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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Apr 02. 2021

이스터데이 '아이'를 위한 버니 버거와 카레밥

   나는 집에서  부활절이라며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본 적은 없다.

Bento Monster @핀트레스트

   핀트레스트에서 이 사진을 보고 너무 귀여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음 안에 따뜻함이 몽글몽글 번졌다. 곰돌이의 뚱한 표정과 대조를 이루는 토끼의 귀여운 쑥스러움이 어찌 이리 생생한가.

 

... 뭘까, 이 편안함.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 일에 애정을 갖는다는 건 그 일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이고, 무심히 지나치던 사물에 말을 건네는 일일 것이다.

Bunny Burger @2021 / Joanne 나도 따라 하기 1

   나는 <버니 버거>로 이름을 붙여주고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따로 설명까지 읽은 건 아니고 눈대중으로 만들었다.


   준비물버거 빵 4쪽은 토끼와 곰돌이의 몸이 되고, 햄은 토끼의 귀와 볼이, 치즈는 곰돌이 코가, 마른 김은 토끼와 곰돌이의 눈과 코가 된다.(딸기와 블루베리, 상추, 계란)  만드는 순서는 이렇다. 1. 버거 빵 두 쪽은 빵 모양을 좀 작게 가장자리를 따라 잘라내면 토끼와 곰돌이의 머리가 된다.  2. 토끼 몸을 완성하기 위해 빵 한쪽을  똑같이 반으로 잘라서  반은 몸통으로 쓰고, 나머지 반은 세 등분하면 토끼의 두 귀와 한쪽 팔이 된다.  3. 곰은 빵 한쪽을 1/3과 2/3로 잘라 1/3로는 팔과 작은 두 귀를, 2/3로는  몸통을 만들면 된다.   4. 곰돌이 코는 치즈를 타원형으로, 햄 작은 조각으로는 토끼의 귀와 볼 모양으로 자른다. 5. 마른 김을 가능한 한 가늘게 잘라서 토끼와 곰돌이 눈과 코로 형태를 잡아준다.


   사실 순서 4와 5가 제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햄과 김을 최대한 가늘게 자르고 동그랗게 오려내는 일은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그야말로 지난한 작업이었다. 자른 김으로 토끼와 곰돌이의 눈코를 빵에 얹을 때는 핀셋을 사용했고, 이를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망고 시럽이 집에 있어서 요지로 뒤편에 풀처럼 붙여주었다.


   계란은 반만 익혔는데, 부활절 아이들이 좋아하는 에그 헌팅 놀이에는 태어남의 의미가 깃들어있다. 작은 병아리에겐 단단한 계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생生의 시작. 아이들은 열심히 계란을 찾느라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바구니 가득 모은 계란 안엔  사탕과 초코가 들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모으고 모은 많은 계란 속 생들이 그렇게 맛있고 달콤하기를 나는 바라본다.


   버거에 들어가는 재료로 한 접시의 그림을 그리는 이는 누굴까. 궁금하다. 오늘 나는 그이의 눈과 마음을 따라가 보면서 나와 다르게 사물을 대하는 방식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나와 다른 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


   결혼 이후로 내가 늘 지켜온 부엌. 부엌에서 주방이 되고 지금은 키친이라 부르기도 하는 여기, 에서 나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음식 하기를 때론 오늘처럼 즐겁게, 때론 하기 싫어 투덜거렸다. 나를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국을 끓여본 적은 없었다. 먹어줄 아이들과 기다리는 남편이 있어 매번 몸을 추슬렀다.  부엌 옆에 놓인 식탁에 다 같이 모여 왁자지껄 먹으며 떠드는 그 환한 순간은 언제나 나의 수고를 감당하게 해 주었다.


    하루의 저녁 설거지가 끝나야 부엌은 비로소 내 공간이 되었다. 밥을 먹은 후 제각각 흩어진 빈 부엌 옆, 덩그러니 멀뚱 거리던 식탁은 '너 오늘 어떠니?' 나에게 묻곤 했다. 나는 괜찮은지를.  나는 숨도 안 쉬고 휘리릭 저녁을 차려 낸 뒤 밀려오는 허무한 마음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글쎄... 하며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곤 했었다.

탁자에서 글 쓰는 여인, 토마스 폴록 안슈츠, 1905년 경

  커피 한 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순간. 그러면 읽지 않아도 책을 하나 집어 들어야 어느 한쪽으로 급하게 기우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곤 했다.


   이스터데이는  우리 집 세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처럼 초등 유년 시절 추억이 많은 특별한 날 중 하나였다. 학교와 교회 안 밖에서 열리는 에그 헌팅으로 아이들은 충분히 즐거워했다.


   오늘은 다 자란 아이들 생각은 내려놓으련다.  

Schoolgirl with Homework, Albert Anker, 1879

   대신 내 안에 작은 아이, 그 아이를 위한 시간을 구별하기로 했다. 내 안에 이 작은 아이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호기심 어린 눈빛

   진지한 어깨

   서툰 손

   엄마를 흉내 낸 목

   앙 다문 입술.


   봄, 여린 봄의 몸짓.


   아니, 매해 새롭게 다시 태어나며 나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 누구인지를.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너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를.


    이 작은 아이를 위해 오늘 나는 쌀을 씻었다. 감자, 양파, 당근을 썰었다. 카레 가루를 물에 풀어 개었다.  고기 대신 손질이 간단한 소시지를 넣고 한소끔 끓여내는 사이 라이스 덕을 만들었다. 만드는 법은 주먹밥처럼 밥을 한 손 가득 꽁꽁 뭉쳤다. 초밥 밥 모양처럼 길쭉하게 형태를 잡은 후 양끝을 살짝 구부려주니 오리 몸통이 되었다. 입은 당근으로 작게 긴 세모를 만들고, 눈은 마른 김을 사용했다.

카레밥 with rice duck @2021 조앤 따라 하기 2

    노란 봄.  그 위에 앙증맞은 라이스 덕(Rice Duck-Snow Duck)을 만들어 올려놓았다. 내 안에 작은 아이를 위한 밥은  빼기와 더하기를 묻지 않아도 되는 밥이다. 얼마큼 먹을지, 언제 먹을지, 무얼 덜지, 더할지를 묻지 않아도 되는  나를 위한 상차림이다.

    

    봄처럼 노란 카레에 흰밥을 풀어놓는다. 오리의 머리를 먼저 덜어낸 후, 몸통을 수저로 천천히 살살 부순다. 봄을 쓱쓱 비며 크게 한 입 가득 넣는다. 노란 빛깔로 내 몸과 마음이 노랗게 환해진다.  오리를 만들기 위해 분주했던 손을 떠올린다. 달그락달그락 식탁에서 피어난 내 안의 온기가 부엌 가득 스멀스멀 채워진다. 내 빈 마음도 채워진다. 내 안이 봄이 되었다.


    4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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