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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r 16. 2021

한계령 연가 문정희

시詩하고  답答한 그녀/ 시와 동행하기

한계령 연가


                        문 정 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소백산을 오르며 내리며 양희은의 '한계령'을 백 번은 불렀던 것 같다. 양희은 팬이 아니었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가요, 팝 등을 듣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래전  오월 소백산 철쭉제에 나선 날. 난 이 노래가 아니면 견디기 힘든 상태였다. 마음에 한 사람을 들인 것은 <일대 사건>이 되어 나를 이리저리 휘몰아대기 시작했다. 내가 내 맘대로 들였던가, 들일 수 있나. 그렇지 않았다. 그럴 수 없는 일이잖은가? 내가 들였다면 내가 몰아낼 수도 있어야 한다고 난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소백산 근처에 밤늦게 도착한 후 다음 날 아침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오월이었다. 긴 팔을 입을 수 있는 온화한 날이었다. 산의 능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고, 그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편안했다. 산 아래쪽으로 낮고 먼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산은 다리 아프게 오르락 만 있는 줄 알았다. 경사가 낮아 완만한 소백의 능선은 위, 정상을 향해 있었지만 나를 힘들이지 않는 여유로 다가섰다.


   내 마음의 길을 건너편으로 터놓을 수가 없어서 꽉 막힌 몸의 체증은 헛구역질로 올라왔다. 이 마음을 나 스스로 손 놓아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 무참히 나를 갉고 갉았다. 아프고 쓰라리게 했다. 신음처럼 '한계령' 노래를 한계령 아닌 곳에서 불렀다.


우지 마란다
잊으란다
바람처럼 살란다
그만 내려가란다

   오월 철쭉으로 가득한 소백산은 분홍빛으로 분홍 햇살들로 흐드러져가고 있었는데,  내 안쪽은 한계령 폭설로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LevdLXYWwo


*정덕수 시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덕규가 작곡함.


한계령 / 양희은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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