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조앤 Mar 22. 2021

삐딱하게 읽었던 쓰기의 말들-은유

질투심은 사소한 게 아니다

   독후감 <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들을 읽을 때 꽤나 삐딱한 자세로 읽었다.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2년 전쯤 은유의 <쓰기의 말들>을 읽을 때 난 사실 열 받았다. 아, 다른 말 없을까? <질투심>에 가까워서 그랬다. 질투심이라니, 나 참 이건 또 뭔가? 분명 확실한 일렁임, 아니 울렁임 또는 둘 다였다. 그러니까 쇼핑몰에서 피곤해진 눈으로 의자에 앉아있을 때 내 앞으로 연신 지나가는 늘씬한 몸매에 평소 해보고 싶었던 머리 스타일로 자신감 있게 걸어가는 여자들한테서 느끼는 그런 것과 비슷했다. 우와. 이건 뭘까? 나는 분명 책을 읽고 있었다. 소설이 아니라, 쓰기에 관한 책, 글쓰기에 대한 책,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가슴 한복판을 일렁이는 데,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내가 종잡을 수 없는 이것은 뭘까. 왜 이렇게 나를, 내가 말하기 힘이 드는가.

   <질투심>이 맞다. 달리 뭐라 할 수 없는. 정확하다. 질. 투. 심. 다른 말로 대체할 수가 없다. 주저리주저리 다른 단어를 붙여본다 한들. 근데 왜?

   다독가라기보다 문장 수집가로, 서사보다 문장을 탐했다. 우표 수집가가 우표를 모으듯 책에서 네모난 문장을 떼어 내 노트에 차곡차곡 끼워 넣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내가 좋아하는 글들이 보였다. 책장 귀퉁이마다 적어놓았던 글자들이 떠올랐다. 이 공책 저 공책에 읽은 후 써놓았던 독후감들이 생각났다. 위의 문장을 읽자마자 내가 그동안 밑줄 쳐 놓았던 나의 문장들이 모두 도망쳐버린 것 같은 허망함이 찾아왔다. 겨우겨우 쓰기를 끝마쳐 갈 즈음 저장이 아니라 빠져나가기 버튼을 눌러버린 것 같은 당혹스러움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쏟아져 내렸다. 울고 싶었다. 나는, 내가 좋아한다 했던 글들을 어찌 대우하고 있었나, 이 마음이었다, 정확히.

   아이들 방에서 허구한 날 쓰레기 갖다 버려라, 책상 정리해라, 먼지가 가득하다, 이거 버리면 안 되니 했었는데. 산만하게 흩어져있는 내 읽기 이력들이 목욕 후에 마른 수건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수건이 널린 거실로 나가야 할 때처럼 민망스러워졌다. 그래서 역으로 다시 열 받는 이 느낌, 내 할 일을 안 해놓고선 남 탓을 심하게 하는 꼬락서니 같다고 할까. 나는 문장 노트도, 독후감 노트도 따로 없었다.

   은유 작가가 차곡차곡 모아 놓은 문장들이 책이 되었다고 할 때 그래서 또 가슴이 뜨근해졌다. 나도 그녀처럼 내가 모았던 단어들과 문장들이 있었는데, 감동했고 감격했었는데. 내게 남겨진 글들을 내 삶 깊은 곳에 묻고 물 주며 키워왔고 열매도 많이 따먹었는데. 나는 책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정희진 작가 한마디에 전율했고, 그래서 읽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좋았었는데. 거기서 멈춰 서있었다. 쓰기의 말들로는 나가야 한다고 생각지 못했다.


   나는 철학을 좋아한다 했지만 니체는 모른다. 그의 유명한 책 제목만 기억할 뿐. 헌 책방에서 손바닥만 한 문고판 크기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니체의 <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고등학교 때 산 기억만 있었다. 읽기를 포기했던 책중 하나였다. 그런 니체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말에 비교가 되면서 심술이 사나워졌다. 대체 이건 무슨 심보인가.

   이런 마음으로 <쓰기의 말들> 프롤로그를 겨우 지나 첫 장을 폈다. 내가 어땠는 줄 아는가?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한 페이지도 빠뜨릴 수가 없었다. 밑줄로 가득해진 <쓰기의 말들>을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었다. 묘한 여운이 남겨졌다. 초록색 책 표지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째려보았다가 맞을 것 같다.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인간을 부품화한 사회 현실에서 납작하게 눌린 개인은 글쓰기를 통한 존재의 펼침을 욕망한다. 그러나 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프롤로그에서


    <쓰기의 말들> 마지막 커버 글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나에게 부족했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건가? 서론에서 멈추고 돌아선 아쉬움이었다. 본론이 필요했다. 그다음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작가는 이미 작가 반열에 올라섰는데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속으로 따졌다. 그리고 집어 든 책은 다시 은유의 <글쓰기 최전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뜨는 글과 마주쳤다.

