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 썸머'의 도시 방콕에서
조르륵, 땀 두 줄기가 등을 타고 흘러 셔츠를 적신다. 이마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다. 집 밖을 나선 지 5분도 채 안됐는데 온 몸이 울고 있다. 유독 땀이 많은 나는 이 끈끈한 습도의 방콕 더위를 견디기가 참 힘들다.
요즘은 한국 여름도 방콕 못지않게 후텁지근 하지만 적어도 한국 여름엔 끝이 있다. 길어야 몇 주 만 버티면 뜨겁게 달아오른 정수리를 식혀줄 가을바람이 찾아온다.
서울과 비교해 여러모로 방콕 생활이 만족스럽지만 계절이 오묘하게 비껴갈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공기와 자연의 경이로움, 그 사이에 머무는 특유의 감성을 맛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어제의 뜨거움 혹은 시원함은 잊어버리고 이러쿵저러쿵 체온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온도를 빼앗기도 채워주기도 했던 것이 그때는 몰랐지만 아련한 기억이 되었다. 난 따뜻한 날씨를 더 좋아하지만 살짝 추운 날씨가 좀 더 운치 있고 낭만적인 건 사실이다.
1년의 시간 동안 계절이 여러 번 변하는 곳에서 살다 보면 아무리 아쉬워도 붙잡을 수 없는 찬란한 시절이 있다는 것을, 끝이 안 날 듯한 지난한 시간도 반드시 흘러가게 마련이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지금의 나는 어떤 시절을 지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겨우내 추위로 둥글게 말린 등을 조금은 펼 수 있는 초봄인지, 영원히 그대로 있어줬으면 하는 벚꽃 흐드러진 봄의 절정인지, 왠지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는, 이번에도 잘 버텼다 싶은 가을의 시작인지, 방심하기 무섭게 덜컥 찾아오는 한겨울을 앞둔 11월 어느 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 직장을 퇴사하고 내 꿈을 찾아 나선 지 2년이 지났다. 그간 기어코 벗어나고 싶었던 한국을 떠났고,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대학원은 외려 일찍 졸업했다. 여러 면에서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꼭 자리를 잡고 싶었던 태국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취직을 했고 적당한 워라밸을 즐기며 사사로운 걱정에서도 꽤나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온전한 기쁨으로 살고 있지 못해 한 편으로 만족을 모르는 나를 탓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 애써 얻은 것들이지만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완전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 순 없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니면 조금의 틈과 모난 구석이 나를 더 겸손하게 하고 미래를 더 희망하게 만드는 것일까?
격렬하게 벗어나고 싶은 여름인 들 묵묵히 시간을 지나 보내야 흘러가듯 이 또한 내가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할 시절이다. 1년 내내 여름인 방콕도 오래 참고 견디면 잠깐이나마 초가을 바람을 느낄 수 있다. 그때를 기대하며 오늘도 뜨거운 한여름 날을 흘러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