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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Dec 31. 2018

보물섬으로 출동

우리 세대는 더 자주 강박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때때마다 감사편지를 쓰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야 했고 학년이 바뀔 때 인사말로만 채워진 형식적인 카드라도 주고받았다. 특히 롤링페이퍼는 우리의 문장력과 관계를 얼마나 자주 시험대에 올렸는가. 한 번은 누군가 투사라도 된 양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다.”는 진부한 표현은 쓰지 말자고 경고했지만 그 말을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지 갑작스럽게 고민하는 일을 몇 번 겪고 나서는 그 역시 입을 다물었다. 롤링페이퍼는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에 이어 두 번째 낭만성의 무덤이었다.


편지 고유의 서정과 낭만을 공격하는 문화권에서 살면서도 나는 편지 사모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뇌와 입술 사이 거리가 멀고 할 말을 제때 적확하게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인지라 생각을 정리하고 고치기 수월한 글이 좋았다. 



방학식 날엔 편지를 보내기 위해 친구네 집 주소를 물었고 크리스마스엔 직접 만든 카드에 인사말을 적었다. 문제는 나의 게으름. 서너 장씩 길게 쓴 편지를 봉투에 고이 접어 넣은 후 영원히 우체통에 넣지를 못했다. ‘부치지 못한 편지’란 말엔 애잔한 비극의 정서가 풍기기 마련인데 나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는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 먼저 온다. 가끔 부치지 못한 편지를 다시 꺼내보면서 이럴 거면 편지지 아까우니 애초에 쓰질 말지. 하고 스스로를 경계했다. 가끔은 이 편지를 친구에게 쓴 것이 맞는지,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친구 이름을 빌려 쓴 것이 아닌지 반성하기도 했다.  


부치지 못한 편지의 문제는 나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오스카 와일드가 대신 설명해 줄 것이다. 그는 편지를 쓴 후 쳐다보지도 않고 창밖으로 휙 던져버렸다고 한다. 길에서 주운 누군가 대신 우체통에 넣어주겠지 하고 그저 휙. 나는 사회에 대한 믿음도 대단한 자존감도 없어서 창밖으로 던지지 못하고 서랍 속에 넣어버렸을 뿐이다. 



내 인생 편지의 벨 에포크는 중학생 시절이었는데 매일 보는 사이에 뭐 그렇게 편지를 쓰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엽서를 하루에 대여섯 장씩 사느라 용돈을 꽤나 썼다. 고등학교 때는 캐주얼한 쪽지 시대가 열렸다. 그때 가장 많은 쪽지를 주고받은 친구는 같은 수학선생님을 좋아하면서 가까워졌다. 우리는 같이 떡볶이를 먹고 시험이 끝나면 우리 집에서 비디오를 봤다. 야자가 끝나면 먼 길을 돌아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며 수다를 떨고 매일 쪽지를 주고받았다. 쉬는 시간엔 서로의 반을 들락거리며 간식을 나눠먹고 도시락을 돌려먹었다. 


지금 쓰는 어떤 메일 주소는 그 친구가 지어준 주소, 한때 쓰던 어떤 비밀번호는 그 친구의 첫 핸드폰 번호인데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은 내가 못되게 굴고 변덕을 부렸는데 고맙게도 화를 낸 적이 없는 친구였는데. 친구는 지각을 밥 먹듯 하고 수업시간에 자주 졸더니 선생님이 되었다. 여고 동창들은 이제 거의 소식이 끊어졌다. 졸업한 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라 아쉬운 것이 없는데 그 친구 소식은 궁금하다. 가끔 우리가 주고받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빼곡한 쪽지를 읽으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내가 쪽지를 읽으면서 설희를 생각하듯, 내 기억에선 지워져도 누군가의 서랍에 남아있을 편지를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런 궁금증이 생긴 것은 그 사건 때문이다. 최근 나는 잊었고 누군가의 서랍에 남아있던 편지가 기특한 일을 해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대학생 때는 60여 장의 카드를 만드느라 밤을 지새운 날도 있었다. 해가 갈수록 만드는 카드 수는 줄었지만 30대 초반까지도 몇 장의 카드를 만들었다. 이후 나의 게으름이 완전히 나를 장악한 것 같다. 내년을 기약하며 재료 통에 들어간 산타모자, 벨트, 트리 모양의 조각들은 몇 년째 그대로다. “그래도 또 언젠가”를 기약하며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내 크리스마스 카드 받는 걸 꽤나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안 만들어야지 하다가도 성탄선물 겸 카드 한 장 주는 게 뭐 어렵다고 하는 마음으로 몇 년 간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이왕 만드는 거 크게 만들고 봉두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었던 카드는 오래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의 손에 들려 과거의 추억을 되살렸고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주고 말았다. 


덕분에 나도 내 편지함을 다시 열어보았고 설희를 떠올렸고 또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발견했다. 평범한 안부 편지들도 있었고, 사과편지도 있었다. 오글거리는 소녀감성 편지는 벅벅 찢고 싶지만 버리기 좋아하는 내 손아귀에서 이제까지 살아남은 생명력을 인정해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한때 고민하던 일들이 적혀있고, 화가 나서 급하게 흘려 쓴 이야기, 먹고 싶은 간식들의 이름, 너무 웃겨서 수업시간에 쪽지로 남겨둔 이야기,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글도 있었다. 이야기로 가득한 소란스러운 침묵의 섬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말하지 않은 말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바다를 갖고 있다더니. 내친김에 메일함도 살펴보았다. 이제는 고지서나 광고메일만 들어오는 메일함이지만 개설하고 열심히 쓰던 때 받은 어떤 메일은 꽤나 의미 있었다. 지금은 잊고 사는 스무 살 무렵의 나를 보여주는 메일들. 또 다른 누군가를 기억 속에서 소환하는 메일들. 조용한 시간에 혼자 몇 번씩 읽어보게 되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 그곳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새벽 내내 편지와 메일을 읽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내 속에서 답을 찾기 어려울 때, 타인의 진심 속에서 나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편지함을 누구와 함께 나눠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혼자 열어보고 오랜 시간을 보낸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그렇게 되나 보다. 진짜를 발견한다면 조용히 생각한다. 누구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고 내 속에 넣어두고 혼자 오래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그래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지. 


오랜만에 편지를 모두 꺼내놓고 보니 천 개도 넘어 보인다. 언제 정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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