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싫은 냉장고 청소

by 미쓰조앤

요 며칠 냉장고가 몸살을 했다.


부엌 전체가 흔들리게 소리를 냈다. 얼음 얼리는 곳이 이전부터 맘에 안 들어 일부를 분리시켰는데 그게 말썽인가 했다. 그렇다 해도 한 가지가 더 있다. 청소할 때가 된 것이다.

한번 시작하기가 왜 그리 징그럽게 어려운지. 냅다 냉동고 문을 열어젖혔다. 매번 그렇지만 청소는 시작하기가 제일 어렵다. 일단 시작해서 끝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아는데도 청소의 시작은 항상 맘을 먹었다, 에서 하기 싫다로. 하기 싫다, 에서 내일로, 주말로, 다시 월요일로. 미루기를 문을 여닫듯이 반복했다.

이번에도 이앓는 소리처럼 냉장고가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또 미룰 궁리만 했을 텐데 그 소리가 너무 컸다. 도와줄 사람도 없어 문을 열어야만 하는 한계에 마지못해 내 몸을 움직인 셈이 되었다. 냉장고 안은 참 알뜰도 하였다. 누가 상 주기라도 하는지 꽁꽁 싸매어 빈틈없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묵고 묵은 자투리 먹을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 보는 일이 예전보다 많이 힘들어졌다. 집에서 음식을 더 많이 하게 된 상황 탓도 있지만, 마켓에 일하는 직원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셀프 체크아웃이 늘어난 점도 큰 이유였다. 한국 마켓에서 한 번으로 장 보기를 끝낼 수 없어서 더 그러하기도 하다. 미국 마트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고기와 치즈, 냉동식품이나 즉석식품들은 가격과 질을 비교하면 또 다른 마트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계산을 하고 장 보기를 끝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물건을 골라 카트에 담고, 카트에 담은 물건을 계산대로 옮기고, 내가 스캔하고 카드 결제 끝낸 후 다시 카트에 옮겨 놓는다. 차 트렁크로 물품들을 싣고, 집에 와서 트렁크에 쌓인 물건들을 냉장고 등에 분류해서 넣기까지 그 지난한 과정이 반복되자 배달 주문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새해 연휴나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는 경우 카트 두 개가 필요한 분량이 되고 보니 장 보러 가기가 싫어졌다. 요사이 장 보기를 일주일에 한 번, 2주에 한 번만 나가게 되어 한 번에 사 가지고 올 분량이 많이 늘어서 그렇기는 하지만, 어른 다섯 명이 두 끼 정도인데도 이렇다. 장보고 들어온 날은 정말 저녁 만들기가 싫어진다. 왜 장 보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싶다. 장 보는 날 음식을 시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딱 이 짝이다.

이렇게 힘들게 사 왔으니 버리지 못하고 꽁꽁 싸매 놓은 것이다. 내 수고를 꽁꽁 싸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수고도 때를 지났다. 덜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다. 유효기간이 지났다. 속도를 내어 냉장고 속을 털어냈다. 냉장고야, 너 토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헛구역질하느라 힘들었구나, 끄억끄억 억지로 참고 있었구나. 나는 이 안쓰러움을 도와주기라도 하는 듯, 토해내듯 끄집어내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처넣었다. 정작 먹지도 못할 것들을 잔뜩 끼고 있느라 네가 몸살을 했구나.

나의 수고만 앞세웠다. 냉장고 안에 내 수고는 매일매일 쌓여갔다. 꺼내어 쓰지 않은 나의 수고는 꽝꽝 얼어 그 쓸모를 잃은 채 냉장고에게 체증으로 남았다. 결국 아프다고 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루살이의 인생이다. 이 하루도 내가 알 수 없지만.
성경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하루치의 만나, 먹을 것을 날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급하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했다. 새벽마다 하늘에서 비처럼 만나가 우수수 떨어졌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고, 너무 거두면 곤충이 먹으므로 있어야 할 만큼만 거두어야 했다.(출애굽기 16장)

매일매일 그날만큼의 만나로 만족하는 삶이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잊었다. 내일을 위해 두 개 세 개를 더 사서 냉장고 속에 채워 넣지 않기로. 냉장고가 비어지니 나도 개운타. 속이 시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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