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을 줄 알았지
작년 말 올해 초 나에게 가장 큰 화두는 ‘미니멀리즘’ 이자 ‘심플 라이프’였다. 마치 복음을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이라도 된 양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의 변화를 떠들어댔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사실 나는 여전히 이상은 미니멀리즘이지만 현실은 맥시멀리즘에 닿아있다.
새해가 밝은 지 15일이 되었고, 좀처럼 나의 일상이 심플해지지 않는다는 걸 보며 적잖은 실망과 패배감을 느꼈다. 이번 생에 심플 라이프는 글렀다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미니멀리스트는 가볍게 한 번 시도해볼까?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미니멀하게 심플하게 사는 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쯤에서 내가 느낀 바, 내가 서서히 실패하는 과정을 재고해보려고 한다.
나의 이상은 그랬다.
한 1,2 주 정도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갈 환경으로 바꾸고 모든 세팅을 마치면 그다음부터는 매일매일이 산뜻하고, 자질구레한 일과와 생각들에 나의 시간과 감정을 쏟아내지 않게 될 거라고. 머지않아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효율적이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랬다.
여전히 나의 동선과 일과는 너저분했고 하루를 돌아보면 생산성 없이 헛짓거리만 했다는 생각이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무엇보다 정리가 안됐다. 해야 할 일 정리, 생각 정리, 노트 정리, 가방 속 정리, 스마트폰에 있는 온갖 어플과 데이터 정리. 왜냐하면 모든 게 다 중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짚어야 할 것은, 그렇다면 내가 참 미니멀리스트로서 진정 거듭났을 때 나의 하루는 어떨 것인가. 아직 뚜렷한 그림은 안 그려지지만 적어도 나와 하등 관계없는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이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네, 어떤 화장품을 쓰네, 또 무슨 신박한 아이템을 공동 구매하고 있네, 어디로 여행을 갔네 보는데 시간을 쓰지 않을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책 한 두 권, 청소 관련 일드 몇 편 보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물건을 버리는 걸로는 잠시 기분이 전환될 뿐이지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건 계속해서 가지치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미니멀리즘은 소유한 물건의 수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하고 자주 쓰는 물건이 무엇인지, 오늘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내 일상과 삶에 꼭 필요하면서도 날 풍성하게 해주는 관계가 무언지를 아는 것이었다.
진부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에게 미니멀 라이프는 한 방에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과정인 것이었다. 불필요한 물건과 생각들을 솎아내고 내려놓는 과정. 일상생활을 하는 하루 16 여 시간 동안 좋아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들을 하며 버려지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 지를 확인하며 조금씩 그 시간을 나를 기쁘게 하고 보람차게 하는 시간들로 바꾸어 나가는 것.
군더더기 없이 정말 중요한 일과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사사로운 감정과 불필요한 노동으로 나의 평화로운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일. 계속해서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길에 낙오되지 않고 걸어야 할 목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