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업무를 가졌던 (전) 직장 동료 셋이 있었다. 우리 셋은 글쓰기를 좋아하거나/잘 쓰고 싶거나/꾸준히 쓰고 싶지만 매번 게으름에게 져버리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싶어 한 달에 두 번씩 자체 마감을 세웠고,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 5천 원씩 내기로 동의했다. 그동안 우리는 한 달이라도 내지 않으면 해약이 되버리는 이자 높은 적금상품을 붓듯 꼭 한 명씩은 돌아가면서 페널티를 냈고 (물론 나의 공헌이 크다!) 그렇게 우리의 모임통장 잔고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셋 중 유일하게 한 번도 페널티를 내지 않은 성실 당원 원더폴님은 봄이 되면 벌금으로 패밀리 레스토랑도 갈 수 있겠다며 설레어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글감이 떨어졌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 하지만 또 마감을 어기고 5천 원을 내고 싶지 않다. 왠지 오늘도 아무 글 대잔치를 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글을 위한 아이디어가 샘솟고 실제로 글을 쏟아내는데 주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요인이 되는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감이 닥쳐오면 방구석을 나서야 쓰게 되어있다는 것이 나의 이론이다. 그렇게 나는 좋은 커피 향이 나고 인터넷이 빵빵하고 왠지 한산한 느낌이 나지만서도 적당히 테이블이 차 있는, 그러면서도 버스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아도 되는 카페에 앉았다.
이번엔 반드시 글을 마감하고 페널티인 5천 원을 내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으로 페널티 비용과 맞먹는 뺑 오 쇼콜라를 덥석 사 먹어 버렸다. 중요한 건 이미 먹물 감자 치즈빵을 먹은 후라는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거나한 아침 식사를 마친 것도 잊어선 안 되겠다.
빵순이 원더폴님이 듣는다면 빵 두 개 먹은 게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빵순이가 아니므로 식후 빵집에서 빵을 두 개나 먹었다는 것은 롤링핀이 참 좋은 맛을 내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롤링핀 베스트 메뉴인 버터 프레첼을 먹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간만에 마신 디카페인이 아닌 보통 아메리카노의 맛이 당을 절절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동안 디카페인 커피가 특별히 맛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어째서 요즘 커피 반 잔도 채 마시지 못하는가 의아했는데 이유가 확실해졌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만에 내 눈으로 본 올 겨울 첫눈이었다. 설레었다. 하지만 더욱 설레는 것은 내일이 주말이라는 것이었다.
월요일에 눈이 내렸다면 이만큼 설레지 않았을 것이다. 화요일에 눈이 내렸어도 바로 휴대폰을 꺼내어 남편 DW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수요일쯤 눈이 내렸다면 아마도 메시지 하나 남겼을지 모르겠다. “DW, 한국에 눈이 와!”
아무튼 오늘은 금요일이라는 게 첫눈의 설레임을 가중시켰다는 말이다.
좋은 글은 다음번에 쓰기로 하고 일단 주말을 경건하게 맞이하기로 한다. 금요일 퇴근을 앞둔 지금, 밖은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