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 장롱 면허증 소지자였다. 회사를 다닐 때 차를 살 목적도 없었는데 왜 나는 자동차 면허증을 따려고 했는지 그 이유가 지금 잘 떠오르지 않는다. 회사에서 월차까지 내고 자동차 학원에 등록하여 배운 것은 시험에 써먹을 주차하는 요령이 전부였다. 도로 주행 연수를 한 번도 나가지 못한 채 나는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남편의 해외근무지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때 챙겨 온 물건 중 하나가 국제 운전면허증이었다.
남편의 미국 파견 근무를 3년간의 소풍쯤으로 여겼다. 이층 방 하나 아파트에 풀어놓은 것은 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남편의 근무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제(San Jose)에는 둘 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역이었다. 나에겐 남편만 남겨진 셈이었다. 남편은 회사 회의에 참석하면 바로바로 이해되지 않는 영어를 소형 녹음기에 녹음해 두었다 따로 시간을 내어 듣고 또 들어가며 쌓여가는 서류들을 작성하기 바빴다. 차는 한 대였고, 대중교통 버스는 이용자 수가 서울과 비교가 안되게 적었기 때문에 배차 간격을 따지면 걸어가는 게 더 빨랐다. 택시는 먼 거리 이동 시 예약해서 타야 하는지라 나에겐 비행기 같았다. 나는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5월 아파트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 때 새신랑, 남편은 말했다. 저녁 어스름이 지던 때. 노을이 물들던 때였다. 조심해야 돼, 우리. 응? 더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왜? 지금 너무 좋은데. 여기에서는 잘못하면 총 맞을 수 있어. 한국하고는 상황이 달라.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남자가 무언가를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가까이서 보았다. 주말 아침, 세상모르고 늦잠을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 어제 그가 내게 했던 말은 온 데 간 데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난 차를 끌고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무료해질 주말을 참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가까이 살고 있었다. 셀폰이 없었던 때였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때라 가는 곳마다 로컬 지도를 먼저 챙기곤 했었다. 일단 차를 끌고 나온 나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주말이 와야 겨우 운전대를 잡아본 게 다였는데 미국 교통 신호 체계가 아직 눈에 확연히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다만 나는 길눈은 밝은 편이었다. 부릉! 액셀을 밟았다. 가보자! 멀지 않았는걸. 나는 주소도 없이 친구 집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결과는? 낭패였다. 친구 집을 찾지 못했다. 번지도 모르면서 집을 찾겠다는 나의 성급한 눈에 친구 집이 찾아질 리 없었다. 주말 늦은 아침, 햇살 좋은 커피숍 앞에서 커피 한 잔 놓고 수다 떨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일순간 물 건너 가버렸다. 쪼그만 다운타운 도심은 처음이었는데 유턴만 하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 여겼다
신호등 하나를 건너자 바로 길이 일 차선 일방통행으로 바뀌었다. 다음 신호등 앞에 다다랐을 때, NO U-TURN 사인이 나왔다. 양방향이 일 차선이니 당연한 건데,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난 왕초보 운전자였던 것이다. 흠, 그렇다면 좌회전했다가 다시 돌아나갈 수밖에. 이런 젠장. 좌회선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나는 여유롭게 좌회전 길로 들어섰다. 근데, 좀 이상했다. 이건, 또.. 어우야, 엄마야! 그 길은... 그 길로.. 고속도로 진입로로. 순간 바뀌어버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당면한 문제는 순간 달라진 주행 속도였다. 다운타운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조심스러운 운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한순간 나는 프리웨이(freeway)로 빨려 들어온 셈이었다. 프리웨이는 속도가 프리하다는 것. 속도에 제한이 없다는 것. 물론 아우토반이 아니니 제한 속도는 있었다. 보통은 65-70마일(100-110km) 사이였다. 그러나 나에겐 광속의 속도였다. 미친 속도였다. 상황 수습이 안 되는 동안 뒤따르던 차들이 하나 둘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속도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40마일(65km) 이 안 되었다. 나는 엑셀을 밝는다고 밟았다. 