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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r 24. 2021

오 마이 신데렐라, 응답하라!

칼한 자루와가죽신 한 켤레

  나는 늘 내 발이 곰 발바닥을 닮은 발 같다고 생각했다. 


  발 볼 좁은 신발을 신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발은 컸다. 단화라 이름 붙은 신발을 신고 싶었으나 맞는 크기가 없었다. 결혼 전 회사를 다닐 때 이야기다. 그러니까 1990년 초였다. 회사에서 멀지 않았던 명동에 큰 맘먹고 들린 구두 가게에 들어서면 진열대 위의 구두들은 황홀하게 예뻤다. 나는 조용히 요리조리 살피다 그중에서 가격에 꼭 맞는 것을 찾아내어 내 발 크기의 구두를 달라 했다. 점원이 잠시 후에 들고 온 구두는 내가 진열대 위에서 보았던 신발과 달랐다. 이 구두가 저 진열대 위의 구두와 같은 건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처음 당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높은 굽이 아니었는데, 속으로 말할 뿐. 하이힐은 말 그대로  나에게는 높은 언덕이었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려면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여의도를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갈아탈 버스를 기다릴 때 겨울엔 너무 추웠고 여름엔 너무 더웠다. 차에 겨우 올라타 빈자리가 생겼을 때 너무 흐뭇했지만 치마를 입은 경우 어떤 자리는 앉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추운 겨울날 스타킹에 치마와 굽 높은 구두의 조합은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 이전 나는 먼저 버스 정류장에서 추워 죽을 것 같았고, 내 발에 맞는 발볼 넓은 구두를 찾기 어려우니 내 새끼발가락은 비좁은 구두 속에서 괴로웠다. 요는 버스를 갈아타고 다니면서 굽 높은 구두와 치마는 나에게는 정말 무리였던 거다.


     내 발가락은 갓난 어린 아기 그대로 다섯 발가락의 길이가 비슷하고, 통통하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동료 여직원들에게 내가 엄살을 보태어 예쁜 목 부츠 한 번 신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러자 발이 커요? 그렇게  안 보여요 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고.  나는 대뜸 내 신발 신어볼래? 했다. 그러고는 서로 신발을 바꾸어 신어보았다. 나는 예상대로 내 발가락만 가려질 뿐 더 이상 동료의 신발 속으로 내 발을 밀어 넣을 수가 없었다. 어쩜 이리 작을까 싶어 신기했다. 어머, 어머, 뭐야, 진짜네. 항공모함이잖아.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봐, 내가 말했잖아. 내 발 크다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흘겼다.

    디즈니에서  공주가 나오는 영화는 신데렐라에서 멈추었다. 왕자가 잃어버린 유리 구두의 주인공을 찾으러 신데렐라의 집까지 왔다는 이야기의 흐름은 뒷전이었다. 내 눈에는 왕자가 꺼내놓은 그  현실감 없는 유리 구두에  꼭 맞는 신데렐라의 발만 보였다. 꼭 맞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신데렐라가 궁전에서 잃어버린 한 짝이었으니. 그래도 성이 안 찼다. 이리 예쁘니 찾으러 온 것 아닌가 싶었다. 나와 무관하니 심통이 났다. 근데 왜 하필 신발, 구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짝의 신발을 잃었다는 것과 그 한 짝 신발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다른 것은 안 되는 것일까.


