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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y 19. 2021

와유(臥遊) / 안현미

봄비는 가을에 내리고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 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
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
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초등시절 먹을 갈았던 기억이 있다. 깜깜한 밤 같았던 먹물과 먹에서 나는 돌 냄새를 기억한다. 엄마는 늦게 다시 붓을 드셨다. 한글로 쓰는 붓글씨가 좋다 하셨다. 마루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그 위에서 내가 삭삭 먹을 갈고 한쪽에서는 엄마가 흰색 한지에 조심조심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던 시간들. 홑청 이불을 가을에 다시 바느질하실 때면 내게 도움을 청했던 그 가을볕 좋던 날들... 5월 늦봄 날 비가 내리는데 기억은 가을을 향한다.





봄날의 와유...

만약 내가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 밤 내리는 봄비를 정갈
히 받아 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목련이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봄비로 오
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 목련은 봄비를 이해하고 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

허면, 훗날의 그대는 봄비 내리는 밤 목련꽃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목련 향기에 취하리








*와유(臥遊) : 누워서 명승고적의 그림을 보며 그곳 정경을 더듬음.
臥以遊之(와이유지 ; 누워서 그곳을 유람한다.)<송서宋書 송병전宋炳傳>
始愛臥遊地 方與意相稱(시애와유지 방여의상칭 ; 처음에 그림으로만 명승지를 즐길 때는, 그림과
실제가 맞아들었더니)<조우인曺友仁 죽서루竹西樓> 출처:한시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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