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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Apr 30. 2019

우리 집은 중고나라

작년 8월,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롱디'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양가 부모님 상견례, 식장 확인,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확정, 청첩장 돌리기, 대망의 결혼식, 신혼여행 후 양가 부모님께 인사 마무리까지 2주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나는 방콕으로, 남편은 얼마 있다 우간다로 돌아갔다. 원래 살던 곳에 혼자 돌아오니 마치 2주 간의 출장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 후 8개월 만에 본격적인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10년 만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하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도 애정 하던 방콕을 떠나 애증의 서울, 그것도 우리가 나고 자란 서울 송파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지금은 토토를 생각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우린 언제든 다시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신혼집은 최대한 심플하게, 채우기보다는 비워놓기로 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활을 한다 해도 꼭 구비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가지 수가 많았다. 그렇게 우리가 전적으로 들인 것은 냉장고, 가스레인지, 세탁기, 공기청정기, 매트리스, 에어컨, 행거 1개, 식탁, 의자, 전자레인지, 압력밥솥, 커피포트 정도였다. 이 중에서도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덩치가 큰 녀석들이 운 좋게도 각자 집에서 놀고 있어 공수해왔고 그릇과 조리도구 등도 모두 집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의 신혼집은 중고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때론 소박함이라고 하기엔 궁상맞은 것 같기도 했다. 자기만의 공간에 로망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고 고급스럽진 않아도 그럴싸해 보이는 구색은 갖추고 싶었다.

하지만 중고나라면 어떠한가. 층고가 낮아 커튼 삼분의 일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어떠한가 (적당히 뒤로 접어 청테이프로 고정시키면 된다). 부엌과 화장실 타일에 근본 없는 난초 그림이 그려있으면 어떠한가 (추사 김정희 세요?). 만삭인데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이면 어떠한가 (흑흑).


내 로망 속 공간과 조금은 다른 비주얼의 신혼집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은 거실 창이 크고 환기가 잘 되는 것. 물건이 적어 뜻밖에 미니멀 인테리어가 되었다는 것. 집 사방으로 피톤치드를 마실 수 있는 오금공원과 또 내 사랑 올림픽공원까지 연결되는 성내천이 있다는 것 (트리플 숲세권!). 친정집과 가깝다는 것. 자주 가는 커피숍 체인점과 올리브영이 지천에 있다는 것.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 체육관(다닐 것도 아니면서?), 송파도서관이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첫 스위트홈으로 행복한 첫 기억들, 추억들이 많이 쌓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갖췄으면 좋겠다는 아이템들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나에겐 편리함이 최소한의 생활보다 중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내 공간이 주는, 내 취향이 더하는 아이템들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때때로 잔잔한 기쁨과 힐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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