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심취해 있던 취미가 하나 있다. 당당하게 내 취미는 이것이에요 라고 말하기엔 조금 낯간지러운 것. 이런 것도 취미에 속하는 것일까 싶은 것. 시간도 돈도 딱히 들지 않지만 나에게 상당한 기쁨과 반가움을 가져왔던 것.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혹은 도시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두 장 산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하나는 나 자신에게 보내기 위해서. 그 도시에서 마주하고 느꼈던 생각들과 마음들을 담아 적는다. 엽서가 그렇듯 봉투 하나 없이 ‘전체 공개’ 된 글은 누구라도 볼 수 있다는 리스크가 따랐지만 다른 어떤 의식이나 기념품보다 소중한 나만의 ‘리추얼’이었다. 처음 엽서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아프리카 출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인데 엽서조차 구할 수 없는 분쟁 지역을 빼고는 웬만하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그 나라를 떠나기 전 우리 집 주소를 꾹꾹 눌러 써 기어코 부쳤다. 그렇게 보낸 엽서는 보통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후 빠르면 10일 후, 늦으면 몇 달 후가 지나 내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 엽서 보내기 리추얼의 매력은 배송 조회가 안된다는 것인데, 한국에 돌아와 일상을 한창 보내다 잊을만할 때쯤이면 도착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낯 간지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하지만 꾸준히 일기를 쓰지 못하는 나에게 이 엽서들은 그때의 내가 거쳐간 서투른 감정과 새로운 (재)발견, 또 의외로 지금보다 성숙한 구석이 있었다는 걸 돌아보게 해 준다는 면에서 내가 20대 중반 -30대 초초반까지 잘한 일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엽서 보내기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게으름 요놈 때문이지만. 사실 일정을 자유롭게 짤 수 있는 여행이 아닌 한 출장을 가서 엽서와 우표를 구하고 우체통까지 찾아서 부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간혹 공항에 우체통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없는 나라를 더 많이 다녔었고. 급할 땐 공항 직원에게 팁을 주면서라도 우체통에 넣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지만 언제부턴가 열정도 열정이지만 뭐가 그리도 정신 사나운지, 시간을 내서 엽서에 몇 줄 쓰는 여유조차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처럼 출장보다는 여행이 더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못한 걸 보면 말이다.
지난 몇 주간 미니멀리스트가 된답시고 대대적인 방청소를 하다 수년간 나 자신에게 부친 엽서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새벽에 쓴 일기를 아침에 보는 듯한 오글거리는 내용도 물론 있었지만 그 때의 나는 많은 꿈을 품고 있었고,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감동을 줬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 나도 그런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들이 많이 보였다.
내년 한 해는 출산과 육아로 한 곳에 진득이 머물러야 될 상황이 되었지만 그동안 나에게 보낸 엽서들과 추억들을 잘 기록해두며 내실을 다지는 시간으로 보내야겠다. 다시 역마살이 끼게 된다면 조금 부지런을 떨어서라도 다시 내게 엽서를 부치고 싶다. 그 때는 토토에게도 편지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