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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r 26. 2021

친정엄마 간고등어와 시엄마 표 무말랭이

다정다한 다정다감(多情多恨多情多感)/박성우


다정다한 다정다감(多情多恨多情多感)



                                         박 성 우




내 어머니도 '김정자'고 내 장모님도 '김정자'다

내 어머니는 정읍에서 정읍으로 시집간 김정자고

내 장모님은 봉화에서 봉화로 시집간 김정자다

둘 다 산골짝에서 나서 산골짝으로 시집간 김정자다


어버이날을 앞둔 연휴가 아까운 터에

봉화 김정자와 함께 정읍 김정자한테로 갔다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를 위해

간고등어가 든 도톰한 보자기를 챙겼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를 위해

시금시금 무친 장아찌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 내외에게

장판과 벽지를 새로 한 방을 내주었으나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 방으로 건너갔다

혼자 자는 김정자를 위해

혼자 자지 않아도 되는 김정자가

내 장인님을 독숙하게 하고

혼자 자는 김정자 방으로 건너가 나란히 누웠다


두 김정자는 잠들지도 않고 긴 밤을 이어갔다

두 김정자가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 소리는

아내와 내가 딸과 함께 자는 방으로도 건너왔다

죽이 잘 맞는 '근당게요'와 '그려이껴'는

다정다한한 얘기를 꺼내며 애먼 내 잠을 가져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 뜬 이른 아침,

한 김정자는 쌀 씻어 솥단지에 밥 안치고

한 김정자는 화덕불에 산나물 삶고 있다



  양가 어른들은 <상견례> 때 서로 처음 뵙고, <결혼식> 때 두 번째 인사하신 것이 내가 알기로  다다. 두 번으로 충분하셨다는 것인지, 이것이 예를 갖춘다는 암묵인지, 먼 사이가 낫다는 지혜인지 아직 가늠은 안된다. 어떤 것이든 지금까지 두 집안 사이에  별일이 없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양가 어른들은 나이 차가 서로 크지 않고, 고향도 같은 충청도다. 시댁은 충북이시고 부모님은 충남이시다. 그래서였을까, 상견례로 네 분 어른들이 마주 앉으셨을 때 내 예상을 깨고 빨리 경계를 푸신 후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셨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충남에서 태어나기만 했지 곧 이사 와 서울에서 내내 자랐다.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울 밖을 나가 본 경우도 많지 않았다. 같은 충청도이니 하면서 지역 차이를 별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시댁 말씨는 강원도와 비슷했고, 먹는 음식은 남쪽 경상도와 섞여있었다. 나는 기장떡과 올갱이 국을 결혼 전에 먹어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생각보다 충청도 사투리를 강하게 쓰지 않으셨으며 엄마가 봄마다 만드시는 쑥떡과 늦가을마다  만드시는 호박범벅을 나는 아주 좋아했다.  늙은 호박과 함께 새알심과 강낭콩을 넣으셨다.  먹는 것으로 제일 다른 것 두 가지를 고르자면 평소에 시댁은 찌개류가 많은 대신 친정은 맑은 국을 주로 먹었고, 시댁은 만두 빚는 일에,  친정은 송편을 빚을 때 가장 부산스러웠다.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은 미국 현지 법인으로 파견되어 나는 무늬만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었다. 시어머님의 큰 기대가 있었음을 전혀 가늠하지 못한 맏며느리인 나는 대신 말 그대로 물설고 말 설은 이국 땅에서 홀로 아이들 양육에 고군분투했다. 경험 많으신 두 어른들께 바로바로 물어볼 수 없었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던 나는 이불 한 채와 같이 챙겨 온 <육아책>을 파고 팠다. 책장이 너덜거리게 뒤지고 뒤졌다. 그때부터 태어날 신생아는 엄마의 가슴이 아니라 책으로 재단되기 시작했다. 아가는 생명 없는 인형으로 바뀌어 신생 엄마의 시간 스케줄 속에서 훈련되어야 할, 울고 웃어야 했음을 나처럼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첫 딸이자 종갓집 맏며느리인 나의 산후조리는, 첫아이는 친정 엄마께서 둘째는 시어머님께서 수고해 주셨다. 막내는 두 분 없이 도우미분께 도움을 청했다. 그러니 나는 한자리에서 두 분을 같이 뵐 수 없었다.


