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셔츠와 청바지

그러나 나는 맥시멀리스트예요.

by 하쿠나

'제발, 심플하게 살자!'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마다 공항에서 종종, 아니 자주, 아니 거의 매번 이런 생각을 한다.

심플하게 사는 걸 원해온 지는 꽤 되었지만 그렇게 살아내기가 나에겐 너무 어렵다. 내가 그리는 심플함은 이런 것이다.


여행가방을 쌀 때, 일정과 장소와 목적에 따라 고민할 것도 없이 윗도리 몇 벌, 아랫도리 몇 벌, 속옷, 쌀쌀할 때 적당히 걸칠 수 있는 옷 딱 하나, 최소한의 패킹을 하는 것이다. 2박 3일 여행 정도는 배낭 가방 하나로 짐을 싸는, 그런 것이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이러한 심플함은 마음의 여백과도 깊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가벼운 짐가방 싸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특별한 날'이 있을지도 모를 것을 대비해 1년에 딱 하루 입을까 말까 하는 아이템을 쟁여두는 쓸데없는 취미가 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여행 가방을 쌀 때도 발동이 된다.

이를테면 지난 4월 친구와 함께 갔던 발리 여행. 여자 둘이, 다이빙을 주된 목적으로 가는 여행이지만 혹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어 발리의 일몰을 배경에 두고 어떤 멋진 남자와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 분위기에 맞는 롱스커트를 챙기자. 어쩌면 그 날 밤바다가 생각보다 쌀쌀할지도 모르니 스카프랑... 카디건도 챙겨야겠다! 운명적인 만남에 쪼리를 신기는 좀 그러니 롱스커트에 어울리는 꽃잎이 달린 샌들을 챙겨야겠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발리 여행에 근사한 만남은 결국 없었다고 한다).


쓰지도 않는 화장품 파우치는 왜 세 개나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집에서도 몇 달간 쓰지 않던 면봉에, 종류 별 브러시에, 각질제거제에, 치실에, 바디로션에, 헤어팩 등을 대체 2박 3일 여행 짐가방에 쑤셔 넣는 심리는 뭘까? 이게 다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없어도 지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보다 있으면 요긴하게 쓸 것이라는 믿음이 강한 듯하다. 매번 여행이든 출장이든 한 번 들춰보지도 않는 아이템이 두세 개 아니 아니 십 수개는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미니멀리스트는 턱도 없고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나의 산만한 짐싸기 습관에 대해 잠시 사색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치장을 해야 근사 해지는 내가 아니라 소비/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빛나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려면 결국 나를 보는 나의 관점을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물건으로 짐을 더하기보다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는 데 충분함을 느끼는 나여야 가능할 지도 모른다.


흰 셔츠에 청바지 같은 사람이고 싶다.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편한 옷 같은 생활을 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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