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일을 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누군가는 매년 자리를 잃고 집으로 돌아간다.
갑질의 되물림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어제의 적에게 했던 못된 말들이 오늘 내 뒷통수에 와서 박힌다
믿을 것은 숫자밖에 없고, 어떨 때는 그 숫자마저도 못 미더울때가 많다.
누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었다는 뜻이고, 사방이 적으로 깔렸다고들 이야기한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하고, 내가 열심히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불가피한 허들들이 많다.
치열하고 치사하고 살벌한 바닥이라고 한다.
뜨거운 심정을 가졌다.
쉽게 흥분하고 잘못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잔상을 지우기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꼭 바른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하고,
대부분의 부정적인 의견이나 불쾌감은 얼굴에 0.1초만에 나타난다.
싫고 좋음이 명확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에서는 꿀이 뚝뚝 흐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쳐다본 기억이 잘 없다.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쉽게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거나,
나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쿨하지 못하게 뒤끝이 있을 때도 많고 사람은 쉽게 잘 바뀌지 않는다는 개똥철학으로 선입견에 대해 수정하는 것을 망설인다.
복잡한 감성을 가졌다.
감정이 너무 말랑해 틀에 따라 모양을 매일 같이 바꾸고,
아주 작은것에 아이처럼 행복하고 기뻐한다.
지나가다가 바람만 따뜻히 불어도, 어느날 창문을 열었는데 햇살이 너무 이뻐도, 새소리가 완벽한 타이밍에 내 귀에만 들려도 이 세상 다 내 것인것처럼 걱정을 잊고 말랑하고 행복해진다.
구름이 낀 날에 소나기가 붓거나, 운전 중에 랜덤으로 나온 노래가 에전 슬픈 시절 들었던 발라드거나,
미술 작품이나 글을 읽었을 때 인간 본연의 숙명적인 부분을 찾으면 가슴이 아릿해진다.
컨디션 좋은 어느날은 내가가진 모든 환경과 사람이 감사하고 소중했다가도,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는 그 누가 해주는 위로들도 다 입발린 말로 들린다.
무지개보다 다양한 색깔의 스펙트럼인데다가, 그 양도 어마어마해서 다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에 찌꺼기로 남아 금새 탁해진다.
일어난 나쁜 일들에 대해서 자기방어를 위해 쉽게 잊거나 편집된 기억만을 남기고자하고,
아프레 했던 사람들에게는 복수나 따지고 드는 공격성보다는 그저 겁먹고 약해져서 다시는 보고싶지 않아 도망치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고리타분한 기준을 가졌다.
스스로에게 한없이 냉정하고, 항상 이상을 쫓아야한다는 강박까지 느낄 때도 있다.
항상 목표하는 곳이 있어야 하고, 그 목표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기를 바란다.
심지어 쉬어가고 휴식하는 순간에도, 원대한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긴 여정중에 단비같이 꼭 필요한 휴식을 하고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이 강박이라는 것도, 스스로에 대한 너무 매몰찬 기준이란 것도 인지하지만 깊은 마음 속에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 까지가 내 인생이고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는 관대한 척, 많은 취향과 인생을 그 나름대로 다 존중하는 척 쉽게 이야기하지만,
내 삶에 예외가 생기거나, 내가 생각하던 내 모습과 다른 모습이나 결과를 낳으면 스스로를 존중하기는 어려워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괜찮다고 쉬라고 말해주어도,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을 게으르고 안일하다고 치부한 적도 있다. 도대체 뭐가 괜찮고 뭘 한게 있다고 쉬어도 되는지.
나보다 치열하지만, 따뜻한 감정을 가진, 똑똑하고 부지런하지만 중간 중간 멋을 즐길 줄 아는 예술쟁이를 기다린다. 동화속에 나오는 왕자님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심보인 것을 안다. 다만 그것이 잘생기고 돈많고 백마 대신 백색의 외제차를 탄 왕자님이 아니라는 것만 다르지 원리는 무엇이 다를까.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함은, 한 쪽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겉으론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세상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흔히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나에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 하면,
나의 겉도, 나의 속도 모두다 나이다.
어느 하나, 누구 하나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겉은 이런 사람, 속인 저런 사람이다. 나는
한 때는 그 사실에 대해 스스로 모순덩어리라고 몰아세운적도 있다.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가.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이럴 땐 이런 사람이고 저럴 땐 저런 사람이다.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르다. 이런 면도 저런 면도 공존한다.
그러니 세상에 수많은 갈등과 드라마와 소설과 희극과 오페라가 나타난 일이겠지. 물론 그림도.
인간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보이는 방향에 따라 어떤 유형안에 몰아 세워 넣는 일은
서커스에서 호랑이를 불구덩이 링 사이로 통과하게 만드는 것 처럼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일이다.
인간은 그냥 그 인간 하나의 유형으로 설 자격이 있다.
모두 다르고, 어쩌면 비슷해 보이는 누군가들도 사실 디테일에서는 매우 다를 수 있다.
그 거룩하고 수많은 무한대의 조합에 대해서 어느 유형으로 나누려고 하고, 그 유형에게 기대되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어랏 너 왜 이렇게 생각하거나 반응하지 않니 라고 물어본다.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일이다.
애초에 탄생 할 때부터 그런 유형에 들기 위해 탄생한 사람은 없지만,
그 사회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자기 유형에 대한 학습이나 고민을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사람을 훈련 시키기 때문이다.
마치 원래 야생에 속한 생물을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평생 초원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동물원 우리속에 가둬놓는 일과 같다.
자신을 연구하고 고민하고 살필 기회 자체를 박탈해버리는 일다.
사람은 뤈래 겉고 속이 다르다.
겉과 속만 다른게 아니다. 1도, 1도 다 다르다. 모습이 360가지 일수도 720가지일수도 혹은 그냥 죽는 그날 까지 매순간 바뀔수도 있다.
어줍잖게 열몇가지 유형에 사람을 몰아넣고 고민할 기회를 박탈하는 무식하고 잔인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일을 좋아하는 그 부류의 사람들도,
자신의 유형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정의하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