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고등학생 때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면 빠지지 않고 하는 의식이 있었다.
롤링 페이퍼 쓰기. 모처럼 낮밤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다지고 서로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또 여전한 모습을 재확인하면서 함께 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서로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것이다.
롤링페이퍼 쓰는 것을 귀찮아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집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웬만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한 두 마디쯤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벅차오르는 마음을 차마 몇 문장으로 전할 수가 없어 이리 적고 또 쓱쓱 지우길 반복한다.
고마운 마음은 있지만 말로 하는 게 쑥스러워 롤링페이퍼를 빌어 표현을 한다.
누군가에겐 이상하리만치 매번, 매년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마른걸레 쥐어짜듯이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단어를 나열한다. 딱히 그 사람이 싫은 건 아닌데 도무지 쓸 말이 없다.
사람에 따라 적당히 가볍게, 혹은 진중하게, 오해를 살 만한 표현은 피해가면서.
그게 뭐라고 꽤나 열심히 썼던 것 같다.
그렇게 롤링 페이퍼를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20대 중, 후반에는 교사 신분으로 적어도 40개의 롤링 페이퍼는 주고받았을 것이다. 십여 년이 지난 A4 용지들은 1년 에 한두 번씩 대청소를 할 때 하나씩 발견된다.
시간이 지난 만큼 컬러펜이 바래 있기도 하고 물에 번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을 때도 있다.
나의 10-20대의 시간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과의 기억 또한 바래 있다. 그런데 그 많던 롤링페이퍼에 담긴 메시지 중 희한하게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다.
‘누나, 할 말은 많은데 쓸 말이 없다’.
글을 쓰기 싫은 그 친구의 귀찮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도, 그 말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누나에게 무관심해서가 아니야, 다만 글로 써내려 가자니 시간도 없고 정리도 안돼.’ 이런 마음이었을까?
실은 요즘 내가 그렇다.
할 말은 많은데 쓸 말이 없다.
귀찮은 것이 아니다 (아니다, 조금 귀찮은 것도 맞다). 머리 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은 많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이기도 한데 조금은 사실이다. 정리가 안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부지런 하지 않아서, 엉덩이가 가벼워서일테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기 때문이다.
롤링페이퍼를 쓰는 목적과 비슷하게 지금이 아니면 남사스러워질 감성들을 적어두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펜을 (혹은 컴퓨터를) 드는 것은 무엇보다 큰 의지와 영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쓸 말이 없다는 그 친구가 그 한마디라도 쓰지 않고 내 종이를 스킵했더라면 나는 이 글이라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문득 쓸 말이 없다는 말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사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꾸준히 글 쓰는 연습을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 ‘꾸준히’의 시작은 분명 비루한 글로 장식될 것이다. 오늘의 글, 그리고 지금까지의 많은 글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쓴다. 언젠가는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써도 부끄럽지 않을 날이 오길 바라는 막연하고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