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드라마의 시작은 질투가 아닐까.
호기심도 결국 질투로 귀결되고, 사랑도 소유욕도 치정도 모두 질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보통 모든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들의 소재가 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름다운 면과 추접스러운 면 두가지를 모두 주목할 수 있다.
아름다운 점이야 말할 나위 없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경험하고 추앙하겠지만,
추잡스러운 면에 대해서는 그 누구가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그 모습에서 자신의 진정한 치졸한 모습과 취약한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는 30대의 연애를 떠올리면 모든 것이 쉽고 우습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저 퇴근 후에 즐기는 술한잔같이 내게 즐거움이나 취미생활을 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랑 생활만 하기를 바랬다.
그 때부터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취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 감정을 휘두를 기회를 주는 일,
내 하루가 내 일상 하나하나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게 하는 일,
내 기분과 컨디션이 다른 사람의 말 한두마디로 송두리째 바뀌고 틀어질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는 일.
그 모든 것을 20대때에는 열정이라 치부하고 무섭게도 달려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뭐랄까 제대로 누구를 만나는 길이다. 라는 사명감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지금 내 감정이 그러하고, 당장에 이 말을 입 밖에 내어야 속이 시원하니까 본능에 따라 행동한 것 같다.
30대에 수많은 누군가를 만나면서, 습관적으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퇴근후 술한잔하는 기분으로 임한 적이 많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이임에도 내가 그 사람에게 홀딱 빠지거나 취약함을 내보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대가 쉽고 나에게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간혹가다가 이대로는 내가 취약해지겠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나를 방어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절대로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 것, 쿨한 멘트를 뱉어내면서 우리 질척거리지 말자고 자기 세뇌하듯 상대방에게 읊조린 것, 상대방이 정말 보고싶고 필요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그사람이 내게 소홀한 듯한 멘트를 뱉게하여 그를 악역으로 나를 희생자로 만드는 것, 우리가 깊어질 수 없는 모든 이유들을 그에게서 찾기 위해 눈을 씻고 꼬투리를 잡아 장편 드라마를 써내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파워풀한 도구는 바로,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외면하고, 아닐 거라고 스스로 세뇌시키는 일이었다. 가장 쉽고 강력했다.
그렇게 몇년을 보내다보니 머리로는 진작 알고 있던 어떠한 사실을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 준다는 것은,
내 명치 가장 약한 부분을 찌를지도 모르지만 날카로운 칼을 내어주는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날카로운 칼을 내어주지 않고 달달한 꿀물만 받아 마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 꿀물을 가장 약한 부위인 명치로 삼켜야하기 때문이다.
달콤함을 얻으려면 어차피 명치를 드러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다운 면과 추접스러운 면을 동시에 가진다.
입으로 키스를 하지만, 욕지꺼리를 내뱉을 수도 있는 것처럼.
취약해지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과 용기가 없다면, 타인에게 취약해지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 된다.
내 취약함을 누군가가 이용하고, 공격하지 않을까 밤잠 설칠만큼 걱정되고 두렵기 때문이다.
나의 자존감과 용기와 안정감, 그것은 나를 취약해지는 것으로부터 지켜준다.
누군가가 나의 취약함으로 나의 명치를 깊숙히 찌르더라도, 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 상처가 맘 깊이 남겠지만 행복을 위해 그 위험을 감수해보겠다는 용기,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기꺼이 나의 취약함의 칼을 남의 손에 맡길 줄 아는 담대함.
그것을 가지는것은 사실 자기 완성의 높은 레벨을 달성하는 일이다.
즉, 연애 경험이 있을 수록, 어설프게 몇년 살아볼 수록, 삶에 대해 이해할 수록, 나에 대한 어느정도의 연구가 있는 사람일수록,
누구를 만나고 사랑하고 취약해지는 일을 어려워한다.
무식과 유식 그 중간에 애매하게 놓인 나같은 사람도 그러하다.
나를 지키고 싶고, 나의 감정을 보호하고 싶지만,
풍성해지고 싶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고, 그 행위를 통해 많은 것을 얻으리란 것을 안다.
하지만 막상 나의 칼을 내어주기에 겁나고 무섭고, 취약해지기에 취약하다.
이제부터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나를 지키기에 급급했던 단계에서 나아가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취약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풍성하고 안정되고 차고 넘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취약한 모습에 취약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