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했다.
정신 없을만큼 화려하고 휘몰아치는 연애였다.
짧지 않은 기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와 나는 온 몸으로 즐기기라도 하는 듯 모든 걸 견뎌냈고, 키득거렸다.
마지막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어떠한 원망이나 미움도 없었다.
오로지 고마움.. 그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흔한 미안함이나 미련도 크지 않았다.
나도, 그도, 정말 위하고 사랑했다.
이별에 대한 아픔이나 센치함을 남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이번 이별은, 배움을 남기고 싶다.
지금 내가 느낀 찰나의 복잡한 감정이,
꽉 찬 사랑을 한 나의 젊음에 대한 성취감인지,
서로를 위하고 진정한 사랑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인지,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감정의 바닥을 보기 전에 과감하고 아름답게 끝낸 나의 용감함인지 모를,
나쁘지 만은 않은 그런 지금의 감정을 지키고 싶어서
나는 지금 쓴다.
내가 한 사랑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이별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고 보면 언제나 아주 당연한 일이다.
내가 시작한 일을 내가 마무리 하는 것.
하지만 이 '사랑'앞에서는 모두 감정적으로 돌변하니까 눈물과 울부짖음으로 마무리되는 이별이 세상에는 아직 많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이별, 물론 그 이별이 다 아름답거나 쿨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이별 이라는 것이다.
내가 울부짖는 이별을 원할 수도, 내가 미련없이 바닥까지 간 이별을 원할 수도, 내가 구질구질한 이별을 원할 수도 있다. 충분히. 그 때의 상황과 내 안에 남아있는 감정과 떠나보내야 할 그 사람의 모습에 따라 다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감정의 소용돌이 내 몸이 휘말려서, 상대방의 이기심에 내 눈이 희번득하게 돌아벌어서 하는 이별은 하고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이별을 하려면, 내가 아주 강해야 한다.
그래서 감정이나 상황에 나를 내어주지 않고, 내가 오롯이 내 결정과 내 자신을 아끼는 마음으로 그 모든것을 정면 돌파 했을 때 힘들지 않은 이별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몇 번의 연애와 몇 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이번 이별에서 느끼는 많은 것들은 처음이면서도 나쁘지 않다.
같지만 다르게 얘기하자면, 누구를 사랑하려면 내가 아주 단단해야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다가올 때, 조바심이나 걱정스러운 방어기재가 아닌 진정 그 감정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좋아하기로 했는데, 왜 연락이 충분히 잦지 않지
왜 이사람은 내가 하는 것보다 덜 표현하고, 나보다 더 침착한 것 같지
내가 더 좋아할지모른다는, 내가 더 애태울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전에
시작되지도 않은 그 감정앞에서 나를 지키려고 몸부림을 친다.
참 우스운 일이다. 그 감정으로부터 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왜냐면 아무도 그 감정을 시작하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내가 좋아서 시작한 그 감정을 어느새 균으로 인식하고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아주 짧은 삶을 산다.
우리는 생각보다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가오는 좋은 사람을 멍청한 실수나 옹졸한 조바심으로 잃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갖게 되는 감정을 최대한 즐기고, 음미할 줄 알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며, 혹여나 내가 더 사랑하게 될까 내가 더 애태우게 될까 그 관계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유치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마음, 지금 이 다짐을 아주 오랫동안 더욱 깊고 단단히 새기고 싶다.
나를 더 사랑해야 내 마음에 일렁이는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내 생에 그 누가 다가오고, 그 누가 떠나가도 그들은 나보다 소중할 수 없다고.
내 연애가 얼마나 오래 되었고, 얼마나 힘들게 끝나도 내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
일부가 전체를 흔들게 놔 두는 것은, 기초공사가 잘 못 된 것이다.
자주 쓰고, 새기겠다.
이번 이별이 내게 주는 느낌들과 깨달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