   두 분은 나와 연락이 잘 닿지 않으니 외려 서로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셨음을 서울 엄마로부터 반, 시어머님께 반 그 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다. 서울 엄마는 내게 '가르친 것이 없어서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시어머님께 자주 한다 하셨고,  시어머님은 '맏며느리가 알뜰살뜰하여 좋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내게 전하셨다.  서울 엄마는 내가 시댁에 더 자주 연락드리지 않는 것을 일깨우시며 나 대신 시댁에 미안해하셨고, 시어머님은 그것으로 멀리 있는 맏며느리에 대한 서운함을 메우셨다.


   두 분은 모두 살림꾼이셨고, 꼼꼼하셨다. 서울 엄마는 집안에서 큰 딸로 외할아버지의 무한 사랑을 등에 업고 자랐으나 교육은 모두 큰 외삼촌에게만 돌아갔다. 첫 딸인 친정 엄마는 시어머님이 안 계신 막내며느리였으며, 시댁을 멀리 떠나 서울에서 지금까지 결혼 생활을 하고 계신다. 둘째 딸인 시어머님은 드물게 살림을 배우지 않고 자라셨는데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셨고, 태어난 고향에서 지금껏 살고 계신다.


   두 분은 때때로 한 시간도 넘게 통화를 하신다 들었다. 오고 가는  대화 주제는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다만 여전히 아들딸 걱정이 반을 넘을 것임을.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이 전화선을 타고 간절히 오고 갈 것임을. 며느리 사위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을 서로서로 해명해 주실 것임을 그저 짐작할 뿐이다.


    봄을 지나 맞이하는 어버이날을 앞둘 때쯤 그동안 전화로 키워오신 사돈지간의 정을 이번엔 얼굴 보고 만나 풀어놓으시면 어떨까 나는  잠시 생각해 본다.

사진출처 @만 개의 레시피

시어머님은 무말랭이 무침을 참 잘하신다. 가을에 무을 썰어 실에 꿰어 그늘에 말리셨다 마른오징어를 무와 같은 길이로 잘라서 함께 매콤하게 무쳐내신다. 나는 곁에서 배우지는 못하고 남편의 출장길에 따라온 무말랭이 무침을 먹기만 했다. 서울 엄마는 바다를 모르는 곳에서 자라셔서 날 것을 믿지 못하셨다.  항상 익혀서 음식을 내놓으셨다.

 내 바람대로 두 분이 한 날 만나신다면,


서울 엄마는  간고등어 든 도톰한 보자기를 챙기실 것 같다.

시어머님은 그 정성 가득한 무말랭이 무침을 아낌없이 내놓으실 것 같다.

두 분 역시나 잠들지 못하고 그간 지난 세월을 도란도란 이어가시고 이어가시다

설핏 잠에 빠지실 것 같다.


아, 그 밤 사이

깊고 푸른  태평양 바다를 훌쩍 건너오셔서

이른 아침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한 여자의 엄마는 쌀 씻어 냄비에 밥 안치고

한 남자의 엄마는 가스불에 두부찌개를 끓이신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애먼 내 잠을 가져가기

나는 지금 생각하는 것이다.


올봄엔 내가 눈물 나게  그리 바라고 있는 것이다.






*올갱이는 표준말로 다슬기라고 한다. 다슬기와 아욱 등의 채소 등의 채소를 넣고 끓인 시원한 해장국이다. 소금    대신 된장을 풀면 토장국이라 한다.

*기장떡 : 증편은 달착지근하면서 새큼한 맛이 감도는 술떡으로 기주떡, 기지떡, 기증병, 벙거지떡, 상화, 상애떡 등으로도 불린다. 찐빵처럼 보풀려서 쪄내며 여름철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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