내려앉은 우물에 나가서 정성스레 물 한 바가지 퍼올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움푹한 하얀 대접에 맑은 물을 담는 일. 그 물에 하늘을 담아서 어둑한 부엌 한쪽에 놓아두는 일.

그 일은 할머니에게도, 그 밥을 짓는 마음에도, 수고로 지어진 그 밥을 먹었던 나에게도, 먹고사는 일은 한 사람의 경건함으로 시작되고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경건한 밥이기에 나를 살리는 것이었다. 그 밥을 먹으면 얼고 고단하고 허기진 내가 살아나는 이유였다.

할머니의 큰 딸인 엄마는 늦은 저녁 오빠의 저녁 한 끼를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놓으신 곤했다. 그 엄마의 큰 딸은 이국 멀리서 매일 냄비밥으로 이제 저녁을 짓는다.









밥, 그 밥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이선관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김이 난다 식기 전에 얼른 와서

밥 같이 나눠먹자

마주 보면서 밥 같이 나눠 먹으면

눈빛만 보고도

지난 오십 년 동안 침전된 미운 앙금은

봄눈 녹듯이 녹아 내릴 것 같애

우리 서로 용서가 될 것 같애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밥, 그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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