   이 묵은 의문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을 읽고 스르륵 풀렸다. 그리스 신화로 거슬러 올라 테세우스 편에 내 질문에 답해줄 신발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없어서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가서 신이 맡겨놓은 뜻, 신탁을 알아보았다. 장차 아들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인지, "사람의 우두머리여, 아테나이에 이르기까지 통가죽 부대를 풀지 말라."라는 신탁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는 트로이 젠이라는 국가에 들러 술을 한껏 마셨다. 통가죽 부대를 풀지 말라는 말은 술 먹지 말라는 신탁의 내용이었다. 취중에 트로이 젠의 공주와 잠을 잤다. 아이게우스는 장정 서넛이 들어도 들릴까 말까 한 왕궁 객사의 섬돌 한 귀퉁이를 들고 돌 놓였던 자리에다 가죽신 한 켤레와 칼 한 자루를 놓고는 돌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공주 아이 트라에게 은밀히  당부했다. "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제 근본을 궁금해할 나이가 되거든 아비를 찾아 떠나보내세요. 내가 섬돌 밑에다 신표를 감추어 두었으니, 제힘으로 댓돌을 들 만한 힘이 생기거든 보내세요.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어머니 아이트라는 아들 테세우스가 자라자 아버지 아이게우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테세우스는 무거운 섬돌을 가볍게 들고는 아버지가 남긴 신표를 꺼냈다. 짧은 칼 한 자루와 가죽신 한 켤레였다.  칼은 무엇인가? 무사에게 칼은 생명이다
   그러면 신발은 무엇인가? 성(聖)과 속(俗),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이는 이정표, 벗어 놓고 떠나는 자의 정체를 증명하는 신분증과 같은 것이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벗어야 했던 물건, 육신을 거두어 세상을 떠난 달마 대사가 무덤에다 남겨 놓았던 유일한 물건이 바로 신발이다. 신데렐라와 콩쥐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 노릇을 한 것도 바로 이 신발이다. 투신자살하는 사람은 신발을 벗어 두고 물에 뛰어드는 법이다. 신발이 무엇인가? 이승에서의 삶이다. 애인이 오면 버선발로 뛰어나가는 게 제격이다. 한 사람의 역사가 적히는 이력서(履歷書)가 무엇인가? 신발(履) 끈 자취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 것은 무엇인가? 운명의 뒤집기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중에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에는 먼 신화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신화는 옛말인 헌 짚신에도 짝이 있다는 말로 이어져 군대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는 고무신 이야기로 긴 시간을 흘러 오늘 나에게까지 와 닿았다. 신화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었다. 생생히 살아서 내 삶 속에 상징과 비유로 숨어 있었다. 그 내밀한 이야기를 알아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리 신어보기를 갈망했던 신데렐라 구두는 미국에 오면서 사실 간단히 해결되었다. 내 발 크기는 미국에서는 작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하이힐 구두를 신을 일이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반대편이 되었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2001년 내가 남편 회사 현지 공장이 있는 중국 하문에 방문했을 때였다. 중국 남부 지역에 속하는 하문은 홍콩과 매우 가까운 섬인데 대륙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고, 중국 경제특구 지역에 속해있어 그 당시에도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다. 8월 한 여름, 나는 뒤축이 낮고 트인 발 편한 구두를 사기로 작정하고 남편과 쇼핑에 나섰다. 하문 사람들은 내 눈에 작고 왜소해 보였다. 꽤 높은 통굽 신발을 여자들이 신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열된 신발을 신중히 고른 후 내 발 사이즈를 알려주자 매장 직원이 놀라는 눈치였다. 내 발이 크다는 그 사실을 나도 깜박 잊고 있었다. 직원이 말하기를 내가 말한 사이즈의 제품은 아예 없다는 것이었다. 매장에 있는 제일 큰 제품 사이즈는 이백사십이라고 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을 읽은 건 사실 결혼 후였다. 나는 내 발 크기에 관심 없는 남자를 만났다. 그것은 서로의 발에 관심을 돌릴 만큼 연애를 오래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 해도 나는 신경이 쓰였다. 그는 나의 발에 관심이 없었는지 몰라도. 남편은 큰 키에 비해, 작은 손과 작은 발을 가졌다. 신발을 꽤나 신중히 고른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결혼 이후 구두를 신을 일이 거의 없어졌다. 아이들 학교 음악 행사차 잠깐 신는 정도가 고작. 그러나 여전히 그때마다 발 뒤꿈치와 새끼발가락을 위한 밴드 에이드(대일밴드)를 준비하는 것은 결혼 전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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