   글을 정말 좋아하는지 알고 싶으면 30일 동안 글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30일? 쳇 그걸 못할까 싶었던 자신감은 금세 사그라지고 나는 정말 책 읽기가 아니라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나에게 질문해보았다.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사실, 나에겐 도전이었다. 이런 것에 증명이 필요한지 나는 몰랐다.

   그래, 30일 해보지 뭐, 아니 까짓것 그쯤이야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번엔 <오기>가 생긴 것이었다. 혼자 불타오른 거였다. <오기와 질투>라, 학창 시절에 내게 이런 것들이 분명했는지 잠시 아련해졌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았다. 있었다 한늘 펼쳐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속으로 삭힐 수 있어 쓸지언정.

   30일 동안 쓰기에 스스로 도전했다. 누가 하라 한 것도 아닌데. 누가 본다고 한 것도 아닌데. 처음이었다. 무턱대고 덤벼들었다. 내가 쓴 글들 일부는 친구에게 편지처럼 보냈다. 돌아온 반응은 아주 좋았다. 회사 다닐 때는 몰랐는데 내가 글을 잘 쓴다는 말에 신이 나서 30일이 금방 지나갔다. 뿌듯해졌다.

   30일 동안 쓰고 나니 알게 된 것들이 생겼다. 첫째, 내가 쓰는 일에 부담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두 번째, 스마폰에 있는 에스 노트가 유용한 도구라는 것. 이번에는 종이 공책이 아니라 생각나는 것들을 에스 노트에 적었다. 매일은 아니라도 생각날 때 일기처럼. 좋은 문구와 생각해볼 문구들을 카피해서 옮겨놓았다. 시간이 많았던 때에도 한 곳에 보기 좋게 정리하지 못했는데 에스 노트를 이용하니 그나마 한 곳에 글이 모여지고 내가 쓴 것을 숫자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편리했다. 내가 사용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셋째, 읽어줄 독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없어도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소셜 네트워크가 하나도 없었다. 페북, 카페, 인스타, 멀게는 싸이 월드도 한 적이 없었다. 이메일과 카카오톡이 전부였다.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다 <브런치>를 우연히 알게 되어 기가 죽었던 적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유용한, 훌륭한 플랫폼이라는 것을 알았다. 2017년쯤으로 기억한다. 너무나 쟁쟁한 글들이 올라와 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어디를 가도 그렇겠지만 이 바닥은 이 바닥대로 무시무시함을 알았다. 명함은 커녕 읽는 것으로 족하자며 열심히 읽었다.

    이제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2년 전 은유의 <쓰기의 말들>을 읽으며 느꼈던 그때의 나의 감정들을 돌아보았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들은 분명 나만의 것이었는데, 그리 강렬했는데 왜 그걸 키워볼 생각을 안 했는지. 물 주고 거름 주고 햇빛을 쏘여주며 열매를 맺도록 하는 일까지 나아가지 않았는지를. 내 마음에 꽂히는 것, 내 눈에 들어오는 것, 내 귀가 열리는 것, 내 발이 가닿는 곳, 내 손이 저절로 만지작거리는 것들을 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는지. 왜 나의 감각과 감정에 이토록 나는 무심하고 무감동했는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내가 에스 노트 아닐까. 그 기능을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사용하면서 하나씩 알아내어 업데이트하면서 그 유용함을 발견했던.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내가 열 받고 질투 나는 그 지점에 나의 열정 또한 숨어있다는 것. 그것을 발견했다면 꺼내어 써보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아직 그 유용함이 다 드러나지 않은 에스 노트가 아닐까.

   나의 질투심은 사소한 감정이 아니었다. 지나쳐버릴 일이 아니었다. 이것들로부터 나는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나의 출발점인 것이다. 삶의 길 위에서 일상의 일들을 해내는 나에게 나의 감정들은 나를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무기가 되고, 나를 통제하고 누르는 압박을 방어해 주며, 나를 먹여 살리는 방편도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아, 나의 감각과 감정들이여.

슬픈가.
괴로운가.
힘들고 열 받는가.
마음이 일렁이는가.
공연히 질투심이 솟는가.

지나치지 말자.
그 안에 내가 캐내어야 할 내 능력과 재능이 가려져있다.


이 봄에 그것들이 내 안에 꿈틀거린다면 그것들을 자세히 살피자. 지나치지 말자. 나의 출발점임을 기억하자.


작가의 이전글 레드 리버 쇼어 밥 딜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