이때부터 심장이 졸아드는 확연한 느낌이 명치 쪽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차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신고정신이 투철하다는 미국 사람들이 나를 음주운전으로 오해하고 신고할 것 같아 참았던 불안과 걱정이 한꺼번에 후욱 밀려들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여러 번 빠져나가기를 놓치면서 나는 꽤 오래 어디론가 무작정 달리고만 있었다. 겁먹지 마. 괜찮아. 알았지! 멀리 오긴 했는데 그냥 한 방향으로 왔을 뿐이야. 그러니까 다시 유턴해서 제자리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침착하라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어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 생각나지? 지금 그 말을 꽉 붙잡아야 한다고.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말이야, 넌 아직 길을 잃은 건 아니야. 나는 빠져나가기를 포기하고 유턴할 수 있는 곳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유턴을 해야만 했다. 내가 고속도로로 빠져나온 그곳. 그곳 어디쯤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참을 떠내려가다 안쪽 차선에서 바로 유턴할 수 있는 사인을 만났다. 상황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길을 잃지 않았다는 나 스스로의 위안은 큰 힘이 되었다. 목표지점에서 다만 멀어진 것일 뿐이라고. 유턴을 한 후에야 나는 호기롭게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해야 할 차례였다. 차 안에는 구비해두었던 지도가 여러 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는 곳에 불시착한 모양새였다. 나의 좌표, 위치가 어디인지 모를 때 지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생생하게 깨달았다.
삶이란 내 자리를 찾는 과정인지 모른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인지도 모른 채 휩쓸려 떠밀리며 바쁘게 살지만 정작 현재의 내 자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나는 내 집도 찾아갈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내가 나를 아는 일은 내 위치를 분별한다는 말 아닐까. 지도란 남의 충고와 가이드 같은 것. 누군가 먼저 걸어가서 작성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 좌표를 모르면 그 지도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 내가 나를 아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기가 도대체 어디쯤이란 말인가. 저녁 어스름.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남편이 겁먹은 표정으로 내게 말하던 그날. 똑같은 시각. 나는 혼자 멀리서 공중전화박스를 찾고 있었다. 자기야, 지금 가고 있는 중. 그런데 금방 길을 잘못 들었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은 했어.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비즈니스 카드를 구했거든. 걱정하지 말라고. 지도를 보니까 한 30분은 더 걸릴 것 같아. 초보 운전에다 고속도로에서 우왕좌왕 헤매다 해가 똑, 떨어져 버린 시각. 나는 이제 어둑해진 거리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신호등마다 나오는 길 이름을 두 눈으로 철저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심정이 되어 비장해진 마음은 전장 한가운데 아군이 있는 고지를 향하여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하여 사투를 벌이는 양 운전대를 총처럼 꽉 쥐고 무릎 위에 지도를 펼쳐놓은 채 눈보라 속을 헤쳐나가는 자세 그대로였다. 마침내 늘 오르내리던 아파트 계단 앞에 드디어 차를 주차시켰다. 가로등이 한국처럼 많지 않아 더없이 캄캄한 주차장에서 멍해진 얼굴로 나는 차에서 내렸다. 이층 내 고지에서 따뜻하고 온화한 불빛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나 난 계단을 오르려 한 발을 띨 수가 없었다. 다리가 그때부터 정신없이 후들거렸다. 폭삭 주저앉는다는 말. 내 몸은 물기가 전부 빠져나간 지 오래된 뼈다귀 같았다.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열 개도 안 되는 계단을 위태롭게 올라갔다. 올라서서 목표한 고지에 깃발을 꽂듯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딩동. 나야, 자기야. 나는 그대로 쓰러질 수가 없었다.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남편의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을 보자 집으로 돌아온 것이 꿈만 같았다. 남편에게 이 꿈을 말해 주어야 하는지 잠시 애매해진 표정으로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