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양상추

by 하쿠나

새해가 밝아 달력을 사러 갔다. 내가 선호하는 달력은 1년 전체가 보이는 한 장 짜리 달력이다.

주간이나 월간의 소소한 스케줄은 주로 온라인 캘린더를 사용하고 집 벽에는 한 장 짜리를 달력을 걸어놓고 큰 이벤트를 위주로 표시해둔다. 이를테면 아팠던 날, 생리 주간, 여행이나 출장 기간 등. 어떤 주기로 몸이 아픈지, 여행으로 인해 생활 패턴이 달라졌다던지, 생리 주간이 달라졌다던지 큰 흐름을 보는 데 유용하다.


이번에 구입한 달력은 특이하게도 1년 전체가 보이는 동시에 한 달씩 뜯을 수도 있게 되어있었다.

점선을 따라 뜯으면 12개의 작은 봉투 안에 종류가 다른 씨앗이 들어있어서 매 달 새로운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것이었다. 태국에서 만든 달력이라 12 종류의 씨앗 중에는 고수도 있고 태국산 바질도 있다.

식물 키우는 건 자신 없는데…싶다가 텅 빈 집이 적적하기도 했던 참이라 한 번 키워보자 싶어 질러버렸다.


1월은 양상추의 달이다.

씨앗을 심으려고 보니 화분도 없고 흙도 없다. 흙은 어디서 구하지? 그러고 보니 주변에 온통 콘크리트 바닥으로 되어있지 흙을 본 기억이 없다. 그 많던 흙은 다 어디로 갔지? 요즘은 흙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건가? 마트에 가면 파는 것인가? 질문이 꼬리를 물다가 '뇌순녀' 아니 멍청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마트의 원예용품을 파는 코너에서 화분 세트와 흙처럼 보이는 봉지를 사들고 왔는데 (물론 태국어로 쓰여있어서 내용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뜯어보니 시커먼 가루였다. 이건 내가 아는 흙이 아닌데! (아직도 이 가루의 정체를 알 수 없는데, 비료인 걸까?)


식물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달력을 산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양상추 씨앗은 몸 누일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직 흙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국 마트에서 산 정체 모를 검은 가루. 정원에 쓰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완제품을 사서 쓰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무언가를 사들이는 것은 쉽게 생각하는데 (달력을 사고, 화분을 사고, 흙을 사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내 손으로 씨를 뿌리고 키우는, 생명을 다루는 어떤 본질적인 것에는 서툰 정도를 넘어서 무지한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이제 1월이 고작 하루 남았지만, 내일은 어떻게든 흙을 구해보려 한다.

잘 키워낼 자신은 여전히 없지만 그래도 올해 12개의 씨앗을 매 달 심어볼 생각이다. 더불어 무언가를 사들이고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 덜어내고, 내실을 다지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2018년 말쯤에는 잘 키운 채소를 버무려 샐러드라도 해먹을 수 있으려나, 부푼 꿈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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